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웹소설 - 오래 서서 일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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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청한 하늘. 박부장은 홀가분한 느낌을 받는다. 휴무일이고 운동도 쉬는 날이다. 며칠 동안 운동을 했더니 몸이 찌뿌드드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이 되면 일찍 눈이 떠지는 아이처럼 박부장은 오늘따라 눈이 일찍 떠졌다. 상쾌한 마음으로 편의점에 컵라면을 사러 간다. 아내는 출근했고 이제 자유다. 몇 시간 되진 않겠지만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란 다짐을 한다.
편의점에 라면코너를 빙글빙글 돌아본다. 눈에 띄게 나트륨 성분 함량이 보인다. 다이어트 시작 전엔 영양성분표를 크게 따지지 않았다. 요리사지만 본인이 먹는 음식은 크게 관리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시작하니 이런저런 성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유심히 영양성분표를 읽어본다. 칼로리도 눈에 들어온다. 머릿속으로 러닝머신을 달리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된다. ‘내가 지금 컵라면을 먹으면 얼마나 달려야 하는 거지…’ 손이 떨렸다. 들고 있던 컵라면을 살포시 내려둔다. 찰랑거리는 벨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아침식사를 하는 백반집으로 향한다. 라면을 먹고 토할 때까지 달리긴 죽어도 싫었다. 체중관리를 위해 한식을 선택하기로 한다.
아침이라 가볍게 쌈밥으로 시작을 한다. 채소가 많고 천천히 먹을 수 있어서 다이어트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양념된 고기보단 생선구이를 선택했다.
스스로 뿌듯한 박부장은 식사를 하고 있지만 1kg은 감량된 느낌을 받는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어쩐 일인지 아침부터 전화가 울린다.
“부장님 잘 지내시죠?”
“어 그래그래. 어쩐 일이야?”
“저야 덕분에 잘 지내죠. 안 그래도 한번 뵙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어~ 나야 좋지~ 언제 볼까?”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저 마침 쉬는 날인데 부장님은요?”
“어?! 나도 쉬는 날이야! 좋아 오늘 보자고.”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그래그래 그러자고. 이따가 만날 장소 문자로 보내줘.”
“넵 알겠습니다. 이따가 뵙겠습니다.”
같이 일했던 후임이다. 박부장과 꽤나 끈끈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한동안 연락이 없더니 오랜만에 전화가 와서 박부장은 아침부터 기분이 업된다.
아차차 박부장은 느낌이 싸했다. 아무래도 저 친구는 결혼을 할 모양이다. 꽤 오랫동안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고,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저녁약속을 잡는다라… 박 부장은 확신했다. 만약 청첩장을 내민다면 후임이 밥과 술을 사 줄 테니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기회이다.
박부장은 혼자 말한다.
“치팅데이다”
만날 장소는 집과 가까운 곳이었다. 지도앱을 보며 찾아가니 깔끔한 한식 주점이었다. 구수한 기름냄새가 난다. 지글지글 전 붙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만인가. 고작 며칠 다이어트를 했다고 오랫동안 참았던 것 같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박부장이 들어간다. 자리에 앉아있는 후임이 일어나면서 손을 흔든다.
“여기에요. 부장님”
“어어어”
박부장은 본인도 모르게 신이 나서 엉덩이를 살짝 뒤뚱거렸다.
“요즘 잘 지냈어? 한동안 연락 없더니 어쩐 일이야?”
“그야 부장님 보고 싶어서죠. 요즘 운동하세요? 살 빠진 거 같아요.”
박부장은 살이 더 쪘지만 기분은 좋았다. 하여튼 예전부터 립서비스를 잘하던 친구다.
“아냐 아냐 살이 더 쪘어. 그래서 다이어트도 시작했어. 운동 시작한 건 맞지. 어때? 티나?”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음~~ 약간? 티가 나는 거 같은데요? 가슴이 좀 빵빵해진 거 같아요!”
“하하하하. 아 이게 벌써 티가 나는가?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하하하”
박부장은 기분이 좋다.
“안 그래도 이거 전해드리려고 했어요.”
주섬주섬 곱게 접힌 종이봉투를 테이블 위로 올린다. 역시나 청첩장이다.
“이야 성공했구먼. 결혼하는구나. 축하해!”
악수를 청한다. 둘은 두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하고 손을 내린다. 박부장이 청첩장을 읽어보는 사이 ‘띵똥’ 소리가 울린다. 후임이 알아서 음식을 주문한다. 물론 술도 함께 주문을 한다.
술이 먼저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시원한 막걸리와 기름진 전을 주문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음식이 더 테이블을 채웠다. 그간 술과 음식을 참았던 박부장은 사발에 막걸리를 붓는다. 둘이 잔을 짠하면서 다이어트란 글자도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결혼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하며 주거니 받거니가 계속된다. 몇 잔을 먹었을까 새로운 술주전자가 도착한다.
약간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박부장은 결혼생활이란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혼생활이란 말이야. 각자 할 일이 있단 말이야. 남자는 돈을 잘 벌고 여자는 내조를 잘하고 말이야”
“부장님 맞벌이하시잖아요.”
“암 그렇지. 요즘 시대에 맞벌이해야지. 하지만! 남자는 집에서 말이야. 큰소리도 좀 치고 해야지!”
“흐흐흐 부장님 안 그러 지시잖아요. 너무 구시대적인 조언 아닙니까?”
“크크크 그렇지? 그냥 둘이 잘살아. 그러면 되지. 술이나 한잔 더 할까? 이모 여기 파전하나 더 주세요”
이 말을 끝으로 박부장은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밤이 늦도록 술과 안주는 계속 박부장의 뱃속을 채웠다.
오랜만에 너무 많이 먹은 나머지 숨쉬기도 어려웠다. 박부장과 후임은 가게 밖으로 나와 서로 인사를 하고 작별한다
“잘살아”
박부장의 말로 그 자리는 끝이 났다. 박부장도 집으로 돌아간다. 걷는 폼이 좀 더 뒤뚱거리는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