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아니스트'를 중심으로
마크 허만 감독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2008)' 역시 순수한 8살 소년 브루노의 시선을 통해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사건을 다룬다. 수용소 고위 책임자의 아들인 브루노는 처음에는 나치 수용소를 '농장'으로 오인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 소년 슈무엘과 친구가 된다. 브루노와 슈무엘의 우정은 인종이나 배경에 관계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부르노와 슈무엘은 가스실로 들어가게 된다. 결국 그들의 비극은 인간의 악행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남는다. 이 영화는 브루노의 순수한 시선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쉰들러 리스트'와 '피아니스트'를 비교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가장 감명 깊게 본 두 영화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인지 느낌과 메시지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쉰들러 리스트와 피아니스트는 모두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피아니스트'에 몰입도가 더 높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을 죽였다. 다소 평화로워 보이는 영화 도입부에서도 왜 그리 초조하던지... 스필만이 방송국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장면, 쇼팽의 '녹턴'이 흐르는 과정에 폭격은 시작된다. 그 후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조마조마했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코 숨어 지내던 스필만이 독일군 장교 앞에서 연주하는 장면이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거의가 그럴 것 같다. 스필만이 독일군 장교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긴장감, 감동, 아쉬움, 울분, 인간성에 대한 믿음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쇼팽의 '발라드'라는 곡이 그러한 느낌을 더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음악을 통해 위안을 찾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스필만, 그런 스필만을 도와주는 독일군 장교의 모습은 인간의 선함을 보여주는 작은 빛이 되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런 영화를 영화의 배경이 된 그 도시에서 본다면 그 감동은 어떠할까. 나는 영화'피아니스트'를 아우슈비츠에 가기 전 날 기차로 이동 중에 보았다. 영화의 여운은 아우슈비츠에 도착해서도 남아있었다. 슬픔, 분노, 절망,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이 일었다. 또한,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을 표출하고자 시를 썼다. 음악과 영화와 파울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를 이해하면서 느꼈던 내 감정을 나의 시로 풀어놓았다.
나의 시 작업은 이렇게 여행길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되어 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시인이었다.
폴란드의 크라프트에서 다음여행지인 부다페스트로 가는 동안에 본 영화'글루미 선데이'는 음악과 사랑이 주제인 멜로 영화였지만 여기서도 시대적인 배경은 전쟁 전후의 암울했던 시기임을 볼 수 있었다. 세체니 다리를 건너며 영화의 주인공들을 생각하며 쓴 시도 영화의 여운이 깊고 길어서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구상의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것들은 서로 다른 역사적 해석과 영토주장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수십 년간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고 국제 사회에 큰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잔인하게 말살되어야 했던 인종차별에 의한 홀로코스트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것으로 끝이기를 바라야 한다.
현대 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상호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 중인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분쟁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참혹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세계여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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