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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Apr 10. 2021

<3> 타인의 비극을 대하는 시선

늦은 새벽시간에 커피를 마셔가며

동향보고를 하고 사고 발생 보고서를 작성했다.

작성한 서류를 출력하여 센터장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당직관에게 이메 보냈다.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훌쩍 지났다. 아, 밤을 꼴딱 새웠구나.


지친 몸을 이끌고 휴게실로 향했다.

그제야 머리가 지끈거리고 손이 떨렸다.

이른 아침에 조퇴를 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사고 후 곧장 응급실로 갈 수도 있었지만

급실에서는 상해진단서가 발급 안되고

당장 눈에 보이는 외상심하지 않았다.

정신적 충격이 커서 그렇지.


병원에서 머리CT와 X-RAY검사를 시행했지만

딱히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소견은 없었다.

팔에 누르스름한 멍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의사는 위로를 건네며

타박상과 뇌진탕 소견이 적힌 전치 2주짜리

상해진단서를 발급해주었다.


하루의 특별위로휴가를 받았다.

귀가하고 나니 밤을 꼴딱 새운 피로감이 몰려왔고

나는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거의 30분 단위로 전화가 걸려왔고

카톡 알림음이 연신 울려댔지

휴대폰을 끌 생각조차 지 못했다.

끙끙 앓아대며 늦게까지 잠을 잤다.


뜻하지 않은 휴가를 받아 하루간 요양하듯

집에 머물렀지만 마음은 내내 현장에 가 있었다.

전 직원에게 공람된 사고 발생 보고서를 보고

많은 동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 이름은 비공개 처리했을 텐데... 벌써 소문이 다 났구나.


괜찮습니다 라는 답변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휴가는 끝났다. 이튿날 정상출근을 했다.




출근하자마자 센터장실로 불려 갔다.

간부회의 때 내 얘기가 나왔단다.

전해 들은 얘기는 씁쓸한 여운을 주었다.


웨어러블 캠 (의복에 장착하여 현장 활동을 기록하는 액션캠) 영상기록이 없다.
구급 출동시 지침상으로
헬멧을 착용하기로 되어 있지 않은가?

1명이 휴가를 갔으면 비번자를 불러다가
3명을 채웠어야지 2명만 현장활동 한 게 아쉽다.
난폭한 환자를 이송할 땐
경찰 동승을 요청하지 않은 것도...

구급팀은 최근 1년 치 폭행 사례랑 주취 관련 출동내역 정리해서 보고해라.
폭행 예방 집합교육 실시하고 미참석자는 전달교육 실시 후  사진 첨부해서 보고토록.



아... 이 맛에 소방서 다니는구나.

필터링되어 전달된 말이 이 정도였다.

실제로 오고 간 말은 훨씬 더 험악한 발언들이겠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나 위로보다 표준작전절차에 따른

잘잘못을 따지는 게 저들의 일이니까 할 말은 없다.

다만 서운했다. 서러웠고.


센터장님께서는 본서 간부들은 상황을 잘 모르니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며 이해하라고,

본인은 참 많이 서운했다고 하며 위로를 건넸다.

마음에 크게 와 닿거나 하지는 않았다.


왜 운전 주임님들께서 통사고 날 때마다

대부분 자비로 처리했던 게 떠올랐다.

구급 선배들이 민원이 접수되면

시비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음료수 사들고 찾아가서

사죄했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다.

왜 다음 인사 때 본인이 구급대원으로 발령날 것 같다

소문이 돌면 표정이 일그러지며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부라는 작자들에게 현장대원의 폭행사건은

예방해야 될 ‘안전사고’의 일부일뿐일까.

당신들께서 편찬하신 ‘지침’과 대조하여

현장활동에 미흡했던 점을 발견해서

지적하고 교육해야 할 업무일 뿐인 걸까.

항상 민원인을 가족같이 생각하고 친절하라던 사람들이

왜 사고를 당한 직원은 본인의 가족처럼 생각 안 할까.


그때서야 깨달았다.

폭행사건이라는 망치질은

내 가슴에 이미 박혀있던 못이 

좀 더 깊숙이 들어가게 되는 이벤트였다는 걸.


현장에서 안전사고라도 나면 원인 분석 예방대책을

고심하기보다 대원의 실수로 몰아가는 분위기.

10년 가까이 조직에 몸담으며 익히 봐왔잖은가.


엄중 문책이라는 말을 남발하며

징계에 대해서는 상후하박이었던 그간의 사례들.


나는 조직의 부조리에 대해 방관고 침묵해왔다.


현재 내가 맡은 구급대원의 업무가 그래도 전 직장이었던

병원  업무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았기 때문이다.

삶의 질 또한.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삼성, 아산병원 수준은 아니어도

종합병원들과 비교하면 좀 더 높은 수준이었고,

변화무쌍한 병원 일정에 비해 소방의 3조 2교대

최소 6개월치 일정이 이미 지정돼있기 때문에

훨씬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출동이 많아 힘겹다 싶을 때는

병원에서 일하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래. 그래도 그때보다는 지금이 심신이 편하니까.

답답한 마음은 동료들과 험담을 하고 술안주로 삼으며

10년 가까이 큰 불평불만 없이 시간을 보내왔다.


이번에 발생한 폭행사건

내게 회의감뿐만 아니라 고의 전환을 가져왔다.


내가 불평불만이 없었던 게 아니구나.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는데 내가 의식하지 않은 거구나.


마음이라는 물잔에 스트레스라는 독약을 차곡차곡

따르다가 어느 순간 확 넘쳐버다고 할까?

물잔은 스트레스를 감내할 단단함이 있었지만

넘쳐버린 독약이 닿은 바닥은 속수무책으로

썩어 들어갔다. 나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다.


의욕과 기력이 휘발되듯 빠져나갔다.


사무실로 내려와 밀려있는 공문서를 읽는데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잖은가.

프린터는 여느 날처럼 출동지령서를 꾸역꾸역 뱉어냈고

나는 생채기 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 구급차에 탑승했다.




야속하게도 여전히 주취와 관련된 출동이 잦았다.

나는 아예 환자와 말을 거의 섞지 않는

극단적 방어 자세로 현장활동을 대했다.

일하는 내내 심계항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본인이 느끼는 증상), 안면홍조, 불안, 

두통 등의 증상이 불수의적으로 찾아왔다.

증상이 한번 나타나면 적게는 30분,

많게는 2시간가량 지속됐다.

출동지령 벨소리가 울리기 직전에 들리는

1초 남짓한 노이즈 소리에도 반응할 정도로 예민했다.


구급대는 3명이서 손발이 잘 맞아야

그나마 원활하게 현장활동을 할 수 있는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나는 '빵꾸' 그 자체였다.

이런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의 오후로 기억한다.

병원 이송을 마치고 편의점에서 티타임을 갖던 중

운전하는 형님께서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건넸다.


“본인도 힘들겠지만 우리도 힘들다.

마음을 좀 추스르고 왔으면 좋겠다.

많이 힘들다면 차라리 주취 관련 출동일 때

아예 출동하지 말고 사무실에 있어달라.


마시던 커피가 참 지독하게 썼다.

같이 구급차를 타던 우리는 주간 근무가 끝나고

따로 저녁식사와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사이가 좋았었다.

근무시간의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행정업무를 하는 게 아닌

출동 혹은 귀소를 하며 구급차 안에서 보내는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돈독했고 허물이 없었다.

가족보다도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는 동료가

내게 굳은 얼굴로 충고와 염려를 보냈다.

아마도 많은 고민과 각오가 있었으리라.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벌어지고 곪듯

나의 트라우마는 커져만 갔고,

트라우마는 마침내 외부로 전이되어

또다시 누군가의 트라우마가 되고 있었다.

나는 치료를 결심했다.

아니,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심각한 외상을 보거나

직접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장애를 의미한다.

환자들은 외상적 경험들에 대하여 공포심과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반복적으로 사건이 회상되고

당사자는 다시 기억나는 것을 회피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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