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첫 출근

파리의 안나 74

by Anna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내가 프랑스 파리에서 첫 출근을 하는 날! 7시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너무 졸려서 30분 뻐기다가 일어났다.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초조하게 뚜왈렛을 기다렸다. 할아버지께는 미리 아르바이트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린 뒤라 혹시라도 아침 임무 수행이 늦게 도착하면 먼저 가도 좋다고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그래도 내가 하숙을 하는 조건이 뚜왈렛이기 때문에 꼭 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8시 반쯤 간호조무사가 왔고 열심히 도우며 시계를 간간히 살폈다.


9시가 가까워지고 할아버지께선 이제 거의 다 끝났으니 가서 아침을 먹으라고 하셨다. 고민하다 홀로 식탁에 앉아 급히 아침을 챙겨 먹었다. 복숭아 맛 요거트와 토스트, 커피를 급히 해치우고 간단히 할머니의 아침을 준비해드린 뒤 가방을 챙겨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섰다. 아침 공기가 찼다. 이렇게 일찍 집을 나서보는 게 얼마만인지. 버스를 타려다가 혹시라도 늦을까 봐 정시성이 보장되는 지하철을 타기로 결정했다. 설마 파리에도 지옥철이?


운 좋게도 지하철은 바로 도착했고 10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역에 내렸다. 다들 굉장히 바빠 보였다. 나도 오늘은 바쁘다! 왠지 뿌듯한 마음으로 환승을 하고, 두 정거장이 지난 뒤 ‘샤를 미셀’ 역에 내렸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두었던 길을 떠올리며 2번 출구로 나갔다. 우선 직감적으로 큰길로 쭉 가다가 길에서 오른쪽, 왼쪽 고민하다 조금 더 번화해 보이는 왼쪽 길로 들어섰는데 구글 맵을 켜보니 반대였다. 다시 오른쪽 길을 향해 쭉 가보니 ‘Bergers’ 거리가 나왔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니 눈에 보이는 ‘VOV’ 간판! 10시까지 오라고 하셨는데 9시 40분쯤 도착했다. 인사를 드리고 가방을 넣어 두고 앞치마를 맸다. 원장님께서 통화를 하시는 동안 유튜브에서 최신가요를 재생시켰다. 생각보다는 적당한 규모의 미용실이었다. 예약 전화받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혼자 카운터에 앉아있는데 바로 전화가 왔다. 대사관님 예약 전화였는데 잘 체크 한 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예약 손님이 꽉 차있었다. 그런데 10시 예약 손님이 너무 늦게 오셔서 그동안 내가 할 일에 대해 설명을 듣고, 원장님의 미용실 계약 때문에 찾아오신 분께 커피를 타 드렸다. 멀뚱히 서 있다가 또 전화가 와서 받았다. 콜센터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다. 전화받는 게 하나도 겁나지 않는다.


10시 반과 11시 예약 손님이 조금 늦는다는 전화였다. 우선 알았다고 했는데 원장님께서 그럴 경우 손님이 밀려서 기다릴 수도 있다는 당부 말씀을 꼭 전하라고 하셨다. 곧이어 외국인 손님이 들어오셨다. 불어로 말씀하셔서 박사님께 배운 ‘un moment, s’il vous plait’를 써먹고 원장님을 호출했다. 원장님께서 머리를 자르시고 머리 감기는 내 몫이었다. 첫 손님이 외국인이라니. 조심스레 머리를 감기는데 다음 예약 손님들이 오셨다.


여자 두 분이셔서 좀 시간이 소요되는지라 내가 외국인 손님의 머리까지 말려드렸다. 그런데 또 불어로 추가 요구사항을 말씀하셔서 멍하니 원장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불어로 ‘차 한 잔 드실래요?’가 뭐지. 결국 더 이상의 서비스는 해드리지 못했다. 외국인 손님이 카드로 결제하고 가신 뒤 여자분들 머리 자르기는 계속되었다. 한 분은 긴 머리에서 단발로 변신을 하셨는데 워낙 짧은 머리를 원하셔서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게다가 드라이를 안 하면 정말 뻗치는 머리라 나는 속으로 ‘왜 자르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 다음 예약 손님이 도착했다. 남자아이였는데 어머니께서 예약한 시간이 지나도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해서 짜증이 나 보였다. 괜히 내가 더 눈치가 보이는 상황. 원장님께서 센스를 발휘하셔서 숏 컷으로 변신하실 분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아이의 머리를 먼저 잘랐다. 다행히 아이 머리 감기기는 안 했다. 더 다행인 건 여자분들도 안 감았다. 손님들이 가시고 난 뒤 머리카락을 쓸고, 점심으로 사 온 김밥을 먹었다. 김밥 한 줄에 5.5유로다. 7천 원이 넘는 돈.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한국에서 참치김밥 2,500원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저번에 민향 언니가 나보고 김밥 장사를 하자고 하셨는데 할 만할 것 같다.


아무튼 간단히 점심을 먹고 있는데 1시 예약 손님이 오셨다. 원장님께서 머리를 자르시는 동안 나는 일회용 용기와 수저를 설거지했다. 그 뒤로 남자 다섯 분이 더 오셨고 내가 다 머리를 감겨드렸다. 아마 초보의 손길을 느끼셨을 거다. 열심히 마사지도 해드리긴 했는데 잘 한 건지 모르겠다. 중간에 위기도 있었다. 물의 온도 맞추기가 참 힘든데 옷에 수도꼭지 부분이 걸려서 순간적으로 뜨거운 물이 확 나왔는데 다행히 내 손이 먼저 감지를 해서 손님 머리에는 안 닿았지만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살짝 데었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첫날 일을 무난하게 해낸 것 같다.


시급은 5유로다. 7시간 일한 것으로 쳐 주셔서 총 35유로를 받았다. 게다가 손님께서 팁으로 3유로를 주셔서 그것도 챙겼다. 처음엔 나한테 주는 팁인 줄 알고 원장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몰래 가지고 있었는데 일급을 주실 때 혹시 팁을 받았냐고 물어보셔서 실토했다. 팁은 팁 통에 넣어두고 끝날 때 5:5로 나누는 거라고 알려주셔서 민망했다. 그래도 오늘 팁은 그냥 가지라고 하셔서 기분이 좋았다. 4시 40분쯤 인사를 드리고 얼른 집으로 향했다.


5시까지는 집에 도착해야 뚜왈렛에 늦지 않을 것 같아 열심히 뛰어갔는데 집에 도착하니 이미 10분 전에 왔다 갔다고 하셨다. 뭔가 허무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이해해주셔서 다행이다. 옷을 갈아입고 좀 쉬다가 할아버지와 물을 사러 프랑프리에 갔다. 낑낑 거리며 백 팩에 물 6통을 넣는 내 모습을 보고 한 흑인 아저씨가 웃었다. 저 사람에게 이 정도는 껌이겠지.


아무튼 간단히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아르바이트 후기와 내 첫 수입 인증 샷을 보냈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내 첫 수입, 38유로는 고이 밀봉해 두었다! 되도록 절대 쓰지 말아야지! 저녁을 먹기 전까진 불어 공부를 하고, 인터넷 서핑을 즐겼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어제 산 퀵 보드 라이딩을 즐기러 나갔다. 오랜만에 타 보니 처음엔 좀 무서웠는데 금방 익숙해졌다. 그런데 한 가지 단점을 발견했다. 아이 용이라서 그런지 손잡이 부분 길이가 너무 짧아서 살짝 불편하다. 허리까지는 왔으면 좋겠는데 골반까지밖에 안 온다. 그래서 간지가 안 나는 게 함정. 뭐 싼 맛에 산 거니까 감안하고 타야겠지.


씽씽 달리며 바람을 즐기다 불이 켜진 에펠탑으로 가기 위해 센 강가로 갔다. 그런데 에펠탑 근처 길은 흙길이라서 다리 밑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밤의 알렉산더 3세 다리도 예뻤다. 잠시 감상에 젖었다가 시간을 보니 8시 40분이었다. 9시까지는 집에 가야 저녁 임무 수행을 할 수 있기에 결국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니, 퀵 보드를 돌린 건가? 날이 점점 어두워져서 길바닥이 잘 안 보였지만 그래도 안 넘어지고 잘 탔다. 밤의 앙발리드도 꽤 멋있었다. 잔디밭에서 체육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다. 밤이라 그런지 동네에서는 좀 어둡고 무서웠는데 그래도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얼른 씻고 일찍 자라고 하셨다. 뚜왈렛이 이미 왔다 간 것이었다. 오늘은 정말 밥값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찜찜하다. 정해진 시간에 딱 오지 않고 간호조무사들 맘대로라서 안 좋은 것 같다. 아무튼 땀이 나는 몸을 깨끗이 씻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린 뒤 이렇게 방에 와서 하루를 정리하고 있다. 참 뿌듯하고 재밌고 알찬! 하루였다. 내일은 좀 늦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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