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잠옷

by anica

잠잘 때 옷을 입는 사람과 입지 않는 사람이 있다. 입는 사람 중에서는 잠옷을 사는 부류와 잠옷이 생기는 부류가 있다. 나는 주로 잠옷이 생기는 부류였다. 더 이상 외출복으로 입지 않는 티셔츠, 엄마가 시원해 보인다며 사주신 원피스형 잠옷, 막내 이모가 안 입는다며 보내주신 잠옷까지. 집 안에서만 입다 보니 크게 해질 일이 없어 잠옷은 해가 갈수록 쌓여만 갔다. 자는 동안에는 보지도 못하는 걸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지름신이 강림한 어느 날, 인스타그램 광고에 이끌려 겨울 잠옷 한 벌을 샀다. 이모가 주신 게 하나 있긴 했지만, 팔다리 길이가 조금씩 짧아 조금만 움직여도 바지는 종아리 중간까지 올라가고, 소매 시보리는 팔꿈치와 인사를 나눴다. 부피는 또 얼마나 큰지 거울을 보면 겨울잠을 준비하는 갈색곰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저 보들보들 포근해 보이는 흰색 줄무늬 잠옷이 있으면 잠도 잘 자고 추운 날씨도 낭만이 될 것 같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집에 마땅하게 입을 게 없어서 사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왕 구매하는 거 예쁜 걸 골라보자는 뜻이 컸다.

며칠 후 첫 세탁을 완료한 새 잠옷을 개시했다. 몸에 착 감기는 촉감에 마음이 간질간질하고 입꼬리가 자꾸 올라갔다. 쇼핑 대~~성공!!! 단점으로 느낄 만한 부분도 좋게 보였다. 찹찹한 금색 단추는 반짝이니까 예쁘고, 손등과 발등을 살짝 가리는 길이감은 냉기를 막아주는 용도이며, 묵직한 무게는 안정감을 주기 위함인 거다. 빨래하는 동안 입지 못하는 날이 아쉬웠고 그동안 입어야 하는 갈색곰 잠옷은 점점 더 미운털이 박혔다. 그래서 어두운 계열로 하나 더 샀다! 이번에는 얇은 기모 소재였는데 두 번째 쇼핑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다. 그 브랜드에서 여름 잠옷도 마련할 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돈을 쓰고, 택배를 기다리고, 새 물건을 손에 넣는 일은 늘 설렌다. 처음 사본 잠옷이 불러온 감정은 단순히 쇼핑의 즐거움만이 아니었다. 혼자 있어도, 집에만 있어도, '갖추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똑같은 밥을 먹어도 좀 더 정갈하게 차리게 되고, 방을 청소하고 싶어지고, 일정이 없으면 잘 씻지 않는 내가 씻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집만 열심히 꾸미고 정작 그곳에 머무르는 나의 옷차림에는 너무 무심했다.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니겠지만 옷이 날개가 맞다. 그거 하나 바꿔 입었다고 집 안에서의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렇게 조금씩 일상의 행복을 쌓아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까워 못 쓰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