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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솔안나 May 23. 2024

아우슈비츠에 관한 노래와 시 그리고 영화(1)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이장혁

한가한 오후 시간,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온 곡은

이장혁이 부르는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다. 며칠 전 CD를 정리하면서 이 음반을 손에 든 순간 가슴이 콩닥거렸다. 설레었던 기억과 그 설렘을 덮어버린 어두움 때문일 거다.  


https://youtu.be/ZOoQa1sEBpM?si=CB_o52EUSVXk2aiW

https://youtu.be/ZOoQa1sEBpM

저기 내 형제들이 걸어가네. 내 모차르트에 발맞춰

마른 장작 같은 사람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이 행진곡이 끝나면 저 고단했던 삶도 끝나고

저들이 타는 냄새 속에서 난 오늘도 울며 잠이 드네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정녕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저기 내 어머니가 타고 있네 내 어린 동생이 타고 있네


화로 속에 쥐떼가 되어 한 줌 재가되어 가네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정녕 우리를 버리 시나이까


내 바이올린은 기억하리 이 지옥 같은 광기의 시간

몰래 너를 적시던 내 눈물과 용서받지 못할 이 노래를.


들을수록 눈물이 고이는 이 노래, 어떻게 이런 노래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장혁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았다. 수용소에서 활동했던 유대인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의 멜로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절망적인 상황과 수용자들의 슬픔을 표현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제목도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이기에 방송을 보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이 간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는 총 5-6개의 오케스트라가 존재했다. 대부분은 남성 수용소 안에서 만들어진 오케스트라였다. 여성 수용자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는 1943년 6월에 처음 만들어진다. 당시 인원은 20명, 남성 수용자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들이 대부분 전문 음악가들로 이루어졌던 데에 반해, 여성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중 음악 전공자는 거의 없었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약 50명의 유대인 음악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수용소 내에서 연주를 강요받는다.

오케스트라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업무는 수용자들이 노동을 하러 갈 때, 그리고 노동을 마치고 올 때 행진곡 등을 연주하는 일이었으며, 일요일마다 나치 간부들을 위한 음악회에서도 연주해야 했다. 또, 가스실로 향할 환자들 구역에서 연주를 했는데, 이는 청중들과 연주자들 모두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의 연주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장혁의 말대로 음악이 치욕적인 도구로 쓰인다는 것에 절망했을까. 그러나 아름다운 음악을 둘러싼 참혹한 현실은 생존의 의미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전쟁과 수용소, 그리고 죽음의 수용소 하늘 위로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의 수준 높은 선율, 이 모든 아이러니는 어떠한 경우를 접목시켜도 삶과 죽음이 결부된 비극일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처음 이장혁의 노래를 들었던 것은 십여 년 전 겨울 어느 날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휴대용 시디플레이어에 시디 몇 장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나만 유독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여행 전에 구입했던 음반과 책 그리고 노트, 고스란히 아우슈비츠까지 함께 갔던 겨울이다.  

2010년 출간된 이동진의 에세이집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와 '필름 속을 걷다'를 읽었다.

BOOK OST '천일의 몽상'

이 책에 수록된 여행지와 관련된 음악들을 선곡하여 2011년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음반이 BOOK OST '천일의 몽상'이다. 나는 이 여행에세이 두 권을 읽었고 음반도 구입해서 여행길에 올랐다. 그 겨울 여행 중엔 폴란드에서의 추운 날들이 더 춥게 느껴지는 아우슈비츠의 여정이 있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차 안에서 듣던 노래, 오후 3시면 어두워지는 동유럽의 겨울은 이 노래에 잘 스며들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했을 때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록들만 남아있는 수용소는 상상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는 흔적들이 넘쳤다. 이미 아우슈비츠 수용소 관련 영화와 책들을 본 후에 찾아온 곳이지만 그곳에 나는 없었다. 오직 내 귓전에 맴도는 멜로디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정녕 우리를 버리 시나이까'

기도문처럼 되풀이되고 있었다. 이 노래의 힘은 나를 그 안에 적셔버리는 물줄기였다. 나도 모르게 젖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노트를 펴고 무언가를 끄적여야만 했다. 그렇게 거기서 빠져나와야만 했다.

'화로 속에 쥐떼가 되어 한 줌 재가되어 가네,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정녕 우리를 버리 시나이까'

절망의 늪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르는 노랫소리는 생존을 위해 연주를 해야 했던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어우러지는 느낌으로  눈앞을 흐릿하게 했다. 아우슈비츠를 빠져나와서도...

파울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를 떠올리며 이장혁의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다음 여행지인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겨울여행은 여행 후에도 나를 아우슈비츠에 한동안 머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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