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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지 Aug 05. 2021

소고기 구이

텍사스에 칼을 '사' 왔다

몰랐는데, 칼 종류는 선물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인연이 끊긴다나. 중국 사람들이 우산(傘)의 발음이 헤어진다는 뜻의 한자와 비슷하여 비즈니스 선물이나 행사 기념품으로 우산을 선물하는 것을 꺼린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인연이 끊긴다는 이유로 칼은 선물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퇴사를 앞두고, 환송 선물로 팀으로부터 뭘 받고 싶냐는 말에 나는 내 이름이 새겨진 일식도와 중식도를 갖고 싶다고 했다. 이름을 새기기까지 하기에는 내 출국 전 날짜도 모자라고 예산도 살짝 초과되어 일반 칼을 골라야 했지만. 여하튼, 그리하여 나는 그 두 자루의 칼을 나의 환송 회식 자리에서 우리 팀 막내에게 천 원을 주고 '샀다'. 그날, 회식 메뉴로는 소고기 구이를 먹었다.


소고기 구이는, 아마 다른 직장인들에게도 그러하겠지만, 나에게 ‘화려한 회식’의 상징이다. 뭔가가 잘 안되어서, 상사한테 깨져서 한 잔 '때리러' 가는 날이 아니라 예산을 좀 많이 써도 된다고 허락받은, 프로젝트가 끝났다거나 신입사원이 온다거나 하는 특별한 날의 회식.

나는 2006년부터 12년 정도 종로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요즘은 문화도 바뀌고 코로나로 회식도 감소했겠지만 “라떼는” 회식을 주 2회는 기본으로 했다. 잦은 회식에 짜증이 나다가도 메뉴가 소고기라 하면 흐음, 그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곤 했다. 정확히 세어본 적은 없지만 어림잡아 천 번은 했을 회식. 그중 가장 많이 먹은 건 역시 삼겹살에 소주 또는 소맥이었고, 장소가 종로인 만큼 유황오리집, 낙지볶음집, 순대국밥집도 흔해 많이 먹었다. 광화문 쪽에 세련된 음식점들이 많이 생기면서 멕시칸, 아메리칸 차이니즈, 중동 음식까지 회식에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역시 회식 메뉴 좀 골라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평범한 날은 삼겹살, 좀 특별한 날은 소고기였다. “오늘 메뉴는 소고기입니다.”하고 공지를 돌리면 “아 나 그거 못 먹는데.”하는 사람도 “아 그거 지겨운데”하는 사람도 없고, 그날 예산을 ‘쏘는’ 임원이나 팀장도 확실한 생색을 낼 수 있고 인기도가 올라가는, 안전한 메뉴.

나의 환송 회식 메뉴로 소고기 구이가 선택된 데에는 이러한 안전함 말고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의 첫 회식 날,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 회식을 했었다. 팀에 여자는 나뿐이었는데 그날 내 ‘먹포텐’이라는 것이 폭발해, 사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체격이 좋은 같은 팀 부장님보다도 내가 더 많이 먹었다. 나를 처음 보신 팀장님도 ‘얘 먹이려면 예산 깨나 들겠는데?’하고 속으로 놀라셨다고 한다.

그 후로 우리 팀 막내는 “과장님 안 계신 날 뫄뫄집(식당 이름) 갔었는데요, 그날보다 예산 반도 안 썼어요.”, “과장님 때문에 뫄뫄집 회원카드 만들어야겠어요, 만들면 할인해 준대요. 아 그날도 만들었으면 십만 원은 할인받는 건데.”하고 나를 간간히 놀려댔다. 그리고 환송 회식 메뉴는 꼭 집어 '뫄뫄집' 소고기 구이로 정해졌다.

이런 한국식 '직화' 구이를 여기서는 영 찾아보기가 어렵다.



옛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감상적인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음... 모르겠지만, 하겠다.

회사는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 곳’ 일 수도 있고, ‘자아실현의 장’ 일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집안 사정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경제적 독립을 해야 했기에 입사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사람에게는 그 둘의 중간 어디쯤이었다. 그리고 또 나같이 센티멘털한 망상에 종종 빠지곤 하는 인간에게는 '내가 깨어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보내는 곳이자 10여 년 전부터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우리 회사를 꽤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의 동료들과 그들과 함께 먹는 밥과 그들과 함께 마시는 술자리와 휴게실의 잡담과 인생 상담을 좋아했다. 내 월급이 당장 느는 것도 아니건만 회사의 수익 개선을 위해 고민하는 회의석상에서 묘하게 불타오르는 정의감 같은 것, 시답잖은 농담이나 툴툴하게 뱉는 말 속에 느껴지는 배려심, 맛있는 메뉴나 재밌는 것을 발견하면 우리 팀원들에게 알려줘야겠다 생각하는 오지랖을 나는 참 좋아했다. 돌이켜보니 참 좋은 사람들과 생활을 했구나, 내가 복이 많았구나, 싶어 진다. 사내에서 부딪힌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고 나니 좋은 것 위주로 기억에 남았다.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구나, 싶다. 한 번쯤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지만 그게 미국은 아니었고 전업주부로서의 나를 상상해 본 적도 없었는데, 나는 지금 미국에 사는 전업주부이다.

가족을 위해서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기도 했지만, 환송 회식 날 나는 소고기를 평소 뫄뫄집에서 먹던 양의 반도 먹지 못했다.


코로나로 많은 음식점들이 닫았던데, 종로 한 복판의 비싼 임대료를 견디고 뫄뫄집은 살아남았기를.

그리고  글을 려, 삶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날  있을지 어떨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의 동료들이 다들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요즘은 인터넷이며 전화며 워낙 좋은 세상이니까, 이따금 연락이 닿기도 바라본다.

나는 칼을 '선물 받은' 게 아니라 '샀으므로'.



후일담을 덧붙이자면, 그날 '사 온' 칼들은 기대 이상으로 매우 유용한 선물이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요리할 일이 늘어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다 잘라지고 다듬어진 상태로 구매했던 식재료들을 내가 손질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줄은 몰랐는데, 통삼겹살이나 덩어리로 된 횟감을 사다 자르고, 오징어나 생선 내장도 직접 다듬어야 할 줄이야.

원래 가지고 있던 일반 부엌칼만으로는 아무래도 힘들었을 텐데, 날카로운 일식도와 무게감 있는 중식도는 오늘도 텍사스에서 나의 손목 건강과 삶의 질 향상, 그리고 집밥 메뉴 다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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