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남편

《논어》, 공자_제1편 학이(學而) 9.

by 안현진

증자가 말하였다. "장례를 신중하게 치르고 먼 조상의 제사에도 정성을 다하면, 백성들의 인정이 돈독해질 것이다."


-《논어》, 공자_제1편 학이(學而) 9.



일주일 전, 시댁 제사가 있었다.

시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였다.

그날 남편은 쉬는 날이었지만 야간 근무를 들어갔다.

제사가 있는 걸 깜빡하고 근무 신청을 한 것이다.

두 어번 얘기도 했는데 전혀 처음 듣는 듯한 반응에 찌릿 째려봤다.

추가 근무 들어가는 마음을 알기에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남편 없이 시댁 제사에 가는 것이, 왜 남자보다 여자가 더 시댁 제사를 신경 쓰고 챙기는지, 왜 남자는 자기 집안 제사인데도 날짜를 모르는 건지 억울했다.

엄마는 종손 며느리가 되어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꾸짖었다.

가장 어렵고 중책에 있는 자리라 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어머님과 숙모님 세 분이 생선, 고기, 나물, 과일을 분담해서 준비해 오면 합쳐서 상에 올린다.

나는 옆에서 상 차리고 치우는 걸 거들고, 제수 나르는 일을 한다.

크게 하는 일은 없지만 제사가 있는 날이면 신경이 쓰인다.

더군다나 남편 없이 갈 때는 더더욱 마음이 무겁다.

엄마는 지금이 내가 가장 편하고 수월할 때라고, 나중에는 네가 책임져야 할 자리지 않냐고 말했다.

역시나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더욱 무거워졌다.

막상 가면 잘 지내고 오면서도 가기 전까지의 시간과 마음이 어렵다.

갔다 온 뒤엔 잘 끝났다, 갔다 오길 잘했다 하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시댁은 어른들끼리도 사촌들끼리도 사이가 좋다.

나는 부모님이 모두 6남매 중 다섯 째라 사촌 언니 오빠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났다.

터울이 적게 나는 언니 오빠들은 좋아하고 따랐지만, 더 위의 언니 오빠들은 명절과 제사 때만 한 번씩 보기에 더욱 서먹하고 어려웠다.

그런데 남편은 아래로 나이 차가 3살부터 띠동갑인 막내 사촌들까지 두루두루 친했다.

그 모습이 부럽고 보기 좋았다.

시어른들도 아래위로 몇 살 차이 나지 않고 동갑인 시동생들도 살갑게 대해주어 늘 고맙다.

제사와 명절 때 보고, 인사 나누는 10년 사이 꽤 편해졌다.

그런데도 시댁이란 관계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렵다.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하고, 온전히 나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며느리라는 역할에 속한 나는 편하거나 자연스럽지 않지만 내게 주어진 한 역할에 충실히 임할 뿐이다.

엄마 말마따나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선택에 의해 따라온 자리기에 또다시 내려놓는다.


남편이 피곤한지 코를 심하게 골며 잔다.

스윽 손을 잡으면 손에 힘이 들어간다.

깬 건가 싶어 손가락으로 살짝 긁어보면 다시 코를 골며 잔다.

다음 날 물어보면 전혀 모르는 걸 보니 반사 신경처럼 손을 잡아주는 듯하다.

피곤해 쓰러져 자는 남편보다 깨어있을 때가 많기에 잠든 남편을 바라볼 때가 많다.

다섯 식구 책임지는 가장과 어릴 때부터 들어온 우리 집 장손이란 무게보다는 내가 더 가볍지 않나.

며느리란 무게보다 부부로 살고 사랑하는 게 훨씬 큰 행복의 무게이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며 살다 보니 어느덧 10년이 흘러가고 있다.

10년 뒤엔 어떻게 상황이 달라져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지금과 같을 것이다.

그렇게 10년, 20년, 30년… 나이 들어가는 부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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