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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솔안나 Jun 13. 2024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시인을 생각하며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 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읜 시인 정채봉은 짧은 생애 동안 아픔과 그리움을 노래한 시인으로 많은 독자들은 알고 있다. 

그의 시에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아픔이 절절하게 담겨 있으며, 이는 그의 대표작인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시인의 어린 시절은 온통 그리움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짧은 시간이라도 아니, 단 5분 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그 간절한 그리움.

시인은 어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무엇을 함께하고 싶을까. 정말로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 수 있을까?    




시인의 어머니는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정채봉을 낳고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시인은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어렴풋 기억하는 것은 어머니의 냄새였다. 해송 타는 냄새가 어머니의 냄새라고 기억한다.

중학생 때 ‘어머니 냄새’라는 글을 작문시간에 썼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정채봉을 담임선생이 방문한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정채봉이 쓴 글의 내용을 알려준다.

 그 후 할머니는 낡고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정채봉에게 내어주며 말씀하신다. 

“네 어미는 너한테서 엄마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하고 죽었어.” 

사무치게 보고 싶었던 어머니의 모습, 사진 속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어린 정채봉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이야기를 정채봉 시인이 돌아가신 후 평화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고인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단 5분만 만나도 ‘나는 원이 없겠다’고 했다. 엄마를 만나면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고’, ‘엄마!'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이 시를 썼던 그 나이에 엄마!라고 큰 소리로 불러보고 싶었을까. 물론 어릴 적부터 쌓여있던 그리움이겠지만... 이 시 이외에도 정채봉 시인의 글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깊게 깔려있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돌아가시긴 했어도 엄마의 나이로 볼 때 조금은 일찍 가셨다. 그래서 엄마와의 추억은 25살까지가 전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엄마를 그리워해 본 적이 없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엄마가 생각날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만일 내가 정채봉시인처럼 엄마 얼굴도 모르고 살아왔다면 나도 이렇게 그리워했을까. 그런 점이 궁금할 정도로 나는 엄마에 대한 나의 감정을 알 수가 없다. 슬픈 일일까. 추억이라 함은 좋았던 것보다는 알 수 없는 데면데면함이 더 많았기에 딱히 손꼽을 게 없다. 그래, 나로선 슬픈 일일게다. 만일 정채봉 시인이 살아계신다면,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그래도 너는 엄마 얼굴은 알잖아,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살았잖아 그만하면 감사해야지.'라고 하시려나?


짧은 시간이라도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시인의 마음을 보여준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을 읽고 잠시 내 마음을 두드려 보았다. 

정채봉 시인의 시에는 다양한 주제와 감정이 담겨 있지만, 그중에서도 그리움은 시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JVf076USYg


정채봉 시인은 한국 최고의 동화작가로 더 알려져 있으며, 성인층을 대상으로 한 성인동화를 개척했다.

주요 작품으로 '물에서 나온 새'(1983), '오세암'(1984), '가시넝쿨에 돋은 별'(2007)과 소설집 '초승달과 밤배' 상·하(199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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