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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지 Sep 25. 2021

"That's not her fault."

<Anne with an E>

 <Anne with an E>는 루시 M. 몽고메리의 소설 <초록지붕집의 앤(Anne of Green Gables)>을 원작으로 하는 캐나다 드라마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빨간머리 앤>이라는 제목에 한국어 자막도 함께 넷*릭스에 있으니, 가능하신 분들은 꼭 보았으면 좋겠다. 총 3개의 시즌이 있는데, 모두 영상도 내용도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다.


약간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잠시 하고 넘어가자면, 나는 <Anne with an E> 드라마를 좀 길어도 꼬박꼬박 <Anne with an E>라고 부르고자 한다.

성장하면서 점차 수용하고 긍정하게 되기는 하지만 사실 앤은 오랫동안 자신의 빨간머리를 싫어했다. 그런데도 관객들에게 더 친숙할 것이라는 이유로 이 드라마 제목을 <빨간머리 앤>이라고 번역한 것이 나는 조금 아쉽다. "Ann이 아니라 Anne라고 해야 더 우아하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이름"이라며 앤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데, 드라마 원래 제목대로 <E가 있는 앤>이라고 하지. 음, <E가 있는 앤>은 어감이 좀 별로라면 소설 원작처럼 <초록지붕집의 앤>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Anne with an E>에는 좋은 에피소드들이 너무 많아 아마도 몇 번은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우선순위 또한 매기기 어려워서 방영 순서대로 시즌 1부터 시작해야겠다.

시즌 1 3화에서는 에이번리 초록지붕집에 온 고아 소녀 앤이 학교에서 말실수를 하여 ‘왕따’에 처하는 상황이 나온다. 앤드류스 목사 부부의 큰딸 프리시와 학교 선생 필립스는 남몰래 사귀는 사이였는데, 앤이 두 사람이 학교 비품실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둘 사이가 '은밀한 관계'일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은밀한 관계'가 무엇인지 호기심을 갖는 소녀들에게 앤은 에이번리에 오기 전, 여러 집을 전전하며 식모살이를 하던 때 본 어른들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 설명해 주게 된다. 소녀들은 그것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더러운' 이야기임을 직감하고 앤을 경멸하며 화를 내지만, 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모르고 친구들이 떠나가자 당황하며 슬퍼한다.

작은 마을에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결국 앤을 키우고 있는 매릴러와 매튜 커스버트 남매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매릴러는 집안 망신이라는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매튜가 말한다.

"앤이 걱정이야."

"매튜 커스버트,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 애는...(That child is...)"

"...애지.(A child.) 속상해서 미치겠어. 그만한 나이의 애는 그런 것을 몰라야 한다고."

자신이 어른으로서, 앤의 보호자로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매릴러는 옷을 갖춰 입고 앤드류스 부인을 찾아간다. 거듭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데도 앤드류스 부인이 "그런 난잡한 아이(trollop, 거의 욕이나 마찬가지)를 들여 동네를 어지럽힌다."며 앤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자, 매릴러는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앤드류스 부인, 부인이 앤이 말한 것 때문에 그 애를 탓할 수는 있으셔도,"

"당연하죠. 저는 탓할 수 있고, 탓할 겁니다."

"...앤이 어쩔 수 없이 보고 들어야 했던 것들까지 그 애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 애의 잘못이 아니에요.(That's not her fault.)

그 애는 우리 중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감내해야 했던 아이예요.

진보적인 교육을 지향하시는 분이 연민은 부족하시다니 안타깝네요.

하지만 이번 일요일 예배에서는 불쌍한 앤이 마침내 안식처를 찾았다며 감사 기도를 하시게 될 겁니다. 저는 그럴 거거든요."

매릴러는 앤을 계속 키우겠다는 선언을 분명히 한 뒤 앤드류스 부인을 뒤로하고, 앤드류스 부인의 얼굴에는 여전히 분노가 희미하게 남아있으나 반성과 흔들림의 빛이 역력하다.



매릴러와 매튜의 젊은 시절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는 원작과는 달리, 드라마 <Anne with an E>에는 커스버트 남매가 결혼도 하지 않고 마을에서 약간 아웃사이더로 살아가게 된 사연이 나온다.

매릴러와 매튜에게는 사실 마이클이라는 오빠/형이 있었다. 마이클은 인간성도 좋고 인물도 번듯했으나 젊은 나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장남을 잃은 어머니는 충격으로 삶의 의지도 최소한의 책임감도 잃어버린다. 아직 자신에게는 키워야 할 두 아이, 매릴러와 매튜가 남아있는데도.

매릴러도 원래 꿈이 있는 여성이었으나, 앓아누운 어머니와 자신이 아니면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동생 매튜를 위해서만 평생을 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청혼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매튜는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묵묵히 농장을 일구어 집안을 부양하는 중년 남성으로, 누나의 젊은 날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이 자랐다는 부채 의식과 누나에 대한 애잔함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1800년대 후반.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검소와 절제, 금욕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가는 시골 마을에서 아이가, 더구나 여자 아이가 성적인 말을 해서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매릴러가 순간적으로 앤에 대한 걱정보다 절망이 앞섰던 것도 이해가 간다.

그 시절,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산다는 것은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 딱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동생과 어머니를 돌보아야 한다는 아름다운 이유가 있었고 돌봄이 끝났을 즈음에는 매릴러가 혼기를 놓친 상태였겠지만, 이제 와서 사람들은 그의 상황을 단어 하나로 요약한다. 한껏 부정적이고 못마땅한 뉘앙스를 담아, "Spinster", 노처녀라고. 괜히 이런저런 구설에 휘말리기 싫어 매릴러는 더욱 조용하고, 단정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앤을 키우기로 결정했을 때는 "평생 엄마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같은 소리를 듣는다. 심지어 친하게 지내는 린드 부인도, 악의는 아니었지만 그 비슷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그래도 누군가의 실수로 초록지붕집에 오게 된, 가족이 생긴 줄 알고 행복해하는 앤을 모른 척할 수 없어 딸처럼 키우며 열심히 가르쳐 보려고 하는데, 그동안 적당한 교육과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는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다닌다. 이번에는 그야말로 상상도 못 한 수준의 사고다.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리는 것만 같았을 것이다.

다른 에피소드들을 보면 매릴러가 생각이 깊지 않거나 배려 없는 사람은 아닌데, 남의 시선을 오랫동안 의식하며 살아온 탓에 순간적으로 ‘집안 망신’이라는 생각부터 들어버렸을 것이다.


매튜는 상대적으로 '자발적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사람들의 시선에 자신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러니까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지만, 딱히 남의 평판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매튜의 머릿속에는 오직 앤에 대한 걱정부터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이 드라마가 좋은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앤을 비롯한 어린이들이 성장해 갈 뿐 아니라 매릴러와 매튜를 비롯한 마을 어른들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매튜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앤을 위해 일어선 매릴러, 매릴러의 말을 듣고 자신이 지나쳤음을 깨달은 앤드류스 부인.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게 된 것은 아이의 탓이 아니라고,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어른들과 사회의 탓이라고 인정하는 어른들. 워낙 오랫동안 서로 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살았던 탓에 처음에는 '근본을 알 수 없는' 고아를 경계하지만, 적어도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에이번리 사람들.

어른도 여전히 배울 수 있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좋았다. ‘어른다운 어른'이라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A child is a child. That's not her fault."

어른다운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기 위해 나도 늘 마음에 새겨야겠다. 그러기 위해 오랜만에 <Anne with an E> 정주행을 다시 시작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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