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식기세척기

낭만, 효율, 공간

by 앤지

한국에서는 식기세척기를 쓰지 않았었다. 집에 빌트인 된 식기세척기가 있긴 했지만 집주인이나 이전 세입자가 어디다 버렸는지 사용 설명서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내가 기계치에 가깝다 보니 작동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정 필요성을 절감했으면 이것저것 눌러보고 시도했겠지만, 집안일 중 설거지는 남편이 주로 했기 때문에 또 크게 상관이 없었다. 물은 손 설거지보다 식기세척기가 덜 사용한다고 들었지만, 대신 전기 먹는 괴물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도 했고.

그런데 이곳에 이사 오고 나니 식기세척기를 써보고 싶은 몇 가지 이유가 생겼다.


1) 이 동네 물에 석회질이 많아 연수기를 쓰는데, 그래서인지 그릇을 헹구다 미끄러워서 자주 놓침.

2) 한국에 비해 수도요금이 비싸서 '물 쓰듯이 물을 쓰면 안 된다'는 조언을 많이 들음. 전기 요금은 누진이 없어 한국보다 만만함.

3) 이곳도 집에 식기세척기가 빌트인 되어 있고 사용 설명서는 없는데, 버튼이 그냥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직관적으로 생김.

4) 전업주부가 되었으니 남편에게 설거지를 시키기 어쩐지 좀 미안해졌는데, 내가 하루 서너 번씩 하자니 그건 또 싫음.


솔직히 말해 4번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요리는 좋아하지만 설거지는 싫어하는,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는 것은 좋아하지만 개켜서 정리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한 마디로 '정리하는' 쪽보다는 '저지르는' 쪽을 월등히 선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국에 온 지 한 달 정도만에 처음으로 식기세척기를 가동한 어느 날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신세계였다. 식기세척기의 소음이야말로 삶의 질이 올라가는 소리였던 것이다.

처음 몇 번은 그릇들을 채워 넣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긴 했다. 이곳 사람들은 식사 때 접시를 주로 사용하겠지만, 한국식 오목한 그릇들은 잘 넣지 않으면 몇 개 넣지도 않았는데 더 채울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

점차 요령을 습득해서 그릇을 알뜰히 채워 넣은 식기세척기를 돌려놓고 애들이랑 자전거를 타러 나갈 때면, 세상 현명하게 시간 활용을 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동네 마트 주방도구 코너에 가면 온갖 도구들을 팔고 있었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 이것저것 보곤 했는데 딸기 꼭지 따는 도구, 사과를 방사형으로 자르는 도구, 삶은 달걀을 자르는 도구, 양파 썰 때 포크처럼 양파를 찔러서 고정시키는 도구 같은 기발한 것들이 참 많았다.

도구라는 게 대부분 '있으면 편리하고 없어도 그만'인 경우가 많으니까, 내가 놀란 것은 별의별 도구가 다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것들이 '각각의' 도구로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다진 마늘을 만드는 도구와 라임 즙을 짜는 도구는 생긴 것도 비슷하고 원리도 같으니까 그냥 같이 써도 될 것 같은데, 마늘 다짐기는 딱 마늘 두 알 정도 들어갈 크기였고, 라임 즙 짜개는 딱 라임 크기 모양으로 따로 있는 식이었다. 향이 옮을까 걱정된다면 설거지를 잘해서 쓰면 되지 않나? 하다 못해 강판이나 채칼만 해도 눈이 굵은 것과 가는 것을 갈아 끼우기만 하면 되는, 공간 절약형 다기능 도구들에 익숙했던 나는 '1도구 1기능'의 상황이 너무나 신기했다. 나는 ‘저 기능만을 위해 저 부피의 물건을 사서 보관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부터 들어버리는데 말이다.

1도구 1기능.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사과 자르는 도구는 구매했는데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이곳에 와서 식기세척기를 사용할 생각이 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실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5) 그릇을 많이 꺼내놓을 수 있음.


우리 가족을 기준으로, 이 집에 있는 식기세척기를 다 채우려면 보통 세 끼에서 네 끼 정도의 식사 동안 사용한 그릇이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식기세척기를 쓰려고 했으면 그만큼의 그릇을 어떻게든 꺼내놓고 살았었겠지만, 우리 가족은 두 끼 정도 사용할 분량의 그릇들만 꺼내놓고 살았었다. 주중에 나와 남편이 집에서 식사를 거의 하지 않는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선물 받거나 어쩌다 보니 생긴 그릇들이 꽤 있었지만 정리하여 찬장 꼭대기에 얹어 두었었는데, 여기는 수납공간이 넓으니 자연스럽게 그 그릇들을 손이 쉽게 닿는 위치에 놓을 수 있었다.


참고로 이곳의 우리 집은 약 2,100 스퀘어피트(sqft.), 한국식으로 말하면 59평 정도이다. 텍사스 사람들에게는 '네 식구가 살기 적절한, 아담한 집'으로 취급되지만 한국에서 살던 집보다 2배 가깝게 큰 셈이라, 나는 이사 와서 짐을 정리하면서 '대궐 같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떠오르고 말았다. 대충 정리해도 공간이 남았고, 촘촘히 쌓아 올릴 필요가 없었다.

이 집에서 삼 년 넘게 지낸 지금은 나도 익숙해져서 이만한 넓이가 네 식구 살기에 딱 좋은 것 같고, 가끔은 수납공간이 모자라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국에 돌아갈 때가 걱정되지만 당장은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후우.)



간혹 이곳 사람들이 '할머니가 물려주신 드레스를 리폼해서 입는다'거나 '아들이 아기 때 자던 침대를 손주가 태어나 삼십 년 만에 다시 꺼냈다' 같은 이야기를 하면, 너무나 낭만적이라는 생각에 부러워지곤 했다. 왜 우리나라는 그런 '낭만'을 가진 경우가 드물까. 단시간에 빠르게 산업화를 이룩하기 위해 과거를 버리며 달려오다 보니 생긴 부작용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낭만'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공간의 여유가 있어서였던 것이다. 집값이 비싸다는 동부의 대도시는 상황이 또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당장 필요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것, 일 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것들은 차고나 다락에 둘 수 있다. 집에 남는 방도 한 두 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 특히 수도권의 집에서 가장 비싼 것은 집 자체, 그러니까 '공간'이다. 효율적으로 공간을 정리하고 보관이 어려운 것들은 버려야 쾌적한 주거환경이 유지된다. 낭만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설거지를 바로바로 해 버리거나 조금 작은 사이즈의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흔할 것이고, 텍사스에는 식기세척기를 사용하지 않는 집이 거의 없을 것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어지간한 일로는 새 장비를 사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해 해결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고, 텍사스에 사는 사람은 굳이 그러지 않고 조금 더 쉽게 새 장비를 장만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기계로 할 수 있는 일을 왜 사람이 하느냐거나, 효율성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결국은 공간이 문제였다. 결론은, 유치하지만, 텍사스 사람들 부럽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땅이 넓다는 것, 1인에게 할당될 수 있는 공간이 넓다는 것 하나는 진심으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