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철문을 지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온몸을 뒤덮는 무거운 침묵. 백 년 전쯤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슬픈 역사의 흔적 앞에서 입은 벌어져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가스실과 화장로 그리고 높은 굴뚝, 폐허가 된 수용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참혹한 박물관을 돌아보며 시 한 편이 생각났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게 난해해서 그냥 흘려버렸던 시, 파울첼란의 '죽음의 푸가'였다.
파울첼란은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직접 경험하며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 아픔을 시 속에 담아낸 독일의 대표시인이다.
첼란의 시혼을 따라 아우슈비츠를 걸었던 그날을 생각하며 '죽음의 푸가' 속으로 들어가 본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
<중략>
그가 외친다 더욱 깊이 땅나라로 파 들어가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연주하라
그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는다 그가 총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파랗다
더 깊이 삽을 박아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계속 무도곡을 연주하라
<중략>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점심에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저녁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의 눈은 파랗다
그는 너를 맞힌다 납 총알로 그는 너를 맞힌다 정확하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사냥개들을 몰아댄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 하나를 선사한다
그는 뱀들을 가지고 논다 또 꿈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파울 첼란은 1942년 나치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힌다. 그 후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극심한 고통과 죽음을 목격한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수용소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첼란의 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다. 그것은 아우슈비츠의 차가운 그림자와 겹쳐 보인다.
'검은 우유'가 상징하는 죽음, 그 죽음을 마시는 사람들은 '우리'라는 집단이다.
가스실로 끌려가고, 총살당하고, 불 속으로 던져지는 그 죽음의 상황들을 하루종일 마시는 사람들이다.
이 시는 악마적인 악보에 따라 연주되는 죽음의 행진곡이거나 죽음을 마시는 자들의 합창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아우슈비츠는 단순한 수용소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무덤으로 만들어 버린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희망도, 사랑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첼란의 시 속에서 느꼈던 절망과 아픔을 아우슈비츠의 현장에서 상상으로 경험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였다.
<죽음의 푸가>는 수용소의 체험을 첼란의 독특한 시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전후 독일문단에서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비인간적이다'라는 철학자 아도르노의 발언이 있었다. 그 후 아우슈비츠에 관한 것은 물론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이 비평의 상식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첼란은 인간의 문제와 문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다. 자신이 겪은 참혹한 시대를 극도로 상징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시어로 그려 내며 아우슈비츠를 바탕으로 한 서정시를 쓰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죽음의 푸가>는 1952년 시집 <양귀비와 기억>에 수록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아도르노는 자신의 말을 정정하기에 이른다.
"첼란의 시는 침묵을 통해 극도의 경악을 말하고자 한다. 해를 거듭하는 고통은 고문당하는 사람이 울부짖듯 표현의 권리를 갖는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어떠한 서정시도 쓰일 수 없다는 말은 잘못이었다.”라고
시의 제목에 들어 있는 ‘푸가’라는 음악 용어 역시 수십 년간 논란의 여지를 제공했다. 한 주제가 여러 목소리로 차례대로 반복되면서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가는 음악 형식이 '푸가'다. 이 시에서는 죽음이라는 주제가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으로 반복된다.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음악적 리듬도 느껴진다. 그래서 이 시는 언어로 재현한 음악성을 파악해야 이해가 되는 시라고들 한다.
나는 이 시에 나타난 형식을 꼭 음악적으로 해석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죽음의 푸가'가 던져주는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푸가'라는 용어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검은 우유, 마신다, 무덤, 판다, 마신다, 판다...
이 시어들이 반복되며 얽히고설키는 그 고통스럽고 비참한 상황이 죽음이고 그 죽음으로 가는 비참함의 강도가 푸가의 형식으로 리듬을 타고 있다. 눈으로만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것.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에 대한 이해는 아우슈비츠를 둘러본 후에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최명란의 시 '아우슈비츠 이후'를 읽으면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 처참함의 정도가 얼만큼이었을지 상상하기에 알맞은 시이기도 하다.
아우슈바츠를 다녀온
이후에도 나는 밥을 먹었다
깡마른 육체의 무더기를 떠올리면서도
횟집을 서성이며 생선의 살을 파 먹었고
서로를 갉아먹는 쇠와 쇠 사이의
녹 같은 연애를 했다
역사와 정치와 사랑과 관계없이
이 지상엔 사람이 없다
하늘엔 해가 없다 달도 없다
모든 신앙도 장난이다
<아우슈비츠 이후> 전문/최명란
역사와 정치, 사랑과 관계없이 이 지상엔 사람이 없고 해도 달도 없다. 신앙도 장난이다.
참으로 절망적이다. 그래도 시인은 밥을 먹었고 연애도 했다. 아우슈비츠에 다녀온 이후 현실적인 생활 속에서 시인은 괴로운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전 세계인을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상흔일 수밖에 없다.
집단 무의식이 투사된 인류 최대 비극의 현장 앞에서 역사를 되돌아볼 시간을 갖는 것은 왜 필요할까.
아우슈비츠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되돌아보기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재앙을 막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