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쿵쾅쿵쾅

파리의 안나 70

by Anna

입맛이 없다. 생리 중이라 그런가. 아침은 ‘빵 오 쇼콜라’를 먹었다. 식사 중에 타이밍 안 좋게 뚜왈렛이 와서 커피는 다 못 마셨다. 씻고 천천히 나갈 준비를 했다. 점심을 먹고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아 그냥 나왔다. 오늘은 ‘샤혼느’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 찾아갈 계획이었다. 저번 볼테흐 때처럼 길을 찾지 못할 것을 대비해 지도까지 캡처해 둔 상태였다.


예전에 샀던 까르네가 한 장밖에 남지 않아 구매를 하려고 기계 앞에 줄을 섰다. 그런데 하필 내 차례 때 불량스러워 보이는 중동 남자 두 명이 등장했다. 그들은 줄도 서지 않고 옆의 기계에서 표를 구매하는 아저씨의 옆에 붙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불안한 마음으로 기계 앞에 섰는데 이상하게 까르네가 안 보였다. Ticket T+를 누르면 9장까지밖에 선택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뒤로 가기 후 다시 클릭하기를 한 세 번쯤 했을까, 옆에 있던 중동 놈이 나에게 티켓을 살 거냐고 물었다. ‘노농’ 한 후 다시 자연스레 티켓 떼를 눌렀다.


다시 보니 낱장 선택 칸 밑에 까르네 묶음 선택 칸이 있었다. 10장 묶음을 선택한 뒤 현금을 집어넣으려고 지갑을 꺼냈는데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옆에 있던 중동 놈이 화면을 클릭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짜증 나서 쳐다보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한 표정이었다. 인상을 확 쓰고 다시 까르네를 선택한 뒤 돈을 넣으려고 하는데 또 화면을 클릭하려고 해서 “아 농!”하며 팔을 확 쳐 버렸다. 10유로 한 장과 5유로 한 장을 넣고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받기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다. 까르네와 거스름돈, 영수증을 모두 챙긴 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쁜 놈들.


아마 기계사용이 서툰 관광객에게 도와준다며 사기를 치는 놈들인 것 같다. 분명 옆에 직원이 떡하니 앉아있었는데 정말 뻔뻔하다. 그런 광경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직원도 이상하다. 어쨌든 무사히 지하철을 탔다. 6호선 공사가 끝나서 좋다. ‘Nation’ 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고 쭉 앉아 갔다. 샤혼느에 도착해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았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은 어떤 건물 안이었다. 사람들이 조금 모여 있기에 입장을 위해 줄을 섰다. 동네 아저씨 같은 분이 입장료 2유로를 받고, 그의 아들같이 보이는 아이가 입장권을 나눠주었다.


기분 좋게 입장했는데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동네잔치 같은 느낌이었다. 옷을 행거에 걸어 놓고 파는 형식이었다. 열심히 구경했는데 작은 공간 안에 여러 사람이 서로 뒤엉켜 있다 보니 금방 땀이 났다. 그래도 입장료가 아까워 구석구석 살펴보았지만 딱히 사고 싶은 옷은 없었다. 지금 겉옷은 충분한 상태라 마음에 드는 재킷은 몇 개 보았지만 살 수 없었다. 게다가 가격도 생각보다 비쌌다. 중고 장터 같은 느낌의 행사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고가의 브랜드도 있었고, 내가 상상한 가격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입구 쪽에 새 양말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가격이 무려 한 켤레에 5유로였다. 한국 지하상가에선 천 원이면 사는 양말을 무려 7천 원이나 주고 사야 하다니! 디자인도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정말 어이없다.

결국 득템은 실패하고 터덜터덜 그곳을 빠져나왔다. 시계를 보니 한시가 조금 지나있었다. 배가 고파서 집에서 가져온 쌀 과자를 먹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유니클로에서 브라 탑을 사기 위해 라데팡스로 갔다. 지하철 안에서 큐브를 했는데 섞었다, 맞췄다, 반복하자 앞에 앉은 아저씨 두 명이 박수를 쳐 주셨다. 라데팡스에 내려 2유로 숍에서 향수를 하나 샀다. 그곳은 신세계였다. 헤드&숄더 샴푸도 2유로였다. 앞으로는 샴푸가 다 떨어지면 굳이 몽트뢰유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양한 색조 화장품도 있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즐거운 쇼핑을 마치고 ‘Les 4 Temps’ 안으로 들어가기 전 ‘브리오슈 도헤’에서 점심을 샀다. 샌드위치 하나, 디저트 하나, 음료수 하나 이렇게 세트로 7.60유로였다.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고르고, 디저트는 초콜릿 에끌레어, 음료는 오아시스를 골랐다. 계산을 마치고 식사를 위해 쇼핑몰을 통해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고 딱 앉았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에끌레어와 음료수만 들어 있었다. 헐! 정신머리 없는 직원이 샌드위치는 빠뜨린 것이었다. 다시 돌아가기가 귀찮아서 그냥 이걸로 배를 채울까 하다가 7.60유로라는 돈을 지불한 것이 아까워 발걸음을 재촉했다. 혹시 그 직원이 나를 의심하면 어떡하지? ‘샌드위치가 없어요.’를 불어로 뭐라고 말하지?

다시 돌아간 그곳에는 아까보다 손님이 더 많았다. 계산 중이기에 옆에 서서 기다리니 직원이 나를 보고 ‘아!’ 하고 깨달은 듯 소고기 패티가 들은 샌드위치를 꺼내 따뜻하게 데우는 기계 안으로 집어넣었다. 파니니였나 보다.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는 나에게 “Sorry, madame’했다. ‘Pardon’이라고 해주지. 어쨌든 말 한마디 않고 무사히 샌드위치를 받아 다시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이미 내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차지한 뒤였다. 한 바퀴를 빙 돌아 간신히 자리를 잡고 토마토를 빼낸 뒤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생각보다 맛은 있었다.


배가 불러 디저트는 못 먹고 챙겨둔 뒤 쇼핑몰 안으로 들어갔다. 유니클로에 들르기 전에 H&M에도 브라 탑이 있지 않을까 싶어 속옷 코너로 가 보았지만 없었다. 혹시 모르니 다른 여러 브랜드 매장 안도 들어가 보았지만 브라 탑은 안 보였다. 결국 유니클로구나, 하고 매장을 들어갔는데 히트텍 코너에 19.90유로짜리밖에 없었다. 분명 홈페이지에선 14.90유로짜리가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 그냥 사지 않기로 했다. 한국에서라면 구매하지 않을 것들을 이곳에서 구매할 이유는 없었다. 다리가 아파 의자에 앉아 조금 쉬다가 다시 H&M에 가서 탑 브라라도 사려고 했는데 패드도 없이 그냥 맨 천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구매하지 못하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쇼핑몰이 너무 넓어 길을 잃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래도 한 다섯 번은 간 것 같은데 아직도 내부를 잘 모르겠다. 아무튼 힘들게 집에 도착해서 쉬다가 임무 수행을 마치고 무한도전을 봤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 뒤 언니와 함께 송편을 빚었다. 프랑스에서 추석맞이 송편을 빚게 되다니! 참 웃긴 상황인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빚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송편을 잘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던데, 나는 잘생긴 아들을 낳아야겠다. 저녁 임무수행은 어제 온 정말 불친절한 아줌마와 함께 했다. 저 사람은 안 왔으면 좋겠다. 아무튼 지금은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고 잘 준비를 하는 중이다. 내일은 할아버지와 성당에 가기로 했다. 풍성한 한가위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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