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선의(善意)를 믿는다
스페인어 수업 동문 데비(Debbie)는 59살의, 자녀가 아홉이나 되는 여성이었다. “난 아이가 아홉 명이야.(I am a mom of nine.)”이라고 하셨을 때 “Nine?!”이라고 너무 놀라면 실례일 것 같아 애써 참았는데, 그래도 놀란 티는 좀 났을 것이다. 첫째는 내 나이여서 이미 손자 손녀도 있고, 다들 품을 떠나고 이제 막내만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클래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연령대의 분은 아닌 셈이었는데, 스페인어를 배우러 오신 계기를 들어 보니 마음이 찡했다.
아홉 아이 중 둘째 아들이 얼마 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단다. 그런데 장례식에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이 조문을 많이 왔단다. 아들은 스페인어를 배워 남미에서 오래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그들이 아들에 대해 해주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단다. 느낌상으로 좋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자신이 모르던 아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자세히 알아듣고 싶은데 답답하더라고, 그래서 이제라도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다고 오신 거였다.
나에게도 스페인어를 배우러 온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주어졌고, 데비의 사연 다음에 “아, 저는 <제인 더 버진(Jane the Virgin, 미국 드라마)>에 스페인어 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걸 자막 없이 보고 싶어서요.”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스페인어를 쓰는 이웃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러한 사연 때문인지, 데비는 가족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쉽게 눈물이 그렁그렁해 지곤 했다.
한 번은 루피타(Lupita) 선생님네 옆집에 차량이 서 있고 인부들이 들락거리며 뭔가 시끄럽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베네수엘라에서 온 가족인데 아빠인 남자분이 큰 사고를 당해 겨우 목숨을 건졌고, 이제 집안에서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해서 집 안에 경사로와 핸드레일 같은 걸 설치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말에 데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가슴 아픈 사연이 맞긴 했지만 문자 그대로 일면식도 없는, 스페인어 선생님의 옆집 사람 이야기였는데. 데비는 지갑에서 20달러 지폐를 꺼내어 루피타에게 건네며 “혹시 저 집에 갈 거야? 그럼 갈 때 이걸 좀 같이 전해줘.”라고 했다. 나는 현금이 없기도 했거니와 뭐가 뭔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눈만 꿈뻑꿈뻑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이 동네 사람들은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돌아가며 음식을 해다 주는 풍습이 있었다. 집에 우환이 있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에도 누군가-주로 엄마-는 가족의 끼니를 챙겨야 한다. 집안에 어린아이가 있는 경우는 특히 식사를 챙기는 것을 미루거나 생략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웃들이 돌아가며 음식을 해다 준다. 그렇지만 간혹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음식을 받아 오히려 곤란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요즘은 음식 대신 기프트카드나 현금을 주기도 한다. 주로 집에 크게 아픈 사람이 있거나 누가 돌아가셨을 때 많이들 돕지만, 새로 아기가 태어난 경우에도 그렇게 한다.
데비는 바로 옆집이니까 틀림없이 루피타가 음식을 들고 그 집에 갈 거라고 생각한 것이고, 그때 자기가 보탠 부분까지 같이 가져가라고 한 것이었다. 루피타는 조만간 멕시코 전통 음식인 '타말레(Tamales)'를 해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또 다른 수업시간에 데비가 “국경 장벽을 지지한다”라고 했을 때에는 자녀가 아홉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상으로 놀랐다. 물론 여기는 텍사스니까 국경 장벽에 찬성하는 사람이 반대하는 사람보다 훨씬 찾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데비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가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며 돕는 사람 아닌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데비의 마음속에 모순은 없는 듯했다. 그는 “난 미국에 오지 말라는 게 아니야. 단지 법을 지켜서 오라는 거지.(I am not saying don’t come, just come right.)”라고 했다. 데비에게 루피타나 루피타의 옆집 아저씨는 신분증을 확인한 건 아니지만 합법적 체류자인 선량한 우리의 이웃이고, 국경 장벽을 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국경 장벽을 넘는 사람들 중에 물론 미국 내에서 범죄를 일으키는 사례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입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지속적으로 처하게 되는 상황이 그들을 범죄에 노출되게 하는 면이 크겠지만. 나는 여러 이유로 국경 장벽에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도 멕시코도 아닌 국적의 사람으로서 함부로 말을 얹기 조심스러워 그 순간 그저, 비자가 있고 합법적으로 근로하고 있기는 하나 멕시코 국적인 루피타가 불편한 이야기에 혹시라도 기분이 상하지 않기를 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그 일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하다, 오래전 직장 상사 한 분이 이런 말을 한 것이 떠올랐다.
“사람의 선의(善意)를 의심하지 마라.”
그분이 세상에 진짜 악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을까. 이십여 년의 직장 생활 속에서 온갖 권모술수를 경험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이 변해가는 것을 직접 목도하기도 했을, 그리고 아마 본인도 젊은 날과는 다소 달라졌을 육십 대의 어른이 한 "그래도 사람의 선의를 의심하지 마라."는 말은, 그래서 힘이 있었다.
데비가 국경 장벽을 지지한다고 해서, 얼마 전 데비가 조건 없이 낯 모르는 이민 가정에게 베푼 작은 선의가 조금이라도 덜 진실된 것은 전혀 아닌 것이다. 데비는 그저 '불법 입국자들에게 미국의 이익을 빼앗길 것을 막연히 걱정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일상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는 모질지 않고 친절한 사람'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도 항상 일관되게 행동하고 생각하지 못하면서, 데비가 이해가 되네 마네 혼자 생각했던 것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은가. 막연히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좀 무섭다고 생각하거나, 밤중에 특정 억양을 구사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면 왠지 더 움츠러든다거나.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를 개인적으로 알게 되면 그저 평범한 이웃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종교인들은 무섭지만 ㄱ씨는 괜찮다.", "그 국적인 사람들은 별로지만 ㄴ씨는 예외다." 같은, 사실은 실례 투성이인 말과 생각으로 그간 무지(無知)에서 왔던 막연한 혐오와 그에 부합하지 않는 나의 지인(知人)을 합리화한다. 그게 옳다거나 그래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어떤 마음인지는 이해할 수 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다만, 나의 부당한 공포나 혐오를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할 뿐임을 고백한다.
그러니까,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막연하게 누군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실제로 만나는 이들에게는 대체로 예의 바르고 다정한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사람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