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했지만 좋아!
어린이집에서 나온 로리와 함께 텃밭으로 향했다.
“로리야, 우리 텃밭에 채소들이 로리 보고 싶어 죽겠다는데? 비가 와서 며칠 못 갔잖아.”
로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눈을 반짝였다.
“할머니! 우리 상추 잘 컸나 로리도 궁금해요!”
비가 지나간 뒤 텃밭은 초록초록, 흙이 안 보일 정도로 싱그러웠다.
차에서 로리를 내려주려던 순간, 어디선가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우리 텃밭과는 조금 떨어진 안쪽 구역에서 밭을 가꾸는 젊은 엄마들이었다.
로리는 창밖을 슬쩍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텃밭에 올 때마다 만났던 이모들인걸 알았다.
“할머니! 로리는 안 내릴래요. 차 안에 혼자 있을래요.”
“어? 왜? 상추도 보고, 달팽이도 찾아봐야지~”
“싫어, 싫어! 안 내릴 거야! 빨리 문 닫아 주세요!”
뜻밖의 하차 거부에 당황스럽기도 해서 그냥 놔둘까 하다가 달래 보았다.
“로리야, 상추들이 보고 싶다잖아. 쓰담쓰담 안 해줄 거야?”
로리는 입을 삐죽 내밀며 흐응! 하더니 말했다.
“로리는... 저 이모들 싫어요. 아앙~ 그냥 문 닫아~”
그 사이 이모들은 밭 정리를 마치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로리의 귀에다 귓속말을 건넸다.
“로리야, 이모들 이제 집에 가나 봐, 그래도 안 내릴 거야?”
로리는 잠시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 정말 집에 간대? 그럼... 로리 내려줘요.”
그 순간이었다.
차에서 내린 로리를 본 이모들이 꺄악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애기야! 오랜만이야~ 이모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로리는 깜짝 놀라 도망치듯 텃밭 안으로 달렸다.
한 이모가 뒤따라가며 외쳤다.
“애기야! 도망가는 거야? 왜~ 이모가 싫어? 그럼 누가 그렇게 귀여우래?”하며
두 팔을 벌리고 쫓아간다.
로리는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갑자기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이모들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그 자리에 서서 호들갑스럽게 감탄한다.
“우와, 인사도 너무 잘하네~ 어쩜 이렇게 예의 바르니~”
그렇게 로리와 이모들의 재회는 정중한 인사로 마무리됐다.
이모들이 내 밭을 둘러보며 내가 들고 온 작은 바구니를 보더니 킥킥 웃는다.
“이 바구니로 되겠어요? 오늘 몇 장이나 딸 건데요~?”
그러더니 비닐봉지를 하나 툭 뜯어 내민다.
“이 정도는 돼야지~ 앞으로 더 자랄 텐데, 이 바구니로는 어림도 없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 와서 이 바구니의 다섯 배는 따갔어요. 그래서 이웃들이랑 나눠 먹었죠.”
그녀들이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는 옆 고랑에 심은 토마토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어머! 어머니, 이거 순 좀 쳐내셔야 해요. 곁가지도 자르고요. 안 그러면 병들어요!”
그러고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토마토 손질을 시작한다.
“나도 전원생활 좀 해봤는데요~그냥 심어두면 잘 크던데...”
내가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 이모들은 능숙한 손길로 토마토 줄기를 묶고, 곁순을 따고, 고추 모종까지 정리해 준다.
그녀들이 보기에 아무래도 나의 농사 수준이 영 미덥잖은 것 같다.
로리는 어느새 마음을 열었는지, 풀을 뽑으며 이모 옆에서 종알거린다.
“이렇게? 이렇게 해?”
이모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어우~ 로리 최고! 너무 잘한다~”
우리 밭만 초록으로 무성해서 나는 그게 더 풍성해보여 좋았는데 갑자기 텃밭이 말끔해진걸 보니 느낌이 왔다.
무조건 심어놓고 물만 퍼다 뿌린다고 잘 크는 게 아니었다. 쓸데없이 웃자라는 것은 정리를 해 줘야 했던 것이다.
무성했던 초록의 잎 사이로 토마토 줄기가 드러나고, 고추는 곧게 세워졌다.
이모들은 병충해 예방 방법과 비료 주는 법까지 알려주고는 돌아갔다.
정리된 밭을 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로리도 텃밭 이모들과의 시간이 나쁘진 않았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로리야, 아까는 왜 이모들 싫다고 했어? 정말 싫었어?”
로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한다.
“음... 이모들 소리가 너무 커서 불편했어요. 그래서...음...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모들이 할머니를 많이 도와줬잖아. 덕분에 우리 텃밭이 예뻐졌고, 할머니는 이모들 좋은데~?”
로리는 코를 찡그리며 웃는다.
“로리도 이모들 좋아요.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