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솔안나 Jun 27. 2024

자기 발견의 언어와  치유의 음악

 가장 오래, 가장 많이 들었던 곡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아들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시절이 있다. 어떤 노래를 부르더라도 아들의 노래는 나를 도닥여 주는 따뜻한 언어로 다가왔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단어들의 조합이기도 했다. 초록초록, 새콤달콤, 눈부심,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 달빛, 사랑스러운, 풀잎소리, 숲길, 아침햇살, 평화, 자유로움 같은...

가수가 되고 싶었던 아들은 평범한 회사원이며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하지만 가끔 "노래 불러줘" 하면

피아노 앞에 앉아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으로 시작하는 안치환의 노래를 곧잘 불러주곤 한다.

내 젊음이 어리석고 힘들었을 때 반복해 들으며 그 순간을 견딜 수 있었던 노래들을 후에 아들에게도 요청했던 것 같다.


음악은 우리의 감정과 기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언어이며 도구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며, 삶의 질이 달라짐을 느낄 수도 있다. 음악의 장르에 상관없이 듣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과 위안을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영양제가 어디 있으랴.




오래전 일이지만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으면 기분이 더 가라앉는 것만 같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맥을 못 추었다. 삶에 대한 의욕조차 없던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곡이 내 맘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밭에 단비가 내리듯 시원하고 달콤한 것도 같고, 쓰리고 아픈 상처에 레몬처럼 시고 새콤한 것을 부어 쓰리게 하는 통증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서서히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내 몸은 느리고도  애절한 첼로소리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곡이 끝날 때까지 꼼짝 않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던걸 잊을 수가 없다.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이었다.

도입 부분부터 밀려오는 슬픔의 파도는 내 삶의 잘못된 모양새로 인해 자존감이 박살 난 나를 한 번에 덮쳐버렸다. 그리고 다시 잔잔하고 느린 리듬으로 감싸 안는 듯했다. 하지만 종반으로 갈수록 북 바쳐 오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첼로의 음색은 깊은 슬픔과 절망이라고 생각했다. 흐르는 눈물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율은 마음을 너무 많이 아프게 했다. 연주자의 절제된 표현이 느껴진다. 그것은 오히려 억눌린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게 했다. 들으면서 아프고 아프면서 시원했다.


https://youtu.be/Yv9 Fbzx6 kVE? si=A_Izeuw_f096 AGXe


'재클린의 눈물'이라는 제목은 실제로 다발성 경화증으로 고통받다가 사망한 첼리스트 클린 뒤 프레를 추모하기 위해 독일의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에 의해 발견된 오펜바흐의 미발표곡이었다.  

이 곡은 깊은 슬픔과 고요함이 공존하는 곡이다. 첫 소절에서 첼로의 저음은 마치 흐느끼는 듯한 소리로 시작해,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중간부에서 멜로디가 상승하면서 희미한 희망의 빛이 엿보이지만, 곧 다시 어두워진다. 첼로의 풍부한 음색은 재클린 뒤 프레의 아픈 삶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극적인 죽음을 떠올리게 하며 특히 비브라토를 사용한 부분에서는 그녀의 고통이 절절히 느껴진다.

오펜바흐가 살아생전 발표하지 않았던 곡을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가 발견한다. 그리고 비운의 천재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를 떠올린다. 그 후 '재클린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발표하게 된 곡이다.




나의 고통은 생활 속의 억눌림으로 숨을 쉬기 힘든 것이었다. 이 곡의 선율처럼 우아하고 절절한 슬픔이었으면 좋았겠지만 20대가 꼬이고 30대가 엉켜서 내가 나를 볶아대는 구질구질한 날들이었다. 나는 날마다 하루 종일 이 곡을 틀어놓고 생명수를 한 모금씩 마시듯 울었다. 마신만큼 내 안의 어둠을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눈물을 흘린 만큼 마음이 가벼워졌고 밝아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왜 그렇게 숨 막히게 살아야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성격을 탓할 수밖에 없는 듯 하지만 그 순간을 음악으로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경험을 톡톡히 했다.

나에게 '재클린의 눈물'은 단순히 슬픈 멜로디가 아닌,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처방전이었다. 첼로라는 언어를 통해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된...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연주가 감정을 더욱 몰입하게 했는지, 아니면 첼로의 따뜻한 음색이 위로의 물질을 전달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억눌린 감정의 둑이 터져 흐른 눈물은 오랜 우울증으로 쌓였던 고통과 절망을 씻어내고, 홀가분함과 후련함을 선사했다. 나에게 단순한 음악 작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임을, 컴컴한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준 소중한 음악이며 언어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으로 돌아온 내가 '재클린의 눈물'이후에 듣기 시작한 음악 중에 지금도 즐겨 듣는 곡이 있다. 영국의 싱어송 라이터 캣 스티븐스(Cat Stevens)의 'Morning Has Broken'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고 숭고한 찬양 가사가 어우러져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편안하다. 단순히 종교적인 노래를 넘어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노래로 다가왔기에 즐겨 들었던 것 같다.


새벽이 밝았네, 첫 아침처럼 물결 위에, 아니면 새로 태어난 아기 위에.

산 위에 햇살이 비추네, 네가 떠오르는 걸 보았어.

세상 모든 피조물들이여, 눈을 들어라

찬양하라 그를, 찬양하라 그를,

세상 모든 피조물들이여, 찬양하라 그를,

찬양하라 그를, 높은 곳에 거하는 이들 모두여.


새벽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노래하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기쁨과 감사를 표현한 노래다.

물론 가사가 주는 편안함도 있지만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가 주는 매력이 더 와닿았다.

캣 스티븐스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섬세한 연주는 이 곡을 한동안 반복해서 듣게 했다.

물론 요즘도 즐겨 듣고 있다.


https://youtu.be/3 Rifby1 tVE8? si=1 g4 LgcYr2 YmM5 k-T

언젠가 아들이 또 이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








이전 10화 詩에 담은 아버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