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너지힐러 소을 Nov 02. 2018

최고의 발명품, 인공햇볕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노곤하고 몽롱하고 그러면서도뭔가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인가. 뜨거운 여름에서 서늘한 가을로 계절이 바뀌기 전 그 틈새에서 느껴지는 청량한 바람과 밝은 햇살, 그윽하고 푸르른 하늘까지. 이렇게 맑고 상쾌한 날씨야 말로 내겐보약이고 마법이다. 추위를 많이 타고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 나는 햇볕이 따스하고바람도 많이 차갑지 않은 봄과 가을 초입의 날씨가 참 좋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유독 겨울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손발이 차고 몸이 자꾸만 움츠러들면서 활동량이 줄어들었다. 칼날같은 바람이 온 몸을 뚫고 들어오는 듯 몸이 으슬거리고 내 눈이 침침한 건지 하늘이 회색빛인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주위가 어둑어둑해져만 갔다. 몸이 돌덩이처럼 굳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해마다 겨울 나기가힘들어 마치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단조로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잠시만 찬바람을 쐬도 금방 감기에걸리니 마스크는 필수였다. 수족냉증이 심해 얇은 장갑 위에 두꺼운 장갑을 겹쳐 끼고 겨울 내내 기모양말을 신고 다녔다. 예쁜 코트를 사두고도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두툼한 패딩을 입고 모자를 푹눌러쓰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한 겨울에도 얇은 스타킹을 신고 멋부리고 다니는 여자들이 그저 부러울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건 계절성 우울증(seasonal affective disorder)이었다. 자도 자도피곤하고 기운이 없었다. 그렇게 무기력하다 보니 아무것도 하기 싫고 기분도 영 별로였다. 흔히들 ‘나 가을 탄다’고 하듯이 내겐 겨울이면 찾아오는 쓸쓸함이 있었던 것이다. 겨울이 되면 내려가는 기온 만큼 내 마음도 얼음장이 되는 듯 했었다. 그게계절성 우울 증상임을 알게 되면서 내게는 겨울나기에 꼭 필요한 것들이 생겼다. 겨울이 되면 부족한 일조량이내 우울감의 원인임을 알게 된 후 풀스펙트럼라이트(full-spectrum light)와 비타민D를 항상 챙겨두게 된 것이다.


 


풀스펙트럼라이트란 태양광과 유사한 빛을 발산하는 전구인데국내에서는 판매처를 찾지 못해 해외에서 구매했다. 계절성 우울증 치료에 널리 쓰이는 인공 햇볕이라고생각하면 되겠다. 풀스펙트럼라이트를 알기 전과 지금 내 삶은 많이 달라져 있다. 더 이상 겨울이 싫지 않다. 춥고 흐린 날씨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받지도 않고 우울해서 집에만 있지도 않는다.


 


혹시나 전구가 깨질까 조심하면서 비행기에 올랐던게 생각난다. 내겐 정말 소중한 보물 같은 전구였다. 한국에 돌아오자 마자 예쁜책상용 램프를 샀다. 거기에 풀스펙트럼라이트를 끼워 놓고 불을 켰을 때의 그 기쁨이란! 하늘에 떠있어야 할 해가 내 방에 놀러와 내려 앉은 듯 밝은 빛이 방안을 밝혀주고 있었다.


 


“정면으로 쐬면 눈이 아플 테니까 비스듬하게 옆쪽에 놔야겠다. 이걸 온실에 설치하면 식물한테도 좋을 것 같은데… 태양빛이 충분하면 더 잘 자라지 않을까?”


 


실제로 풀스펙트럼라이트는 계절성 우울증 치료용이 있고동식물의 성장을 위한 용도가 따로 있다고 한다. 수족관 위에 혹은 실내에서 식물을 대량으로 키울 때도태양광을 대신해서 설치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촬영시 자연스러운 채광을 주는데 유용하게 쓰이고메이크업쇼에서도 모델이 예뻐보이게 하는데 한 몫 한다고 하니 활용도가 정말 높다.


 


겨울이 오면 나는 매일 일정 시간 동안 인공 햇볕을 쐰다.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하거나. 그렇게인공 햇볕을 느끼며 보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좋다. 인공 햇볕이라니. 그게 가능할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걸 발명한 사람은 정말좋은 일 한 거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더불어서 비타민D를챙겨 먹기 시작했다. 비타민D는 햇볕을 통해 체내에 합성되는데일조량이 적은 겨울철에는 부족해지기 쉽다고 한다. 밥 세끼 외에 따로 영양제를 먹지 않고 살았는데 겨울나기가 특히 힘들었던 내겐 비타민D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풀스펙트럼라이트와비타민D가 겨울잠 자는 나를 깨워 서서히 일으켜 세웠다. 이두 친구를 만나면서 이젠 겨울에도 씽씽하고 활기차게 생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계절성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겨울에도 하늘은 푸르고 구름이 피어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왜 난항상 겨울엔 하늘이 회색빛이고 먹구름이 낀다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하늘을 올려다 볼 생각도 못 할 만큼얼어붙어 있었던 내 몸과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고 햇살이 내리쬠을 확인한 겨울. 드디어 내 첫 겨울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올해도 내년에도 앞으로도쭉 내 겨울은 시원하고 재미난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더이상 내겐 궂은 날씨란 없다. 계절의 변화를 신기하고 아름다운 자연 현상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챈팅, 그 매혹적인 이끌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