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못 보겠다.

파리의 안나 72

by Anna

파리에서 보내는 추석이다. 명절 분위기는 당연히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비몽사몽 식사를 하고, 임무 수행을 마친 뒤 가족들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나는 잘 터지는데 시골이라 상대방 말이 안 들렸다. 결국 점심까지 먹고 난 뒤에 집 전화로 할머니 댁에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께서 받으셔서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눈 뒤 할아버지와도 통화를 했다. 금방 동생을 바꿔주셔서 규한이와 오랜만에 수다를 떨고 화장실에 갔던 엄마와 잠깐,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와 통화를 한 뒤 끊었다. 약간 찡한 기분이 들었다. 타지에서 맞는 명절이라 조금 외로운 것 같다.


얼른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넷에서 언어 교환 사이트를 찾았다. 회원 가입 후 메시지가 오길 기다리는데 27살의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이 많은 외국인 남자는 좀 무서운 것 같다. 메시지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내용만 답장으로 보냈다. 잠시 산책을 하러 가려고 옷을 갈아입는데 부엌에서 큰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와 언니가 또 싸우고 계셨다. 들어보니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항상 왜 저렇게 쓸데없는 곳에 감정 낭비를 하는지 모르겠다.

날씨가 더워 보여서 오랜만에 반팔을 입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쓸쓸히 담배를 태우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너무 작아 보였다. 하지만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갔다. 오랜만에 센 강가로 걸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늘에 가면 바람도 불고 시원했는데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땀이 났다. 여름날 같았다. 걷다 쉬다 반복하다 금방 시간이 가버려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평발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금방 발이 아프지. 설마 몸무게가 늘어서 내 발이 나를 지탱하기 힘들어진 건가 싶었다.

앙발리드부터는 정말 너무 더웠다. 얼른 집에 가서 찬물로 샤워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갈증도 심해서 겨우 도착한 집 앞 프랑프리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쪽쪽 빨며 집으로 가는데 한 외국인이 나를 보고 웃었다. 아이들이 먹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너무 신나 보였나? 집에 오니 할아버지는 아직 안 들어오셨고 할머니는 주무시고 계셨다. 언니에게 아이스크림을 권하니 ‘No thanks’하셨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쉬다가 잠깐 영상통화를 하고, 언어교환 사이트에서 새로 온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그런데 죄다! 29살의 남자였다.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답장하기가 꺼려졌다. 그나마 성의껏 메시지를 보내준 ‘SC’라는 사람에게 몇 가지 질문과 함께 답장을 보냈는데 아직 답이 없다. 그냥 내가 먼저 내 나이 또래의 여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친구 만들기 쉽지 않다.

사실 9월이 되고 개강을 하면서 길거리에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이는데 다들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든다. 나도 이 좋은 곳에서 내 사랑하는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래도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활짝 열고 있으면 좋은 친구가 나타나겠지. 마찬가지로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보름달은 못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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