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안나 69
7시 반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 혹시 미용실에서 연락이 올지도 모르니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할 예정이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씻고 얼굴 정돈을 했다. 아침을 먹고 9시가 지났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10시가 넘어 임무수행을 마치고 화장을 했다. 하루 한 단어 공부를 마치고 조금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할아버지께서 점심, 저녁 약속이 있으셔서 언니와 둘이 먹었다. 비빔국수였는데 양이 너무 많았다.
70번 버스를 타고 생 제르망 근처로 갔다. 킬로샵을 구경할 목적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마음에 드는 무스탕을 찾았다. 입어보니 팔 길이도 딱 맞고 품도 적당하니 마음에 들었는데 무게를 재어보니 22유로가 나왔다. 충분히 살 수 있는 가격이지만 고민하다 그냥 내려놨다. 지금 입을 겨울옷도 많은데 짐을 늘리는 꼴이 돼 버리니. 그리고 무스탕은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는데 여긴 세탁소도 비싸니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옷을 입던 도중 할아버지께 전화가 왔는데 만 25세 미만은 나비고 한 달 충전 값이 30유로라는 소식이었다. 나중에 할아버지와 함께 역에 가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참 사소한 부분을 잘 신경 써주시는 분 같다.
킬로샵을 한참이나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정확히 그곳이 어딘지 몰라 그냥 무작정 앞으로 걸었는데 관광 책에서 보았던 ‘GROM’ 가게가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 젤라또를 맛볼 수 있는 곳! 메뉴판을 보고 맛을 고른 뒤 주문을 하려고 줄을 섰다. ‘petit pot’ 사이즈를 골랐는데 두 가지 맛을 고르는 거였다. 요거트와 피스타치오를 선택했다. 요거트는 익숙한 흰색이었고 피스타치오는 약간 구린 갈색이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한입 먹어보니 맛있었다. 피스타치오는 익히 알던 맛보다 훨씬 고소하고 진한 맛이었다. 신나게 젤라또를 먹어 치우고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영화관이 밀집된 곳에 도착했다.
요금을 비교해보니 일반은 10유로 이상이고, 학생은 7.5유로 정도였다. 영화를 5번 볼 수 있는 패스도 있었는데 34~35유로 사이였던 것 같다. 최민식이 나오는 루시를 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으므로 그냥 지나쳐왔다. 한참 걷다 보니 몸이 금방 피로해져서 버스 정류장을 찾아 헤맸다. 다행히 우리 동네로 가는 89번 버스가 있었다. 원래 오늘 유니클로에서 브라탑을 사려고 했는데 결국 매장을 찾지 못했다. 라데팡스에 다시 가야 하는 것인가. 89번 버스는 뤽상부르를 지나 우리 동네로 가는데 갈 때와 올 때의 노선이 다르다. 저번처럼 이상한 동네로 가기 전에 몽파르나스 타워 앞에서 내렸다.
집으로 가는 길, 오늘 아침 환율이 1,327원까지 떨어진 것을 보고 300유로를 더 찾기 위해 LCL로 갔다. CIC에서 찾아보려고 했는데 불안하게 카드를 잘 먹지 않아서 포기했다. 저번에 이 동네 LCL에서 찾았을 때 409,000원이 나왔으니 오늘은 더 적은 금액이 출금되겠지? 하고 기분 좋게 뽑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계좌조회를 해보니 412,000원이 나갔다. 말도 안 된다. 하나카드 수수료는 1%인데 ATM기 수수료가 만원이라고? 열받는다. 환율이 내려간다고 돈을 미리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괜히 기분만 더 상했다. 어차피 지금 가진 현금으로 다음 달 말까지 살 수 있으므로 당분간 출금은 안 하기로 결심했다. 환율이 1,200원대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어쨌든 끈적한 몸을 씻어내고 오후 임무 수행 후 영화 ‘군도’를 봤다. 생각보다는 재미없었다. 극장에서 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저녁엔 짜장밥을 먹었다. 지금은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는 중이다. 아직 저녁 뚜왈렛이 안 왔다. 어제는 열한 시 반이 넘도록 오지 않아서 그냥 잤는데 알고 보니 식사 중일 때 왔다가 그냥 갔다고 한다. 내일은 벌써 주말이다. 곧 추석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맞이하는 추석이라니. 별 감흥은 없지만 왠지 그래서 더 외로운 가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