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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솔안나 May 30. 2024

아우슈비츠에 관한 노래와 시 그리고 영화(2)

파울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를 중심으로

차가운 철문을 지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온몸을 뒤덮는 무거운 침묵. 백 년 전쯤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슬픈 역사의 흔적 앞에서 입은 벌어져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가스실과 화장로 그리고 높은 굴뚝, 폐허가 된 수용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참혹한 박물관을 돌아보며 시 한 편이 생각났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게 난해해서 그냥 흘려버렸던 시, 파울첼란의 '죽음의 푸가'였다.


파울첼란은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직접 경험하며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 아픔을 시 속에 담아낸 독일의 대표시인이다.

첼란의 시혼을 따라 아우슈비츠를 걸었던 그날을 생각하며 '죽음의 푸가' 속으로 들어가 본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

  

                               <중략>


그가 외친다 더욱 깊이 땅나라로 파 들어가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연주하라

그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는다 그가 총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파랗다

더 깊이 삽을 박아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계속 무도곡을 연주하라


                               <중략>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점심에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저녁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의 눈은 파랗다

그는 너를 맞힌다 납 총알로 그는 너를 맞힌다 정확하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사냥개들을 몰아댄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 하나를 선사한다

그는 뱀들을 가지고 논다 또 꿈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파울 첼란은 1942년 나치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힌다. 그 후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극심한 고통과 죽음을 목격한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수용소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첼란의 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다. 그것은 아우슈비츠의 차가운 그림자와 겹쳐 보인다.


'검은 우유'가 상징하는 죽음, 그 죽음을 는 사람들은 '우리'라는 집단이다.

 가스실로 끌려가고, 총살당하고, 불 속으로 던져지는 그 죽음상황들을 하루종일 마시는 사람들이다.

 이 시는 악마적인 악보에 따라 연주되는 죽음의 행진곡이거나 죽음을 마시는 자들의 합창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아우슈비츠는 단순한 수용소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무덤으로 만들어 버린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희망도, 사랑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다.

첼란의 시 속에서 느꼈던 절망과 아픔을 아우슈비츠의 현장에서 상상으로 경험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였다.


<죽음의 푸가>는 수용소의 체험을 첼란의 독특한 시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전후 독일문단에서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비인간적이다'라는 철학자 아도르노의 발언이 있었다. 그 후 아우슈비츠에 관한 것은 물론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이 비평의 상식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첼란은 인간의 문제와 문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다. 자신이 겪은 참혹한 시대를 극도로 상징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시어로 그려 내며 아우슈비츠를 바탕으로 한 서정시를 쓰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죽음의 푸가>는 1952년 시집 <양귀비와 기억>에 수록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아도르노는 자신의 말을 정정하기에 이른다.

"첼란의 시는 침묵을 통해 극도의 경악을 말하고자 한다. 해를 거듭하는 고통은 고문당하는 사람이 울부짖듯 표현의 권리를 갖는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어떠한 서정시도 쓰일 수 없다는 말은 잘못이었다.”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gVwLqEHDCQE

파울첼란이 낭송하는 '죽음의 푸가' 


시의 제목에 들어 있는 ‘푸가’라는 음악 용어 역시 수십 년간 논란의 여지를 제공했다. 한 주제가 여러 목소리로 차례대로 반복되면서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가는 음악 형식이 '푸가'다. 이 시에서는 죽음이라는 주제가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으로 반복된다.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음악적 리듬도 느껴진다. 그래서 이 시는 언어로 재현한 음악성을 파악해야 이해가 되는 시라고들 한다.

나는 이 시에 나타난 형식을 꼭 음악적으로 해석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죽음의 푸가'가 던져주는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푸가'라는 용어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검은 우유, 마신다, 무덤, 판다, 마신다, 판다...

이 시어들이 반복되며 얽히고설키는 그 고통스럽고 비참한 상황이 죽음이고 그 죽음으로 가는 비참함의 강도가 푸가의 형식으로 리듬을 타고 있다. 눈으로만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것.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에 대한 이해는 아우슈비츠를 둘러본 후에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최명란의 시 '아우슈비츠 이후'를 읽으면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 처참함의 정도가 얼만큼이었을지 상상하기에 알맞은 시이기도 하다.


아우슈바츠를 다녀온 

이후에도 나는 밥을 먹었다


깡마른 육체의 무더기를 떠올리면서도


횟집을 서성이며 생선의 살을 파 먹었고

서로를 갉아먹는 쇠와 쇠 사이의

녹 같은 연애를 했다


역사와 정치와 사랑과 관계없이


이 지상엔 사람이 없다

하늘엔 해가 없다 달도 없다

모든 신앙도 장난이다

                                            <아우슈비츠 이후> 전문/최명란


역사와 정치, 사랑과 관계없이 이 지상엔 사람이 없고 해도 달도 없다. 신앙도 장난이다. 

참으로 절망적이다. 그래도 시인은 밥을 먹었고 연애도 했다. 아우슈비츠에 다녀온 이후 현실적인 생활 속에서 시인은 괴로운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세계인을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상흔일 수밖에 없다. 


집단 무의식이 투사된 인류 최대 비극의 현장 앞에서 역사를 되돌아볼 시간을 갖는 것은 왜 필요할까.

아우슈비츠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되돌아보기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재앙을 막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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