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 보드 구매

파리의 안나 73

by Anna

내 하루의 시작은 뚜왈렛이다. 희미하게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혈당을 체크하는 간호사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욕실로 다가오는 할아버지의 발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갔다. 뚜왈렛을 마치고 할머니의 머리까지 감겨 드린 뒤 같이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언니가 하필이면 아보카도를 잘라놓고 가셔서 맛이 없었지만 억지로 먹었다. 다시 먹어도 연두색 맛이었다.


인터넷 서핑을 즐기다 언어 교환 사이트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왔기에 확인했다. 25살의 남자였다. 한국에서 1년 동안 살면서 불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본인의 핸드폰 번호를 보냈기에 문자를 해 보았다. 나도 드디어 할아버지와 언니를 제외하고 문자를 할 사람이 생겼다! 불어로 문자를 보냈는데 한국어로 답장이 와서 적잖이 당황했다. 아직 완벽한 불어 문장을 만들 수가 없어서 한글과 불어를 섞어서 답을 했다. 질문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알렉스. 한국에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한다. 문자를 주고받다가 목요일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내일은 민박집 매니저 언니를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언니가 파스타를 먹고 싶다고 해서 파리에 있는 파스타 맛 집을 검색해보니 현지인들이 간단한 점심을 즐기는 ‘caffe corto’라는 식당을 찾았다. 가격도 저렴하고 괜찮아 보였다. 마들렌 역에서 11시에 만나기로 하고 나는 알렉스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나의 불어 실력의 한계를 느끼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스펠링 외우는 것도 일이다. 그렇게 오전과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임무 수행을 마친 뒤 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하지만 내 똥 폰이 그 전화를 한 번에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결국 전화는 끊어지고 혹시 Free에서 온 것인가 싶어 메일을 확인하는데 문자가 하나 왔다. 김미숙 원장님이었다! 내일 일할 수 있냐고 하셔서 얼른 답장을 보냈다. 아쉽지만 주리 언니와의 약속은 뒤로 미루게 되었다. 먹고살려면 돈을 벌어 야지. 내일 오전 10시까지 출근하라는 원장님의 말씀이 참 감사했다. 파리에서의 첫 출근! 기대된다.


저녁 먹기 전에는 할아버지께서 청소기를 사러 가자고 하셔서 따라나섰다. ‘Darty’라는 전자제품 매장이었는데 박사님께서 찜해두신 청소기가 없었다. 결국 청소기는 못 사고 위층에 있던 스포츠 용품 매장에 들렀다. 퀵 보드의 가격대를 알아보러 간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쌌다. 프로모션 중인 퀵 보드가 있었는데 원래 가격은 49.99유로인데 세일해서 29.99유로였다. 중고로 30유로 정도 생각하던 물건이었는데 새것이 30유로가 채 안 되다니! 직원을 불러 내가 탈 수 있겠냐고 묻자 조금 작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100kg까지 탈 수 있다는 말에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아무것도 들고나가지 않아서 할아버지께서 카드로 먼저 결제해 주셨다. 집에 가기 전에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열어보았는데 고정 핀이 잘 안 움직였다. 낑낑대고 있으니 할아버지께서 다시 올라가서 직원에게 물어보자고 하셨다. 그런데 옆 의자에 앉아 있던 외국인이 갑자기 설명을 해주었다. 조립하는 방법부터 다시 접는 방법까지. 일일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그에게 감동했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다시 상자에 넣은 뒤 집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친구들에게 퀵 보드 구매를 자랑했다. 기분이 좋다. 좀 작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꽤 튼튼해 보인다. 아무튼 내일 뚜왈렛이 8시에 와야 할 텐데.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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