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집의 저녁 풍경
해 질 무렵 도착한 그 집엔 나무가 많았다 대문 옆 사과나무 아래 검은 고양이가 앉아있다 도도하고 게으른 녀석, 사람을 위아래로 시큰둥하게 바라보며 하품한다 가방을 받아 든 젊은 주인은 표정이 없다 -고양이를 닮았군
가을을 끌어올리는 습하고 차가운 냄새, 정원으로 퍼지는 수프향기, 무심하다는 생각이 조금은 사라진다
목조건물의 낡은 계단은 소리가 커서 몸이 움츠러든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아래 늙은 엄마의 분주한 주방이 보이고 회색 눈동자의 엄마는 눈인사를 건네고 작은 부엌에서 끓고 있는 무언가로 낯선 마음이 슬며시 녹아내린다 긴장이 풀어진다
여러 개의 방들은 굳게 문이 닫혀있다 내 발걸음 소리만 삐걱삐걱, 부엌으로 향한다 식탁에 놓인 그릇과 그릇 사이에 어떤 세계가 들어와 앉을까 호기심이 들자 하나 둘 모여드는 얼굴들
수프가 끓고 있는 냄비는 스칸디아, 엄마는 식탁에 올려놓는다 다른 세계에서 온 식구들이 마주 보고 앉아 빈 그릇을 채우며 미소 지을 때 금발의 젊은 아들은 빵 바구니를 올려놓고 나간다 고양이가 따라간다
부엌의 엄마 얼굴, 골 깊은 주름 사이로 오로라 같은 저녁이 스며든다 유심과 무심이 엇갈리는 풍경 속에 낯선 이들의 조용한 웃음꽃이 사과송이처럼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