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제주살이를 할 당시의 기록을 재구성하였습니다.
'띠띠... 띠.. 띠 삐비비비비비-'
현관문 도어록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집 안 바닥에 누워 겨울이 와 놀고 있던 저는 악몽을 꾼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현관문을 바라봤습니다. 현관문을 두고 '그와' 경쟁을 부리는 것처럼요. 집을 잘 못 찾았겠지 생각하면서도 현관문을 열어 보기가 겁이 났습니다. 한 시간 뒤 헬스장을 가기 위해 현관문을 살짝 열어 봤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긴장이 풀렸습니다. 마음을 쓸어내며 운동을 다녀왔습니다.
1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겨울이의 저녁을 챙겨주고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만들어 식탁에 앉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밥을 흡입하며 벌써 끝나버린 식사를 아쉬워했습니다. 20분 남짓의 영상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진 빈 그릇을 바라보고 있는데, '띠띠띠띠. 삐비비비비비비비..' 몇 시간 전 내 심장을 낙하시킨 그 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섬뜩했습니다. 뇌가 굳는 느낌이었습니다. 조용히 걸어가 현관문을 쥐어잡고는 누구냐고 물어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마구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긴장감에 불이 순식간에 붙은 것처럼 온몸이 떨렸습니다.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관리실에 전화를 해서 누가 들어왔는지 물어보라는 친구에 말에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집 잘 못 찾아온 거 아니에요? 아니.. 나도 가끔 그래요. 여기가 한 달 살기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별 일 아닐 거예요. 에이 뭐, 누가 술 마시고 그런 거겠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해보세요~ 지문채취 이런 거 안되나? 호호호"
예능프로를 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각성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무책임한 대답에 화가 났습니다.
"사장님 딸이 이런 일을 겪어도 그렇게 말씀하실 건가요?"
서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관리실 번호를 받아 직접 물어봤습니다.
"그 시간에.. CCTV 에 찍힌 사람이 없는데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분들에게도 돌아오는 대답도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차 소리가 '그'에게 겁을 줄 수 있길 바랐습니다. 경찰분들이 곁에 있으니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파출소가 바로 옆 이니까요,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신고하세요. 바로 오겠습니다. 저희가 순찰을 조금 하다 갈게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경찰분들이 돌아가시고 문을 닫자마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경찰이 왔다 갔다는 설명을 하기 시작한 순간, 그러니까 한 문장이 채 끝나지 않은 순간 다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띠띠띠띠, 삐비비비비. 찰크락 찰크락"
마치 자기 집에 들어오는 사람의 익숙한 행동처럼, '그'는 자기 집 도어록이 비밀번호를 잊은 것처럼 문고를 잡아 흔들었습니다. 손에 들린 핸드폰 안에서는 친구가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뭐야? 뭔 소리야?"
"누구세요. 누구세요! 잠깐만 나 신고해야 돼"
급히 신고를 했습니다. 빠르게 달려온 경찰분들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경찰분들은 의아해했습니다. 자신들이 서로 돌아가지 않고 주변을 보고 있었는데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한 경찰분들은 서귀포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지문감식을 요청했습니다.
도어록에 찍힌 지문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걸 경찰분들은 알고 계셨습니다. 출동한 국과수 분들 역시 잘 알고 계셨죠. 그러나 그분들은 겁먹은 한 여성을 위해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힌남노의 그날처럼 다시 겨울이와 저는 친구네 집으로 가 하루를 보냈습니다. 친구는 제게 따뜻하고 안전함을 제공했습니다, 그날처럼요.
그 뒤로 도저히 집에 혼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 낮에도 복도를 올라갈 때면 겁이 났고 집 안에 있을 때도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매일 열려있는 공동현관을 당장 고칠 수 없다고 단정 지어 말하며 남 일이라는 듯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대응하는 집주인의 행동이 소름 끼쳤고 이곳에서는 안전을 절대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장 갈 곳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무서움을 참고 살 수가 없어서 무리하게 집을 당장 나가겠다 말을 해버렸습니다. 제주살이 중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입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과연 집을 나가는 게 최선인가 라는 의심이 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날 그 시각에 그 일을 겪은 사람은 바로 '나' 이기에, 뇌가 굳어 버리는 기분, 손이 떨리는 공포감, 더 이상 집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 공간에서 느낀 외로움은 나만 알기 때문에 이 결정은 나만 할 수 있으며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누가 '이깟일로'라고 치부해도 말이에요.
이 일을 들은 주변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생각보다 주변에는 비슷한 공포를 느낀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왜 우리가 이사를 해야만 하는지, 왜 불안감과 공포를 당연하게 떠안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큰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뭐가 큰 일이라고' 라며 치부해 버리는 태도가 폭력인지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로 인해 고통을 안아야 하는지 억울했습니다. 다른 여성분들이 이 같은 공포감과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아 수사를 진행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문을 열어보지 않았냐고, 왜 인터폰을 눌러보지 않았냐고 말이에요. 난 입을 다물고 생각합니다. 그 숨 막혔던 1초의 순간을요.
표선과 이렇게 작별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떠나는 마지막 날 단골 카페와 미용실 사장님, 겨울 이를 예뻐하던 삼촌댁에 들려 인사를 드렸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에 놀란 얼굴을 보니 문득 이곳에서 '삶'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움이 더 커집니다. 매일 걷던 산책길을 마지막으로 걸으니 다시 여행객으로 와야 하는 일이 왠지 아쉽습니다. 제주에 오면 행복과 낭만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표선에서의 마지막 날은 수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수도승이 되어 넓은 마음이 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하늘도 아쉬운 듯 오늘 표선의 하늘은 구름이 가득합니다. 짧지만 행복했습니다. 표선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 아침공기, 거센 강풍, 거리, 들꽃, 바다냄새, 하늘, 밤, 매일 달랐던 달의 모양까지 마음에 다 있습니다. 잊지 못할 거예요.
서울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기에 제주시에 있는 어멍집에 신세를 지러 갑니다. 인생 참, 한 치 앞을 알 수 없네요.
나의 90일간의 표선살이.. 안녕.
13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