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마음이 편한 곳은 집이었나 보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있는데도 아버지는 집으로 가자한다.
셋방이면 어떻고 쪽방이면 어떠랴 내가 덜거덕 거리며 살림하던 곳인데, 내 물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집.
시인의 아버지는 집으로 가자고 소리라도 칠 수 있었구나. 살면서 대부분의 체취가 묻어있는 집을 그리워했구나. 시인은 '집이나마나 창신동 골목길 셋방이었다'라고 하지만 아버지에겐 커다란 당신의 전부였을 그 집.
나의 아버지도 중환자실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몸부림 칠 기력도 없었고 돌아가자고 애원할 집도 없었다.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정리하고자 했다. 아버지는 평생 담배를 끊지 못했다. 요양병원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었다. 하지만 병원은 금연구역이고 숨겨놓은 담배는 간호부장님께 전부 압수당했다. 몰래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넘어진 후였다. 병원 규정을 어기고 폐를 끼친 사건이다.
아버지는 폐암 말기였고 연명치료도 거부한 상태였다. 고통을 최소화하는 치료만 받다가 가시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주말을 기다리며 조용히 지내셨다.
주말에 면회를 가서 산책을 시켜 드리려고 휠체어를 밀고 나온다. 병원 주변의 산책길은 호젓하고 목가적이다. 산책길을 한 바퀴 돌고 병원 현관으로 들어가기 전 면회시간이 끝날 때까지 흡연실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담배 한 개비, 그것 때문에 일주일을 기다려 산책을 하고 바람을 쐬고 증손주도 만져보시며 나름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면회시간의 마지막 코스인 담배 한 개비, 꿀맛 같았을까? 손자가 불 붙여준 담배 한 개비를 피우려고 일주일을 버텼을 아버지.
결국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폐렴이 오고 고열로 인해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한 달,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윤재철 시인의 아버지는 집으로 가자고 팔목이며 발목이 벗겨지도록 짐승처럼 몸부림을 치셨다 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축 늘어진 상태로 코에 호스를 끼고 연명했던 시간들. 아버지도 몸부림치고 싶었을지 모른다. 식물인간처럼 누워있기 싫다고, 영원한 내 집으로 보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