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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지 Aug 05. 2021

크로우피쉬(Crawfish)

어머, 이건 먹어야 해!

회사에 다닐 때 동료 한 분이 있었다. 정말 좋은 분이었지만, 가끔 사람 기운을 쭉 빠지게 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럴 때다.


나 “와아, 지금 남당항인가? 거기서 대하 축제한대요!”

그분 “요즘은 어차피 다 양식일 텐데요, 축제라고 해봐야 싸지도 않아요. 오히려 사람만 많지.”


나 “저 주말에 닭갈비 먹으러 춘천에 가려고요.”

그분 “서울에 더 맛있는 닭갈빗집이 있는데 왜 춘천까지 가세요~”


말하자면 매우 현명한 분이었다. 진심어린 조언으로 서울의 더 맛있는 닭갈빗집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축제를 한다고 하면 가보고 싶어지고, 실망할지언정 ‘본점’의 맛을 보고 싶고, 가보려고 벼르던 어떤 장소에 대해 “거기 별로인데.”라는 평을 들으면 ‘나도 꼭 가보고, 별로라고 직접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텍사스에서도 나의 그런 면은 변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이사 좀 멀리 했다고 사람이 변할 리가 있나.) 그래서 여기서도 근처에서 로데오가 열린다 하면 가 보고, 어느 거리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유명하다고 하면 가 보고, 그리고 매년 크로우피쉬를 사 먹는다.


크로우피쉬(crawfish)는 우리말로 하면 민물가재 정도 되려나, 어른 손가락 길이 정도 되는, 미니 랍스터 같이 생긴 녀석이다. 매년 2월 말 정도부터 6월까지 크로우피쉬 철이 되면 “크로우피쉬 팝니다” 류의 현수막을 건 식당들이 보이고 가판대나 푸드트럭도 나타나는데 보통 4, 5월이 절정이다.

크로우피쉬를 큰 들통 같은 것에 우르르 넣고 각종 향신료와 양념으로 매우 짭짤하고 약간 매콤하게 삶는데, 그 냄새만으로 발길을 멈추게 할 만큼 자극적이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크기는 새우만 한 녀석이 생긴 건 랍스터이다 보니, 크로우피쉬 자체는 열심히 껍질을 깐 노력 대비 먹을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소시지, 옥수수, 감자 등을 함께 삶아 곁들여 먹는 게 보통이고, “크로우피쉬 2 파운드(lb)에 감자 네 개, 소시지 네 개 같이 주세요.” 같은 식으로 주문한다.

이 요리를 개발한 지역 사람들은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어떻게든 이것을 먹어보려고 이렇게 한 게 아닐까, 양념을 빨아먹는 맛에 먹는 걸까, 이 양념에 밥을 비벼먹거나 빵을 적셔 먹는 게 더 포만감을 주고 맛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매번 들게 만드는 요리이다.

다양한 가게에서 사먹은 크로우피쉬. 먹음직스럽게 사진 찍기가 쉽지 않은 음식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매년 철마다 진심으로 ‘맛있는 크로우피쉬 집’을 찾아다니고, 루이지애나가 고향인 몇몇 이웃은 가족이 모여 직접 삶아 먹기도 하고 우리를 초대하기도 하는 걸로 보아,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되었든 이제는 일종의 ‘시즌(season) 대표 음식’, 우리로 치면 ‘ㅇㅇ 제철 축제’ 때 꼭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 된 것 같다.


서너 집을 시도해 본 결과, 짠맛과 시큼한 맛이 좀 덜하고 매콤한, 우리 입맛에 비교적 더 맞는 식당을 발굴하여, 아는 맛이지만 그래도 매번 크로우피쉬의 계절이 올 때마다 한두 번은 먹고 넘어간다.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러고 싶어서.

그리고 매년 생각한다. 아, 올해도 재밌게 잘 먹었다,라고. 맛있게 잘 먹었다, 라기보다는 재밌게. 즐겁게. 분위기에 휩쓸려서 신나게.



크로우피쉬 먹는 이야기 끝에 덧붙이기에는 좀 낯간지럽고 지나치게 비장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좌우명이 있다. “저지르고 후회하자.” 해보는 것과 안 하고 넘어가는 것의 기로에서 끝내 안 해보면 '해볼걸...' 하며 미련이 남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지만, 해보면 설령 결과가 좀 안 좋아도 '아 앞으로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 앞을 보게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그걸로 정했다. 일부러 "저의 좌우명은요, "하고 말을 꺼내는 일은 당연히 거의 없지만, 갈등이 되는 상황에서는 가급적, 큰 시간이나 비용이 들지 않는 한, 뭐든지 해보고 저질러 보는 쪽을 선택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하자면, 현명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는 축제가 열리면 분위기에 휩쓸려 뻔한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고, 쓸모없고 아름다운 것을 선물 받으면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사람으로 평생 살고 싶은 것이다. ‘가성비’보다는 ‘가심비’를, 아니, 그냥 ‘비(比)’조차 따지지 않고 그저 ‘심(心)’을 추구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뭐, 이것도 최소한의 여유는 될 때 할 수 있는 소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지만, 다행히 크로우피쉬는 그럴 수 있는 정도의 가격대의 음식이고, 앞으로도 나는 텍사스에 사는 한 매년 크로우피쉬를 사 먹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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