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s what kids are for!"
요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라는 드라마를 종종 본다. 나는 주인공들이 위기에 처하거나 고난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나면 그게 해결될 때까지(그러니까 대개 다음 화까지) 신경이 쓰여 아직 완결되지 않은 드라마는 잘 보지 못하는 성격인데, 이 드라마는 특별한 악인이 없는 잔잔한 에피소드들 덕분에 그런 걱정이 별로 없어서 본다. 나의 이십 대를 추억하게 하는 음악들이 좋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주요 등장인물이 다 너무 착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하기도 하고, 반대로 이렇게 현실에 충실한 드라마도 없다고 하기도 한다는데, 드라마가 반드시 현실을 충실히 재연할 필요도, 반드시 환상을 보여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감상하는 내 눈에는 환자들의 에피소드는 대체로 현실성 넘쳐 보이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착한 것도 맞아 보인다. 특히 '우주'가.
최근 본 화에서는 일곱 살 어린이 우주가 아빠와 아빠의 친구, 송화 이모와 셋이 캠핑을 가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캠핑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기다려온 우주는 그러나 정작 캠핑지에서 모든 것에 시큰둥하고 그저 '불멍'을 하며 가만히 앉아있는다. 여자 친구와 헤어질 위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사랑과 우정 사이'에 있는 우주 아빠와 송화가 사랑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느냐 마느냐이고,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데 우주가 자꾸 말을 건다거나 이것저것 헤집으며 '방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한 것이었겠지. 이해하지만, 일곱 살 아이 치고 이날의 우주는 행동도 생각도 너무 얌전하긴 했다.
어린이에게 가장 힘든 것은, 육아를 해본 사람들은 아마 공감할 테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캠핑이라면 더욱, 흥분한 아이는 신나서 가만히 있지 못할 것이다. 불도 직접 피워보겠다고 하고, 캠핑 도구를 꺼낼 때마다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다람쥐나 새를 쫓느라고 보호자의 시야를 벗어나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일도 일어날 것이다. 아무리 캠핑 전날 친구와 싸웠다고 해도, 조금 기분이 덜 좋을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우울에만 젖어있지 않는다. 아니 일단 일곱 살 아이에게 '이성친구와 헤어질 위기'라는 개념이 가능한 지부터가 두 아이를 키우고 다양한 아이들을 볼 기회가 많았던 나로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아주 조숙한 어린이가 세상에 없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이 장면을 보고 몇 달 전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갔던 캠핑이 자연스레 생각났다.
그러니까, 작년 핼러윈 데이였다.
'코로나로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있으면서 'Trick or Treating'은 하겠다고 아이들을 내보내는 게 맞나? 한두 명도 아니고 십 수 명이 몰려다닐 거고, 수십 집을 돌아다니며 수십 명을 만날 텐데... 이웃 아이들이 같이 가자고 하면 우리 아이들은 당연히 따라나서고 싶을 텐데, 거절하기도 애매하고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남편 회사 동료분이 캠핑 사이트 예약에 성공했다며 같이 가겠느냐고 물어봐 주셨다. 냉큼, 감사히, 넙죽, 가겠다고 했다. 꼭 Trick or Treating을 적당히 거절할 좋은 구실이었기 때문만 아니라, 한국에 있을 때는 여름마다 캠핑을 가곤 했었는데 텍사스에 온 후로는 2년 넘게 못 가고 있었고, 갑갑한 집안에서 좀 벗어나 보고 싶은 참이기도 했다.
캠핑지에서 아이들은 오래간만에 한국어가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 몹시 신이 났다. 어른들이 텐트를 치고 이것저것 준비하는 사이, 네 명의 남자아이들은 주워 온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물론, 텐트를 같이 치겠다고 폴대를 부러뜨릴 뻔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울 시간이 되자, 당연히 아이들은 우르르 불가로 몰려왔다. 자기도 같이 불을 피우겠다는 것이다.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해도, 연기가 눈에 들어가면 매우니까 저리 가 있으라고 해도 몇 초뿐, 아이들은 불 피우는 것과 요리하는 것을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결국 고기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밥을 먹고, 드디어 어른들이 기다린 '불멍'과 맥주 한 잔의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얌전히 불멍에 동참할 수 있도록 '비장의 무기' 마시멜로를 꼬챙이에 꽂아 주었는데...
입으로 들어가는 마시멜로보다 태우는 마시멜로의 개수가 훨씬 더 많았다. 특히 우리 집 둘째가 문제(?)였다. 둘째는 마시멜로를 몇 초 동안 불에 대고 있으면 불이 붙는지, 불은 확 하고 붙는지 서서히 붙는지, 마시멜로를 여러 개 뭉쳐서 불을 붙이면 엄청 더 큰 불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한 녀석이 그러고 있으니 다른 아이들도 마시멜로 태워 먹기에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고 주변에 민폐가 안 되기 위해 "안돼."를 무한 반복하던 어른들은 "아이고, 이 녀석들을 데리고 우아하게 불멍을 하려 했다니..."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이란 딱 이럴 때를 위해 있는 말이었다.
2018년, 이곳에 온 첫 해 옐로우스톤(Yellowstone) 국립공원을 갔다 오는 길에 들른 아이다호 주의 감자 박물관에서였다. 거대한 감자 모형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둘째가 꼭 자신이 셔터를 눌러서 사진을 한 장 더 찍어야 한다는 거였다. 우리 뒤로 이미 몇 명이나 줄을 서 있었는데! 몇 초 정도 설득해 보았지만 둘째는 막무가내였다. 차라리 처음부터 찍게 내버려 두었으면 시간이 적게 걸렸을 것을, 후회했지만 늦었다. 결국 둘째는 아주 신중하게, '감자가 끝까지 다 나오도록' 사진을 찍고 흡족해했다. 아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겠지만, 나에게는 뒷사람이 짜증을 내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I am sorry." 하며 줄에서 빠지는데,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하지 말아요. 애들이 다 그런 거죠!(Oh, please don't be. That's what kids are for!)"
얼마나 감사한 말이었는지. 3년 이상 지난 지금도 그 말의 단어 하나하나와 너그럽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린이는 어른이 바라는 대로 행동해주지 않는다. 어떤 행동이 안전에 위협이 되거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하지 마."라고 추상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통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알려주어도 금세 흥분하고 까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러 번 알려주면, 그리고 나이가 들면 점차로 나아진다. 그렇게 어른들이 기다려 주고 알려주어 어린이가 안전하게,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어울려 살 수 있는 인간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배려와 기다림을 많이 받아본 어린이는 아마도 남을 배려하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어른이 될 확률이 조금 더 높지 않을까.
오늘도 뭐든지 자기가 해보겠다고 우기다 주스를 엎는 둘째와, 3살 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동생과 똑같은 논리로 박 터지게 싸우는 첫째를 보며, 깊은 한숨을 들이쉬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That’s what kids are f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