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제주살이 당시의 기록을 재구성하였습니다.
트럭에 한가득 박스를 싣고 번영로를 달리는 중입니다. 짐이 젖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격하게 부는 바람에 차가 흔들릴 정도니, 오늘따라 이 바람까지도 왠지 아쉽습니다. 전진을 막는 강력한 표선의 바닷바람이 그리울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이 길이 우습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오늘은 떠나기 전에 있었던 찰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때마침 (?) 서울에서 친한 동생이 내려왔습니다. 어떻게 이 타이밍에 맞춰 사람을 보내준 건지 신기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은 일이었죠. 정신이 빠진 날들을 살고 있어서 동생이 온다는 것도 깜빡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내일인 거예요. 우리는 오랜만에 제주공항에서 만났습니다. 찰랑이는 봄소녀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난 동생을 만나니 거짓말처럼 함박웃음이 났습니다. 렌터카를 찾으러 가는 길에 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사실은 이런 일을 겪었는데 네가 괜찮을지 걱정된다며 오지 말라고 할까 고민을 했었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동생은 아주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오길 정말 잘했네!"
힘 있고 밝은 에너지가 가진 전파력에 놀랬습니다. 마음이 눈 밭이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태양빛이 한순간에 모든 곳을 녹인 기분이랄까요? 동생의 마음이 그늘처럼 느껴져서 큰 미소로 대신 답을 합니다.
우리는 애월을 향해 달렸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지는 창밖의 풍경은 마치 국경을 넘어가는 것 같았죠.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낯선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수월봉으로 가는 길목에 끝이 보이지 않는 콜라비 밭은 평화로워 보였고 화산체의 일부라고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감격하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파도마저 깨지는 절벽 아래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문득 세상이 넓다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한참을 뛰어다니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돌고래가 마실 나오는 걸 볼 수 있다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달콤한 빵과 진하게 내려진 커피를 마시니 오름 하나쯤은 거뜬히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힘이 납니다. 러키의 상징이라 불리는 돌고래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우리는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봤습니다. '요지부동' 눈이 먼저 빠질 것 같았지만 쉽게 포기가 안되더라고요.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전 세계인이 느끼는 한 마음인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이드 미러 뒤로 보이는 서쪽의 해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백예린 노래의 멜로디까지 눈앞에 펼쳐진 사각 프레임 속의 도로가 영화처럼 느껴졌어요. 오전부터 쌓아 올라진 감정들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는 순간, '찰칵'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기분이랄까요.
다음 날 동생이 예약해 둔 '들랑'이라는 명상 센터에 갔습니다. 가을로 돌아간 듯이 선선해진 밤공기에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술이 잔뜩 취한 사람들처럼 웃고 또 웃습니다. 시시한 농담에도 뭐가 그리 재미난지 길 한복판에 서서 배를 잡고 쓰러집니다. 나이가 들어도 잃고 싶지 않은 것, 이 천진난만함 웃음 인 것 같습니다.
달빛 아래에서 하는 명상프로그램은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었어요. 명상을 해본 적 없는 저에게도 싱잉볼 소리는 순간의 다른 차원으로 나를 끌고 가는 것 같았고 떠오르는 온갖 생각들을 마주하게 해 주었죠. 살곁을 스치는 바람들이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의 리드하에 단전 안으로 차오르는 것 같은 깊은숨, 그 안에서 숨을 쉬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도 편안하게 느껴져서 이 순간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제주살이를 왜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명상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와 차를 내어준 선생님께서 제게 물었습니다. 잠시 생각했습니다. 생각보다 생각이 길어졌습니다.
"사실 이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었는데요. 그때마다 대답을 하기 위한 대답을 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정리를 못한 것 같기는 한데.. (긴 사이) 하나는 번아웃 때문이고 또 하나는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어요."
편안해진 숨을 쉬다 문득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명치에 담이라도 결린 것처럼 숨이 내려가지 않던 그때, 제주도를 내려오기 전까지 저는 얕은 숨을 쉬며 살고 있었죠. 선생님 역시 비슷한 원인으로 제주도에 왔다 했습니다.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제게 선생님은 그 조차도 시간에 맡기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저 오늘을 살아보라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해보라고 말이에요.
그날의 대화를 통해 드디어 저만의 답을 찾았습니다. '도피.' 나는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생산력을 요구하는 사회에 굴복한 자아에서 나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관계로부터, 성공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나를 솔직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누군가 내게 제주살이를 왜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살기 위해서 도망쳤어요."라고 말이에요.
"육지로 올라가실 거예요?"
앞으로의 행보를 묻는 질문에 당분간은 흐름에 맡겨보고 싶다 말했습니다. 언제 타게 될지 모르는 서울행 비행기, 그전까지 남은 제주에서의 시간을 하루하루 여행자처럼 살아보고 싶다고. '유목은 한국에서 유럽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로부터 떠나는 능력'이라 말하는 은유시인의 말처럼 살아보고 싶다며 다짐하듯 읊조리듯 말했습니다.
제주시로 터를 옮겨 난산리까지 출근을 합니다.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이 얼마나 힘든지 오만정이 다 떨어질 것 만 같아요. 그런데도 도착하면 출근길의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위로합니다. 처음 이 길을 걸어가며 여기서 일을 해야만겠다고 다짐하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 봤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길과 하늘과 자라나는 풀들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을까. 오랜 기억은 없고 오랜 기록만 있다는 문구에 반항하듯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는 소망을 새겨봅니다.
14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