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제주살이 당시의 기록을 재편집하였습니다.
'서쪽 목화밭에서 작은 축제를 한대, 보러 갈래?'
사장님 지인이 축제를 연다는 소식에 단번에 모두가 "예쓰!!!"를 외쳤습니다. 뚜벅이 인생에게는 특히나 놓칠 수 없는 황금 같은 기회였죠. 잠 잘 준비에 들어가는 해를 마중하는 하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서, 목화밭을 직접 가꾸어 옷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너무도 궁금해서, 노천에서 벌어지는 음악과 자유로움의 향연을 느끼고 싶어서 난산리 직원들은 퇴근 후 다시 모였습니다. 서쪽으로 달려가는 차창 밖의 모습은 영화의 엔딩 장면처럼 끝없이 펼쳐진 풍경이었고 차 안의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떠들며 웃음소리로 이동거리를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도착하는 동시에 공연의 작별멘트가 나왔지만 내 두 발이 서있는 이곳의 광경은 어떤 소리도 필요치 않을 만큼 황홀했기에 온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가녀린 목화솜들이 심어진 드넓은 밭 저편에 크고 높게 자란 나무들과 어우러진 작은 나무집은 굉장히 이국적으로 보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이곳은 꽤 추워진 오늘의 날씨와도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목화밭을 직접 일군 주인분은 몇 년 전부터 지금의 현실을 꿈꿔 왔다고 했습니다. 도시에서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목화밭을 가꾸기 시작했다며 실패와 시도를 반복하다 마침내 수확을 시작 한 이후 작은 축제를 열어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며 이제야 꿈을 실현하며 살게 됐다고. 이제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천장인 이 공간과 사람이 한 가족처럼 보였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그 사람의 얼굴은 지금껏 살면서 본 어른 중에 가장 순수한 빛을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즐거움이 전염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삶의 궤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다르다.
자신만의 즐거움과 행복을 마치 밭처럼 일구어낸다.
그 사람들은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다.
자유는 사전적 의미로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는 명사적 의미와 자연 및 사회의 객관적 필연성을 인식하고 이것을 활용하는 일이라는 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 본 사람들은 '진짜'였다.
그들은 빛을 뿜어낸다.
2022. 11. 05 일기 중에.
수확을 축하하러 모인 그곳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특별함을 소리 내고 있었습니다. 맞아요, 내 주변에는 없던 유형의 사람들이었기에 어떤 환상으로 그들을 바라봤는지도 모르죠. 그토록 갈망하던 '진짜'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 한 이 기분은 마치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 같은 스파크가 가슴속에 가득 찬 것 같았어요. 이럴 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실제로 나를 조종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속으로 갈망하는 그 방면으로 목덜미를 잡고 꿀려온 기분 같습니다. 어쩌면 오늘이 그 여정의 한 지점이 아닐까요? 긴 대화를 나누어보지 않아도 그들의 표정에서 받을 수 있는 편안함과 당당함,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옷차림, 유별남이 아닌 유일함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내 심장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처럼 살고 싶다.' 이 말의 출처는 이 전과 분명히 달랐습니다. 진짜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저들처럼 살고 싶다는 말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 바람과는 다른 결의 목표였습니다. 그들만의 '진짜'가 있듯이 나만의 진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어두워진 밤, 하이라이터에 의존하며 돌아오는 차 안에도 어두움이 깔렸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영혼과 대화를 시도하듯, 깨어있는 취침시간처럼 말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생일은 늘 어려운 날이었어요. 10대 까지는 데리버거와 뷔페를 가는 날이었고 20대에는 인맥을 자랑하는 잔치였다면 30대에는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날이 제게는 '생일날'이었죠. 이제는 애써서 사람들을 모아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생일은 루저가 된 것 같았죠. 어쩌라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까다롭지만 분명한 것은 늘 외로운 날이었다는 거예요.
제주도 어멍이 생일밥상을 차려주신다 해서 겨울이 와 함께 제주시로 달려왔습니다. 성게가 들어간 미역국, 지금 한창 맛이 좋다는 갈치, 입에서 녹아버리는 고기와 직접 찢은 시금치나물에 손가락이 불도록 손으로 직접 깐 꼬막 무침까지, 밥 한 그릇만 먹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를 만큼의 음식들이 상을 비좁아하고 있었죠.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친구가 만들어 놓고 간 서프라이즈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기다리다 집에 간다는 말과 함께 케이크와 선물을 정성스럽게 두고 간 흔적이 침대 주름을 대신하여 잡고 있었습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이날 밤, 12시가 울리는 동시에 퍼진 생일 노래에는 한 사람의 목소리만 있었습니다. 혼자이지만 혼자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준비해 준 케이크를 불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습니다. 와인 한 잔에 알딸딸 해진 걸 빌미로 카메라 속 나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완전한 행복감을 느낀 첫 생일이었어요. 타지에서 혼자 보내는 생일이 이만큼 좋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온전히 그대들 덕분이겠지요. 좋은 선물과 축하를 받으며 보냈음에도 찾아오던 쓸쓸함과 공허함이 없는 선물 같은 순간이 찾아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왜 이곳에서는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 걸까요?
다음 날, 강제 퇴근을 당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래요. '생일이니까.' 꽉 차있는 예약 리스트를 두고 도저히 혼자 갈 수가 없었지만 그들은 저보다 더 완강했어요. 떠밀리듯 나와 길을 걸었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의 희생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최고로 행복한 날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주에서의 첫 생일을 좋은 기억으로 남기게 해주고 싶었다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배웁니다. 그들의 사랑은 거울이 되어 이 전의 나를 보게 해 줍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친한 친구의 얼굴을 일 년에 한두 번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만나도 어제 만나는 것 같아'라고 하던 그 말이 책임을 회피하는 말이 아니었을 까, 그 시간을 자기 계발에 쓰거나 더 필요한 사람을 계획적으로 만나거나 일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며 뒤로 미루던 시간들이 결국 나를 공허하고 쓸쓸하게 만든 게 아니었을 까. 운이 좋아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먼 곳에서 잊지 않고 축하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옵니다. 떨어져서 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운이 좋아 사랑을 배웁니다. 점점 그 사람들이 보고 싶어 집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곳에는 겨울이의 혈변이 가득했습니다. 며칠 전 아팠던 겨울이가 신경이 쓰였지만 컨디션이 돌아온 것 같아 집에서 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두고 간 저의 실수가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 같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전부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겨울아.' 무지한 주인을 만나 작은 생명을 아프게 했다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잡으며 당장 갈 수 있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밤 10시, 주변에는 24시 동물 병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도상의 반경 20km 내외에 뜨는 동물병원은 없었습니다. 제주도를 통째로 날리고 싶었습니다. 겨우 찾아낸 24시 동물병원에서는 현재 진료가 불가하다는 말만 할 뿐, 한치의 인정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곳에서 다행히 전화를 받으셨고 겨울이의 상태를 들어보시더니 지금 당장 오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택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병원까지는 꼬박 1시간이 걸렸습니다.
빛없는 번영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 제주에 와서, 병원 하나 없는 외딴곳에 와서 겨울 이를 아프게 한 건지, 누구를 위한 건지, 나는 나 하나만 생각했던 건지, 겨울이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는지 떠오르는 생각은 죄다 자기 비난의 말 들뿐이었습니다. '제발 살아만 줘.' 호소하며 겨울 이를 안았습니다. 지금 내 품에 있는 따뜻한 겨울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밤 11시가 되어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입원을 하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깜깜한 병실 안에 겨울 이를 두고 혼자 돌아왔습니다. 새벽 두 시에 도착한 방 안은 갑자기 차갑게 느껴졌고 내내 울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겨울이는 나날이 호전되고 있지만 여전히 혼자 있는 집으로 퇴근을 합니다. 단조로운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버스로 왕복 4시간이 걸려도 매일 겨울 이를 보러 병원에 갑니다. 단 5분의 시간이라도 겨울 이를 보면 안심이 됩니다. 다음 주 이야기에는 겨울이가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1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