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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솔 Nov 16. 2024

캣맘

고양이 식당

그 아이를 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아이의 움직임만 바라보았다.

빈 그릇에 사료를 넣어주고 물그릇을 놓아주면서도

아이를 가까이에서 본 적은 없었다.

내가 빈 그릇에 사료를 채워 넣는 소리에 아이는 놀라 집밖으로 나왔다. 

흘끔 눈이 마주친 순간 빠르게 몸을 피한다.

앞 발을 움직이자 엉덩이와 꼬리가 땅에 닿는 것이 아닌가.

뒷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 어쩌다가... 조그마한 아기고양이였다.

몸 가눌 곳을 만들어 주었지만

어떤 녀석이 드나드는지는 처음 보았다

길가를 어슬렁대던 고양이들 틈에서

아기 고양이 너는 왜 그런 몸이 되었니?

불편한 몸을 끌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곳으로 그 아이는 몸을 숨겼다


고양이 블로그에 올린 이 글을 읽고 어느 날 중년의 캣맘이 나를 찾아왔다. 이 상황을 나는 내 입으로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을 위해 겨울에는 집을 만들어서 곳곳에 놓아주었어요. 우리 집 건물 입구 오른쪽 모퉁이에 에어컨 실외기가 있어요. 그 실외기 뒤쪽에서 쪼그리고 자는 고양이가 있어서 그곳에다 집을 하나 만들어서 놓았죠. 좋은 건 아니지만 스티로폼 상자에 비닐테이프로 겉표면을 칭칭 감고 동그랗게 구멍을 뚫은 다음, 안에는 담요하나 깔았어요. 제법 따뜻하니 겨울 한 철은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어느 날 사료를 넣어주면서 살며시 들여다보니까 상자 안에서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오는 거예요. 부스럭 발소리에 놀랐는지 도망가려고 나온 고양이를 보고 실은 내가 더 놀랐어요. 

빠르게 도망을 간다고 가는데 뒷다리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꼬리를 땅에 대고 엉덩이를 질질 끌며 앞 발의 힘으로 잽싸게 나가더니 언덕 수풀 속으로 사라졌어요. 점프도 잘 안되는데 기를 쓰고... 그런데 몇 개월 안 된 아기고양이 같았어요.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 얼른 잡지 못한 게 후회되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길냥이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경험이 풍부함을 드러내듯 전문가 못지않은 어조로 나를 다독였다.  

 "아마도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일 거예요. 사람 때문에 많이 다쳤던 기억이 있나 봐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도경님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 덕분에 언젠가는 그 아이도 사람들을 믿을 수 있게 될 거예요."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지 오늘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물과 사료만 집 앞에 놓아주고 들어갔죠. 몇 시간 후 내려와서 모퉁이를 살짝 들여다보았어요. 물과 사료가 없는 것을 보니 들어와서 다 먹었나 봐요. 밤에 잠은 자고 낮에 나가서 놀고 그럴까요? 근데 다친 다리가 어느 정도인지 자세히 볼 수가 없어서... 병원에도 데려가야 할 텐데...


"다리를 못 쓰더라도 고양이들은 놀랍도록 잘 적응해요. 하지만 지금은 상처로 인한 2차 감염이 더 걱정되네요. 혹시 상처 부위에 진물이나 붓기는 없었나요? 밤에 몰래 들어와서 먹이를 먹는다고 하니... 잘 지켜보세요. 사람이 갑자기 잡으려고 하면 무서워서 더 도망간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주면서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세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거예요."


그녀가 다녀간 후 나는 그 아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해서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내 집옆에서 쪼그리고 자는 생명이 안쓰러워 집 좀 만들어주고 물과 사료를 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찾아온 걸까. 그리고 도망가는 애를 잡을 수가 없어서 얼핏 본 것만으로 어떻게 상처부위의 붓기나 진물을 파악할 수 있어? 나 참, 이상한 아줌마야. 그거 확인하려고 찾아온 거야? 

'다리'를 보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도 했다. 다리를 다쳐서 뒷다리가 보이지 않는 놈을 난 '다리'라고 부른다.




"뭐 하시는 거예요?" 고양이 집을 들여다보려 하다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203호 통장 아주머니였다.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 이거요? 겨울이라 고양이들이 추울 것 같아서..."

"길고양이 때문에 우리 동네가 얼마나 지저분해졌는지 아세요? 벌써 세 번이나 민원이 들어왔다고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웃들과 크게 다투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실외기 뒤 고양이 집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는 약했지만 절박했다. 통장 아주머니의 눈초리를 피해 실외기 뒤를 살폈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움츠리고 있었다. 다리였다.     

"또 시작이네요. 캣맘들 때문에 주변의 아파트도 얼마나 시끄러운 줄 아세요? 여기도 그렇게 만들 거예요?"   

그때였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 말씀드려도 될까요?"     

낯선 목소리에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며칠 전 나를 찾아왔던 캣맘, 그녀였다.

"저는 이 동네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했던 수의사였어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의료용 가방과 켄넬이 들려있었다.     

"마을의 청결과 주민들의 불편함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저기 있는 고양이는 당장 치료가 필요해 보이네요."     

통장 아주머니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수의사라는 말에 태도가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혹시... 수의사 면허증을 보여주실 수 있나요?"

통장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여자는 잠시 주춤했다.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고양이의 상태가 위험해 보여서..."     

"역시 수상해요. 요즘 캣맘들 사이에서 불법 진료한다는 소문도 있던데..."     

나는 혼란스러웠다. 수의사라던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때 실외기 뒤에서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만, "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면허가 없지만, 동물을 돕는 일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요. 제가... 제가 과거에 실수를..." 다급하게 말은 했지만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다리를 집에서 꺼내 캐리어에 넣었다. 두려움에 다리의 동공이 커지고 울음소리를 날카롭게 냈다.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나는 분위기를 살피며 말했다. 

"선생님 얘기를 들어 볼까요? 차라도 한잔하면서... “

그녀는 고양이 캐리어를 자동차 뒷좌석에 넣었다.

우리 셋은 내 집으로 올라왔다. 통장 아주머니도 호기심이 이겼는지 따라왔다. 부엌에서 차를 끓이는 동안, 여자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3년 전까지 저는 동물병원을 운영했어요. 그때 수술 중 실수로 한 강아지를 잃었죠."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만이 깊어가는 밤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보호자가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음에도, 그 아이의 죽음이 저를 괴롭혔어요. 그날 이후로 매일 밤 꿈에서 그 강아지를 봤어요. 주인분의 오열하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요. 제가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얼마나 용서를 빌었는지...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죠. 그래서 스스로 면허를 반납했어요. 더 이상 실수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녀는 촉촉해진 눈가를 손등으로 눌렀다.

"그래서 불법으로 치료를...?"  통장 아주머니가 날카롭게 물었다.     

"아뇨. 응급처치만 해요. 그 이상이 필요한 아이들은 제가 아는 병원으로 데려가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 고양이는요?" 내가 물었다.

 ”뒷다리에 상처가 심각해서 당장 치료가 필요해요."     

통장 아주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나도 사실은... 고양이가 싫은 건 아니에요. 그냥 동네가 지저분해지고, 다른 주민들이 불평하니까... 우리 동네는 보시다시피 상가주택들이라 음식점이 많아서 고양이들이 많이 오가니까 쓰레기봉투도 열려있기도 하고... "  

"수의사 선생님, "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합법적으로요."     

그때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제가 구상하고 있는 게 있어요. TNR 프로그램이랑 지역 동물병원들과 연계해서..."     

"TNR이 뭔가요?"

" Trap-Neuter-Return이라고, 포획해서 중성화 후 제자리에 돌려보내는 거예요. 개체 수도 조절되고, 길고양이들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죠."     

통장 아주머니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럼... 우리 동네는 어떻게 되는 거죠? “     

"길고양이 급식소를 공원 쪽에 정식으로 만드는 거예요." 그녀가 설명했다.

"청결하게 관리되는 지정된 공간이 있으면, 고양이들이 아무 데나 돌아다니지 않아요. 오히려 동네가 더 깨끗해질 수 있죠."     

"그게 가능할까요?" 통장 아주머니의 목소리에서 의심과 기대가 교차했다.     

"다른 지역의 아파트 단지 주변의 사례가 있어요. 제가 보여드릴게요."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깔끔하게 관리된 급식소, 건강해 보이는 길고양이들, 웃으며 먹이를 주는 주민들,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풍경이었다.

공원한쪽에 고양이 식당이라는 간판도 걸려있다. 고양이들이 그 주변을 산책하며 기거하고 산책 나온 주민들을 반기는듯한 장면들이 많았다. 서로 사이좋게 살고 있는 모습이다. 내가 원하는 그런...          

"근데 비용은..." 내가 걱정스레 물었다.

"제가 몇몇 후원처를 알아요. 그리고 우리 시(市)에서도 적극 도와주기 시작했어요, 이 사진들 새로 생긴 아파트 주변의 공원이잖아요. 모르셨어요?." 

그녀는 계속 이야기했다.

"사실 전 병원을 그만둔 후에도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했거든요. 그때 맺은 인연들이 있어서... 그리고 저도 다시 면허를 취득하려 준비 중에 있어요."     

그때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치료해야 할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네요."     

"저도 가볼게요." 내가 따라 일어섰다.

"저도요." 통장 아주머니도 일어났다.

우리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입춘이 지났다. 나도, 통장님도 그 수의자와 함께 만나는 날이 많았다. 함께 시청에 들어가 협조를 구하기도 했고 동물병원도 찾아갔다.

마을 게시판에는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 및 TNR 프로그램 시행 안내문'이 붙어있다. 주민 투표 결과 찬성 68%로 통과된 것이다.     


"도경 씨!"

나는 공원 한편에 마련된 급식소에서 손을 흔드는 통장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녀 옆에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전직 수의사가 서 있었다. "오셨어요?"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며 통장 아주머니한테 눈인사를 했다. 

"지난주에 중성화 수술받고 온 냥이들 잘 지내나요?"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네, 다들 건강해요. 특히 그때 그 다리 다친 아이 있잖아요? 뒤쪽 아파트에 사시는 주민 한분이 입양했어요. 이제는 절뚝거리지도 않아요." 

"아, 맞아요. 처음엔 '다리'가 사람을 너무 무서워해서 걱정했는데..." 그녀는 반가워서 손뼉을 치며 말했다. 

듣고 있던 통장 아줌마가 나 대신 말을 이었다.

"그분이 참 끈기 있게 다가갔어요.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와 말도 걸어주고, 간식도 주고... 한 달이나 그러셨을걸? 덕분에 '다리'도 이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어느새 통장 아주머니도 캣맘이 되어 있었다. 

"어제는 그분 집에 갔더니 소파에서 배를 위로 보이고 누워 자고 있더라고요." 말을 들으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동물도, 사람도 서로를 믿기 시작하면 그렇게 달라질 수 있어요. 우리처럼..." 그녀의 말에 우리는 모두 웃었다.


우리는 급식소 주변을 정리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길고양이들은 이제 더 이상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았고, 마을은 오히려 전보다 깨끗해졌다. 공원과 놀이터에 오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고양이들과 교감을 하며 놀았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음 주에 동물병원 개원식이 있어요. 제가... 다시 면허를 취득했거든요."     

우리는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이 함께 외쳤다.

"축하해요 선생님!"

"그동안 여러분 덕분에 용기를 냈어요.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어요."     


급식소 한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바라보며 길게 하품했다. 

따스한 봄 햇살이 그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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