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이에요>
아이들이 여섯 살 무렵, 강원도의 어느 절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절에 있는 석종 앞에는 소원을 적어 집어넣는 나무로 만든 함이 있었습니다. 소원을 적겠다며 종이를 집어 든 아이들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썼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귓속말로 들려준 말은 저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종이에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해주세요.” 라고 적었다는군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소원이라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두려워하기 시작한 때는 다섯 살 무렵부터였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울면서 저에게 어떻게 하면 죽지 않는지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저는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습니다.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도 끝내 죽음을 피하지 못했어."라고 말하였는데 아뿔싸, 상황은 더 나빠져만 갔습니다. 아이들은 더 크게 울면서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니 알려달라며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절한 답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구원투수가 필요했습니다. 큰 애를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좋은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큰 애는 잠시 생각하더니 해리포터 책에 나오는 ‘마법사의 돌’ 이야기를 동생들에게 차분하게 들려주더군요. 역시 나보다 상황대처 능력이 나았습니다. 동생들에게 이 돌을 찾으면 죽지 않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자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이냐고 몇 번을 되묻더군요. 나는 내일 이 돌을 꼭 찾아주겠노라고 약속을 하였고 그때서야 겨우 울음을 그친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 날 밤 내일 어떤 돌을 찾아와 불멸의 돌이라고 하며 건네주어야 하나 고민하며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부터 저는 아이에게 죽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책에서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생각과 달리 죽음을 다루고 있는 그림책이 상당히 많아서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이니 죽음과 같이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들은 많지 않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습니다. 여러 그림책 중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기 위해 고른 책은 엘리자베스 헬란 라슨의 『나는 죽음이에요』 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죽음’의 모습은 어둡거나 무섭지 않습니다. 반대로 예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색도 아름답습니다. 발그스레한 뺨, 푸른색 옷을 입고 머리에 꽃을 단 어여쁜 모습을 하고 있는 죽음을 보며 거부감을 가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죽음’은 작은 동물, 큰 동물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주름이 많은 사람, 손이 작고 따뜻한 아이들도 찾아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죽음을 발견하면 문을 닫고 숨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죽음이 그냥 지나가길 바라고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는데요.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죽음은 말합니다. “나는 죽음이에요. 삶이 삶인 것처럼 죽음은 그냥 죽음이지요.”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삶과 나는 하나예요. 삶과 나는 모든 생명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거지요” 라고요. 죽음에 대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거부감과 공포심을 가라앉힐 수 있는 책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섯 살에 최고조에 달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일곱 살이 되면서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게 최고조로 힘들었던 대여섯 살 무렵, 너희들이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엄마의 수명이 며칠씩 짧아진다며 협박을 했던 저도 이 기회를 빌어서 반성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