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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Sep 04. 2022

홍삼

(23)

재요에게.


꽤 오랜 시간 동안, 홍삼은 우리 아빠의 일상이었어. 늘 나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던 아빠가 홍삼정 한 스푼과 과일을 먹고 출근을 했던 기억이 있거든.

그리고 오늘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할머니의 일상에도 홍삼이 있었나 봐. 곧 할머니 팔순이어서 제주에 내려가는데, 그때 홍삼정을 사다 달라고 엄마한테 연락을 주셨더라고. 아까 잠시 백화점에 들렀던 것도 그거 때문이었어.


그거 말고는 나에게 홍삼은 "아~싸 홍삼! 에브리바디~ 홍삼!"이 전부인 것 같아.

딱히 홍삼을 먹어본 적도 없고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지만, 술 게임 중에서도 요란한 술 게임을 좋아하던 나는 저 구호를 신명 나게 외쳐댔어. 나는 '홍삼' 대신에 어떤 두 글자가 들어가든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저 말을 처음 만든 이들은 아마 환희의 의미로 홍삼을 선택했겠지?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홍삼은 건강기능식품의 상징과도 같아졌으니까.


문득 생각해보니, 홍삼 게임을 하면서 나는 요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났던 것 같아. 술을 마시는 건 게임 없어도 할 수 있지만, 술 없이 평소에 그런 게임을 하지는 않으니까 술을 핑계 삼아 다 같이 복작복작 놀았던 그 에너지가 생생해. 모두가 골고루, 서로 눈을 마주치며 흥겨워했고, 과 또는 동아리에서 단체로 자리를 잡고 놀았으니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고, (가끔 너랑도 이야기하지만) 평소에는 내 성량을 발산할 기회가 드물다 보니 그렇게 놀고 난 뒤의 쾌감도 있었나 봐. 그때의 그 분위기와 장면들이 나의 홍삼의 전부였네.


무해한 기억들은 아직도 나를 웃음 짓게 . 박수를 치며 아싸와 홍삼을 외치던 게임처럼,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었고 그렇다고 어떤 선을 넘지는 않았던 순간들.  1-2년의 홍삼 게임이 끝나고  뒤에는 한동안 한껏 차분하게 술을 마셨거나, 너무도 쉽게 어떤 대상을 안주 삼았거나, 우울이나 후회로 탓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거야. 하지만 조금씩, 나만의 홍삼을 찾아가고 있어.

나의 환희, 나의 무념무상, 나의 카타르시스.


함께 홍삼을 외칠 사람이 없어도 온전히 나로서도 충만한 나를 향해가고 있고, 그 시절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내 옆에 있는 너가 중요한 힌트가 되어주고 있어.

나는 술을 핑계 삼아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무엇을 바라는 걸까. 그 고민만을 앞에 올려두고 때로는 뜨겁게, 어떨 때는 시원하게, 그리고 대부분은 뜨드미지근하게, 짠-!


2022.09.04.

기요.


다음에는 '기쁨'에 대해 적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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