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3년 전 제주살이를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의 기록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3년 후인 현재, 그때를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적었습니다. 행복한 간접체험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제주1년살이의 여정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서울이고, 오늘은 8월 23일입니다. 화요일이고요.
저는 곧, 제주살이를 하기 위해 제주도로 떠납니다!!
8월 30일 화요일 "오호! 딱 일주일 남았네요!"
현재 상태 엄청 설렐 것 같죠? 아뇨.. 아직 실감은 나지 않고요 남은 짐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 굉장히 신나 있죠? 맞아요. 실제로 제주살이를 결정한 직후부터 일상의 리듬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한 게 기억나요.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일까요? 아니면 일상의 큰 변화 때문에?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신기한 일입니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짐 싸고 부치는걸 어제 시작했어요. 기간으로 보면 적당한 것 같지만 서울집안을 95% 비우고 가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일이 (짐이) 많아요. 이 기회에 미니멀리스트를 체험하고 있다는 글 읽으셨죠? 아직도 먼 것 같습니다.ㅎㅎ
먼저 많은 짐들을 부치는 방법들을 찾아봤습니다. 제주도로 1년 살기를 위해 가시는 분들은 가족단위가 많더라고요. 이삿짐센터를 이용하거나 차가 있으시면 차 안에다 테트리스로 쌓고 가시던데.. (제일 부러웠어요..) 저는 차도 없고 1인이기 때문에 선택배와 수화물로 부치는 방법을 택해야 했죠. 심지어 저는 반려견 한 마리를 데리고 9호선 급행! 을 타고 공항으로 갈 예정이라 많은 짐들을 가지고 가는 것도 무리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짐을 줄여서 택배를 이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주변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대부분 1년이라는 기간에 놀란 반응이었고 걱정을 하고 만류하기도 했어요. 저도 왜 기간을 1년으로 정했는지 모르겠어요. 큰 이유는 없었고 아마, 4계절을 지내고 싶다는 바람과 그 정도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결심이 어렵지 않았던 건 경력단절에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10년 동안을 배우를 하면서 한 번도 휴가를 마음 편히 다녀본 적 없던 제가 활동을 접고 가는데 겁이 나지 않았습니다. 생존 본능 외에는 욕구와 열정에 불이 켜진 상황이 아니라는 걸 내면에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1년 치의 짐을 가져가야 했고 서울에 있는 집까지 정리를 해놓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 안에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았어요. 무엇보다 쌓아놓고 살던 짐들을 처분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아깝고 아쉬워서 끼고 산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관심을 주지도 않으면서 방치했던 거죠..
그동안 모아두었던 비닐들을 이용해 부피를 줄이는 방식으로, 틈나는 대로 박스를 주어와 구입하지 않고서 제각각의 크기의 박스 안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로만!!!' 넣었습니다. 싸면서도 '이렇게 무거운걸 택배로 보낼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몇 번을 검색해 보고 찾아봤는지 몰라요. 규격과 무게제한이 있기 때문에, 옷박스로 싼 이삿짐 같은 건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무겁기도 했고요!
저는 차가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번에 저는 방문택배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운이 좋게 번거롭지 않게 이용했습니다. 며칠 전, 물건을 부칠일이 있어서 우체국에 갔었어요. 볼일을 보면서 창구에다 방문택배에 대해서 여쭈었는데, 뒤에 앉아계시던 책임자 같으신 분께서 다가오시더니 물건이 몇 개나 되냐, 집이 어디냐 물어보시는 거예요. 우체국은 저희 집 하고 가까운 편이었어요. 그런데 그분께서 자신의 자차로 물건들을 픽업하러 와주시겠다면서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셨습니다.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점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이요한 곳은 정말 친절하셨습니다.
짐을 다 싸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정말 금방 오셨어요. 우체국 도착해서 짐 나르는 것도 직원분들이 나오셔서 도와주셨습니다. 우려한 것과 다르게 친절한 서비스로 손쉽게 일을 마쳤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저는 올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왔어요. 박스가 소중해지는 시기예요. 짐을 싸야 할 때가 오면 길을 가면서 버려진 박스가 있나를 열심히 훔쳐봅니다. 2년에 한 번씩 월세집을 옮겨가는 게 일이다 보니 익숙한 일이지만 힘든 건 매번 똑같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보니 생각보다 짐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1년이라는 시간이 짧지는 않기에 계절별로 필요한 것들도 있었고 좀 더 챙긴 물건들이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가보니 덜 챙겼어도 하는 것들이 있었어요. 티셔츠 한 두장이 빠져도 큰 문제가 없었고 청바지는 두 개만 있어도 괜찮았어요. '삶'을 사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소유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것보다는 원하는 게 많다는 걸 배웠어요. 미련이요. 짐을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미련이란 단어가 많이 떠올랐어요.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찬장 속에 한 겹, 두 겹을 벗겨야 나타나는 양파의 속살처럼 그 자리에 언제나 있던 물건들이 '나 정말 필요한 거야?'라고 묻더라고요. 가져갈 수 없는 물리적인 압박이 미련을 정리할 수 있는 최초의 조건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타의적 미니멀리즘 이랄까요? 하지만 덕분에 그 뒤로도 꾸준히 미련과 헤어지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미련하게 끼고 산다는 말인 거겠죠?)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죽기 전에 남기고 가는 미련들이 많으면 쉽게 가기가 어렵겠다. 아까워서 어떻게 죽어.'
용량을 꽉 채운 사진첩에 사진들이, 언젠가 다시 읽겠지 해서 남겨진 책들이 불쑥 버겁게 느껴졌어요. 칭칭 감은 붕대처럼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싹 비웠습니다. 과감하게 정리하고 나면 꼭 몇 달 뒤에 '아! 그거 버리지 말걸' 하면서 찾게 되는 경우가 생기지만요. 이럴 땐 허허하고 웃어넘기면 그게 또 그만 인 게 되더라고요. 가벼워진 용량에 웃어넘길 여유가 채워졌나 봐요. 이렇게 웃어넘겨야 다음 정리가 가능해질 것 같기도 하고요. 허허.
저는 총 6개 박스를 부쳤어요. 2개만 용량초과로 12000원씩, 나머지는 5~6000원씩으로 총 46000원 결제했어요. 생각보다 적게 나온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요?
짐들을 제주도에 부치고 나니 실감이.. 안 납니다. 아직도 정리하고 부쳐야 할 짐들이 많거든요 하하하.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는 짐들.. 정말 필요한 것들과 필요할 것 같은 것들, 그리고 3년 동안 쓰지 않았던 것들로 나누어서 정리하고 있어요. 29일에 2차로 택배로 상자 2~3개 정도 보내고 이후로 제주도엄마댁에 두었다가 받을 생각이에요. 1년을 산다고 생각하니 웬만한 짐들은 다 챙기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건 사면되지~라고 생각했다가도 번거롭지만 챙겨서 가는 게 나중에 더 절약이 될 것 같습니다. ( 이 점에 대해서는 살아본 후에 후기 알려드릴게요! ) 이삿짐으로 정신이 없는 집 안에 있는 게 불안정해요. 다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남은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지네요.
저 무사히 갈 수 있겠죠?
- 번거롭지만 챙겨서 간 것들에 후회가 남았냐고요? 아니요. 저에게는 '혹시 몰라서' 챙겨간 것이 유용하게 쓰인 적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샌드위치용 랩, 멀티탭 몽땅, 캠핑용 그릇, 반려견 간식 충분하게 등..(전부 다 생각은 안 나지만) 다시 사려면 다 돈이 잖아요. 표선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도 은근히 있었고요. 아마 계획 중인 동네의 상점 조건들을 미리 파악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짐 정리를 하면서는 정신이 없었어요.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에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짐과의 싸움에서 몇 번이고 주저앉았습니다. 이내 집에 공간이 비어지는 게 티가 나기 시작하면서 초조함도 들었습니다. 싹 비어진 집을 볼 때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마음이 복잡한 날도 있었고 설레던 날도 있었어요. 주변에서 건넨 걱정과 우려의 말들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경력 단절이 괜찮냐, 너무 긴 거 아니냐, 심심하면 돌아와라 등등, 나를 생각해 줘서 건네준 조언들은 사실 각자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 들이지 나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나에게는 이 시간이 필요했고 간절한데 그걸 남들이 알 수 있을까요? 어떤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은 오직 당사자의 것입니다. 어떤 누구도 알 수 없어요. 당시 저는 미래를 바라볼 힘이 없었어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일상의 리듬을 회복했고 다시 웃게 되었고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에 충실하고 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요.
타인의 조언이 되려 불안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한 번만 멈춰 보세요. 불안에게 출발지를 물어봐주세요. 나에게도 해당이 되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의 말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를요.
오직 자신을 믿는 거예요. 내가 한 선택지에서 성공과 실패는 오직 경험이 될 뿐이니까요.
1화 End.
2022. 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