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제주살이의 기록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2시였다. 불 꺼진 병원에 작은 너를 혼자 두고 오는 게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마스크 안으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보다 더 씩씩하게 지낼지도 몰라.'
나는 이토록 연약한 인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침묵만 있었다. 내 발소리를 듣고 우렁차게 인사하던 너의 목소리가 문이 열리기 전부터 들리던 그 소리도 문 앞까지 튀어나와 반기던 너는 어디에도 없었다. 너의 부재는 나에게 그 어떤 어둠보다 무섭게 느껴졌다.
대충 잠을 잤다. 그리고 출근을 했다. 버스에서 내려 가게까지 가는,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는 길 위에서 다짐을 한다.
' 이 슬픔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드러내지 말자.'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너의 안부를 묻는 말소리에 바로 무너졌다. 일상은 서서히 멈추었다.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는 반복되는 일들에 생기가 사라졌다. 손에 잡히지 않아 놓치기 일쑤였다. 한 걸음조차 내딛을 수 없는 한 칸의 병실에 갇혀 있는 네가 그곳에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턱턱 막혔다.
'혹시라도 자기를 버렸다는 생각을 하면 어쩌지?'
나는 전화를 걸었다. 너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단 5분이라도 널 보러 가겠다는 생각으로 2시간을 달려갔다. 나를 반겨주는 너, 언제나처럼 먼저 발견하는 너. 나는 널 꼭 안았다. 아무 말 없이 안고서 계속 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안고 있었다.
<22. 11. 22 일기 중.>
이 전에 친구가 다급하게 하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응급차를 부르면 병원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고. 이곳에서 최선의 거리는 사람을 피 말리게 하고도 남았습니다. 섬의 의료체계는 생각보다 더 열약했습니다. 사람이 저 정도인데 동물은 오죽할까요. 2022년 당시의 표선면에는 동물병원이 '하나' 있었어요. 그 하나 있는 동물병원은 '가축병원'이란 커다란 간판을 달고 있었죠. 24시간 야간 진료를 하는 동물병원은 서쪽으로도 북쪽으로도 한 시간가량을 가야만 했습니다. 이것저것 다 따져가며 어떻게 살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은 아픈 일은 사람을 완전히 무너지게 만드는 일이에요. 어떤 의지와 희망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한 '기도'뿐. 길거리에서 우는 자신을 달래는 일은 서울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매달리는 일뿐. 섬에서 홀로 이 고통을 견뎌내기에 나는 아직 미성숙한 것 같습니다.
반려견 겨울이는 곧 9살이 됩니다. 부모님들이 언제 이렇게 컸냐라는 말처럼 9년이라는 시간이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사람처럼 얼굴이 변하지도 않으니 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으니 꼭 나만 나이를 먹은 것 같아요. 개 나이가 9살이면 사람 나이로는 약 60살 정도 된다는데 노화를 받아들이는 법도 준비하는 법도 모르는 나는 늘 그렇듯 같은 밥을 주고 같은 거리를 산책하고 같은 속도로 달리기를 요구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겨울이는 자신의 언어로 나에게 이따금씩 신호를 보내왔던 것 같아요. 이제 그만 걷고 싶다고, 이제 그만 먹어도 된다고, 이 정도면 다 놀았다고 나는 예전 같지 않다고. 동물은 습성상 아픔을 끝까지 참는다고 합니다. 겨울이의 상태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알아볼수록 전부 내 잘 못 같습니다. 드넓은 바다와 목줄이 없이도 뛰어놀 수 있는 모래 바닥이 겨울이에게 '자유'를 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한 시간을 달려가야만 병원에 갈 수 있고 진드기가 훨씬 많은 곳이라는 정보도 없이 그저 행복해할 거라고 자신했습니다.
내가 한 사랑이 폭력처럼 느껴집니다.
겨울이는 9년 전, 파보에 걸린 생후 5개월 때 안락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인의 다급한 전화로 구조를 한 일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어요. 나는 그때 당시 병간호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무식이 용감을 발휘했죠. 일 년 동안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병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그 뒤로는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하게 지내서 병에 걸릴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확신은 '바람'이 되어 내 일기장을 적시고 있네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이가 없던 시간은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할 만큼 다른 색의 세상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먼저 떠날 거라는 상상이 눈앞에 온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부정과 자책, 두려움과 공포, 미안함이 떠다니는 방 안에서 나는 언젠가 혼자 남겨지게 될 나를 걱정했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이기적이라니. 나를 생각하다니.'
일방적인 사랑을 주는 반려견에게서 '사랑'의 원형을 배우며 이기심으로부터 얻은 작은 양심이 앞으로의 날들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내 입장에서 상대의 행복을 제단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고통의 시간을 통해 배웁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이 '관심' 보다는 '보상'이었기에 그 방식으로 사랑을 대물림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관심을 주는 법을 몰라서,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진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런 사랑을 받던 상대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간식보다 주인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는 글을 읽으며 물론 이 말이 너에게 억울한 오해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보상으로 사랑을 퉁치는 것보다 관심과 너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너의 행복을 책임지기로 다짐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알 수 없어서 사랑을 미루지 않기로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제주가 훗날의 조건 없는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그날의 하늘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멋진 하늘 아래 우리가 함께여서, 그 순간에 우리가 함께라는 것을 감사함과 소중함으로 눈을 마주해서, 온전한 마음으로 시간을 공유해서 후회 없던 우정이기를.
고비를 넘긴 겨울이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며 배고픔을 표현합니다. 눈물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지만 입술을 꾹 다물며 입꼬리를 올려 겨울이에게 희망의 기운을 전합니다. 사랑은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에게 찾아 올 언젠가의 이별이 서로에게 해피엔딩 이기를.
12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