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프랑스인

파리의 안나 76

by Anna

어제 밤늦게까지 드라마를 보고 잤더니 아침이 힘들었다. 초인종 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켜 나가 보니 이미 뚜왈렛이 진행 중이었다. 힘이 센 흑인 언니가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늦잠 잔 걸 알아챈 흑 언니가 웃었다. 잠이 덜 깨고 콧물이 흘렀지만 꾹 참고 끝까지 도왔다. 아침을 먹고 오래간만에 씻고 화장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원장님께 전화가 왔다. 오늘 일을 나올 수 있냐는 전화였다. 잠시 고민하다 약속이 있어 못 간다고 말씀드렸다. 알렉스와의 약속을 또 미룰 수는 없었다. 과연 지금 내가 한 선택이 잘 한 선택일까, 아닐까에 대한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이것 또한 도전이라 생각했다. 꾸역꾸역 점심을 먹고 옷을 갈아입은 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앙발리드에서 보기로 했는데 걸어가기로 했다. 거의 다 도착했는데 알렉스에게 다시 문자가 왔다. 아까 내가 보낸 문자가 아직 가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우리는 결국 2시 20분쯤이 돼서야 알렉산더 3세 다리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알렉스는 화가 옆에 서서 센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중동 아저씨인 줄 알고 쫄았는데, 그는 그냥 관광객이었다.


알렉스는 평범한 프랑스인이었다. 만나자마자 “안녕하세요.”하고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서 귀여웠다. 생각보다 한국말을 잘했고, 매우 친절하고, 유쾌했다. ‘봉구비어’와 ‘토마토 김밥’을 아는 프랑스인이라니. 내가 불어를 너무 못해서 거의 한국어로 대화했고, 나의 말을 들은 알렉스가 프랑스어 문장으로 바꿔 말해주었다. 네이티브 발음을 들으니 좋았다. 파리 곳곳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알렉스가 3년 동안이나 살았다 던 오페라 근처를 걷다 그가 백화점 안으로 나를 이끌었다.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에 전망대가 있었다. 그곳에서 파리 시내를 둘러보고 내려와 마트에서 여러 맥주 종류를 구경했다. 그리고 가격이 저렴한 생활용품점도 구경할 수 있었다. 2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우리는 ‘생 라자르’ 역에서 헤어졌다. 언제 다시 볼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알바를 포기한 것이 후회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뚜왈렛을 하고, 조금 쉬다가 퀵 보드 라이딩을 하러 나갔다. 어제보단 훨씬 수월하게 탈 수 있었다! 바람을 맞으며 씽씽 달려 샹 드 막스 공원에 갔는데 무슨 페스티벌을 하고 있더라. 구경 잠깐 하다가 다시 앙발리드로 갔다. 한 시간 반 정도 신나게 달리다 집에 돌아왔다. 저녁으로는 너구리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드라마 홀릭. 오늘은 그래도 임무 수행 세 번 다 제대로 해냈다. 살짝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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