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아프대
기저귀를 차고 있는 로리에게 요즘 들어 부쩍 잔소리를 하게 된다. 기저귀 자체를 없애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고 보니 아이에게 조바심을 내는 것이다.
곧 36개월이 되는데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으면 어떡하나, 어린이집 친구들도 아직 기저귀를 차느냐고 로리에게 묻곤 한다.
"기저귀를 빨리 떼어야지 기저귀 쓰레기 때문에 지구가 아프다잖아~" 하고 말하면
"내일부터 기저귀 뗄게요." 하고 말한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어제의 다짐은 사라지고 다시 제자리다. 소변기 앞에 서서
"못하겠어, 기저귀 할래요~"라며 몸을 동동거린다.
그냥 팬티에 싸도 괜찮다고 달래도, 기저귀를 다시 채울 때까지 버티고 서서 기다린다. 이런 로리를 보며 나 역시 자꾸만 같은 잔소리를 반복한다.
그래서 약속을 하나 만들었다. 밖에 나갈 때는 기저귀를 차고, 집에서는 팬티만 입기로 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매번 팬티로 갈아입힐 때마다 로리는 도망을 가고, 나는 쫓아가서 붙잡는 소동이 벌어진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기저귀를 벗기고 팬티만 입혔다. 로리는 홀가분한 몸으로 놀이방으로 들어간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로리는 장난감을 만지며 자주 콧노래를 부른다. 가끔 즉흥으로 만든 자작곡을 흥얼거리기도 한다.
"지구가 아프대요~ 병원을 지어야 해요~ 기저귀를 떼어야 해요~"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며 레고를 쌓는다.
"로리야, 병원을 왜 지어야 해?" 하고 묻는 내게
"할머니가 그랬잖아요, 지구가 아프다고! 그래서 지구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 돼~"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아픈 지구를 위해 병원을 짓겠다는 그 마음은 기저귀를 떼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돌 전에는 가끔 천 기저귀를 채워도 보았다. 그러나 걷기 시작하고 나들이가 많아지다 보니 당연히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때도 일회용 기저귀(하기스)는 있었다. 하지만 천 기저귀를 한 바구니 쌓아놓고 주로 사용했다. 사용한 것이 몇 개 모아지면 손으로 빨아서 삶기도 했다. 물론 세탁기도 있었지만 아기 기저귀만큼은 손으로 빨았다. 지금은 어느 집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아기 기저귀는 당연히 마트나 인터넷에서 주문하는 것으로 알고 아이를 키운다. 거기에 나의 젊은 엄마시절을 들이대며 천 기저귀 운운하면 어떻게 될까. 너무 편한 것이 체질화되어 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내 자식 세대에게 나의 세대를 강조하기란 아무리 좋은 뜻이어도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부터 아기를 내가 키웠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저 일회용 기저귀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떼버려야 할 시점이 되었는데도 못 떼고 있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할머니~ 쉬 마려워요."
신나게 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쉬가 마렵다고 한다. 얼른 팬티를 내리고 소변기 앞에 세웠다. 잠시 서서 힘을 주더니
"안돼! 못하겠어. 기저귀 해 주세요 네?" 하며 칭얼대려 한다.
"그냥 팬티에 싸도 돼. 기저귀 하지 말고 놀다가 쉬 마려우면 소변기에 서서 해봐, 안되면 그냥 싸도 괜찮아!" 어찌 되었든 기저귀를 한 번이라도 덜 채우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로리는 내 방으로 뛰어오며
"할머니! 이것 좀 보세요 로리가 여기에다 쉬 했어요~"
하며 소변기 통을 들고 오는 게 아닌가. 받아 들고 보니 노란 오줌이 참새 눈물보다 조금 더 들어있었다.
"어머! 이거 진짜 로리가 오줌 눈 거야? 맞아?" 하며 박수를 치자
"네~ 로리가 쉬~ 했어요. 그러니까 팬티를 많이 입어야 해요~" 하며 뿌듯해한다.
이제 한 단계 나아간 것인가. 여전히 기저귀에 집착은 하고 있고, 날마다 지구가 아프다며 팬티를 입고 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