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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l 20. 2024

이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37.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이런 질문을 네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 습관이 되게 하라 : “이 사람이 이 이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질문은 네 자신에게 먼저 던져서, 네 자신을 가장 먼저 면밀하게 살펴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37 중에서



1박 2일 여행 가방을 챙긴다.

다섯 식구가 갈아입을 옷, 수건, 물놀이 옷, 생필품 등이 캐리어 하나에 가득 찬다.

놀러 가는 목적에 맞게 ‘놀 수만’ 있게 챙기면 될 텐데, 내 가방과 에코백에 주섬주섬 더 챙긴다.

수첩, 필기류, 《명상록》, 필사 노트, 로지텍 키보드 ….

수첩과 필기류는 외출 시 꼭 챙기는 물품이다.

무엇이든 적을 수 있고, 심심할 때 은서의 낙서장이 되기도 한다.  

핸드폰을 보여 주는 대신 책과 쓰기를 통해 시간을 보낸다.

필사 노트는 웬만해서는 가져가지 않지만, 이번처럼 1박 2일 자리를 비울 때는 가져간다.

숙소에서 잠깐 쉬는 동안, 가족이 자고 있는 시간에 쓰면 된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마트폰 하나면 간단한데 왜 무겁게, 거추장스럽게 노트며 필기류며 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일까.

필사도 하루 빠지면 안 되나.


매일 필사를 하고, 문장을 보며 하루 한 편 짧은 글을 써 온 지 3년 차다.

못 지킬 때도 있지만 최대한 지키려고 한다.

필사를 하고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좋은 문장을 읽고, 곱씹고, 내 방식으로 소화한 뒤 글을 써서 글쓰기 근육을 기른다는 목적이 있다.

무엇보다 나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약속도 물론이지만, 나와의 약속도 중요하다.

‘너는 할 수 있어. 역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니까. 널 믿었어.’ 하는 자기 신뢰와 지지를 스스로에게 보낼 수 있다.

내 안에서 내적 동기가 생기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된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부러라도 아날로그적으로 생활하려 하는 것도 있다.

가방은 무겁지만 화면에 내 시선과 생각을 뺏기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대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쓰고 싶어서 수첩과 펜을 챙긴다.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아이들이 차례로 일어난다.

오늘 놀러 가는 걸 알아서인지 바로 노트와 책을 뽑아 와 앉는다.

필사와 독서를 하고, 영어 듣기 하며 미리 오늘 할 일을 한다.

아이들도 나도 각자 부지런히 제 할 일을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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