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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솔안나 Jul 04. 2024

왜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수오미 공화국/헬싱키의 카모메 식당

해외 업무와는 관련이 없는 일을 하면서도 나는 수오미공화국을 두 번 다녀왔다. 물론 여행객으로도 두 번이 아니라 서너 번씩 다녀온 분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 경우엔 한동안 머물러야 했던 프라하 말고는 같은 나라, 같은 도시를 두 번 이상 다녀온 곳은 별로 없으니까...

‘수오미(suomi)’는 핀란드어로 ‘땅’ 또는 ‘나라’를 의미하며 호수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핀란드라는 영어 발음보다 어감이 좋아서 '수오미'라고 부르고 싶다. 마치 우리말처럼 느껴지고 친근감이 생긴다.

수만 개의 호수와 숲이 국토 전반에 펼쳐져 있고 자작나무가 즐비한 나라. 그리고 위대한 음악가 장 시벨리우스의 나라인 핀란드를 나는 어느 날 지도에서 콕 찍었다.(2017년도, 코로나를 모르던 때라서 좋았다.) 그리고 헬싱키행 비행기를 탔다. 그 무렵 동유럽에 몇 개월 머물고 있던 중이었기에 더 쉽게 움직일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때 일본어 공부를 한답시고 일본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았다. 그때 가장 여러 번 본 영화가 '카모메 식당'이었다. 헬싱키를 여행했던 사람들의 여행기에도 곧잘 등장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헬싱키의 한적한 골목길, 그곳의 작은 식당은 관객들에게 여행을 꿈꾸게 하기에 충분했다.  

'카모메 식당'은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로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인 스토리, 그리고 음식을 정갈하게 요리하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이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위로와 희망을 선물 받는 느낌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나도 영화 속 미도리 여사처럼 어디를 갈까 하고 콕 찍은 곳이 ‘수오미‘(핀란드보다 수오미가 좋다)였으니 영화처럼 며칠 살아보기로 했다.      




중앙역을 중심으로 헬싱키 시내는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무작정 걷는다. 목적지를 정하고 걷지 않아도 생각했던 곳들을 다 볼 수 있었다.

걸으면서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이정표나 안내문 또는 대중교통의 노선표다. 그것들을 볼 때 조금 의아했다. 핀란드 언어와 스웨덴 언어를 함께 표시해 놓은 것까지는 좋은데 영어 표기가 거의 없었다. 이 나라의 공식 언어인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함께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정표나 안내문은 여행자들을 위해 그 나라의 언어와 영어로 표기해 놓는 것이 일반적인데...

내가 다녀온 지 몇 년 되었으니 이제는 좀 달라졌으려나?      


# 첫 번째  그곳

 Ravintola Kamome (카모메 식당)에서 시나몬 롤을...

나는 영화 속 카모메 식당을 찾았다. 2006년에 문을 연 일식당이다. 당시 영화 ’ 카모메 식당‘(Ruokala Lokki)의 촬영지로 사용된 후 레스토랑 이름도 이 영화에서 따왔다고 한다.

Kamome의 본질은 정통 일본 요리와 음료, 단순하고 유쾌한 장식,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라고 한다. 그래서

영화 속의 식당처럼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여기서도 느낄 수는 있다. 다만 사치에(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음식을 만들던 주방의 느낌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사치에가 고집하던 일본 전통의 오니기리(주먹밥)는 없는 것 같아서 돈가스 카레로 점심을, 디저트로 시나몬 롤과 커피를 주문했다. 영화 안에서 어느 날 사치에는 "시나몬 롤을 만들어볼까요?" 하며 미도리에게 묻는다. 그리고는 만드는 과정이 영상에 담기고 그 후 갓 구워낸 시나몬 롤을 꺼내어 맛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마치 냄새를 맡고 있는 양 내 뱃속에서는 그 빵을 미치도록 원했었다. 시나몬 롤은 카모메 식당에 손님을 끌기 시작한 첫 메뉴였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매일 식당 앞을 지나가는 핀란드 할머니 삼총사(한 번도 들어온 적 없었음)가 시나몬 롤을 만들던 날  맛있는 그 냄새에 이끌려 처음으로 식당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파리만 날리던 카모메 식당은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내가 먹은 시나몬 롤은 보기에는 사치에의 것보다 맛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맛은 있었다.

출처:Ravintola Kamome web


# 두 번째 그곳

헬싱키 마켓광장(카우파토리)

마켓광장은 헬싱키의 심장부에 위치한 활기 넘치는 시장 광장이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도 사치에와 미도리가 장을 보러 온 곳이며 부둣가를 중심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과일과 채소, 생선, 고기, 꽃, 기념품 등이 가득하다. 특히 내 눈에 띈 것은 버섯이었다. 이곳 특유의 노란 버섯이 자꾸 눈에 띄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것도 영화에서 보았던 것,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세 번째 일본여성인 마사코는 공항에서 여행가방을 분실하고 가방을 찾을 때까지 카모메 식당을 오가며 사치에와 미도리와 소통을 한다. 어느 날 공항에서 분실됐던 여행가방이 호텔로 도착하는데, 그 가방 안에는 버섯이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그 가방 안의 버섯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사코는 핀란드로 떠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인물인 듯했다. 처음에는 여행인지 아닌지 본인도 모르겠는 상태로 떠나온 것이다. 하지만 분실됐던 여행 가방을 찾으면서 마사코는 희망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듯하다. 인물의 성격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나는 나름대로 버섯이 상징하는 것은 자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사코는 핀란드의 숲에서 버섯을 따며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녀는 핀란드 사람들의 여유로워 보이는 무엇을 궁금해했다. 그러자 카모메식당의 단골인 토미가 그 이유를 알려준다. 그건  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 말을 듣자 마사코는 숲으로 향했다. 그때 버섯을 무지하게 많이 따는 마사코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버섯은 마사코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버섯은 '살코루스(Cantharellus cibarius)'라는 종류로 알려져 있다. 살코루스는 핀란드에서 인기 있는 식용 버섯이며, 행운과 번영을 상징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마사코의 여행 가방에 가득 들어 있던 핀란드의 버섯은 새로운 시작, 자연과의 연결, 번영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내 맘대로)

마켓광장은 핀란드 문화와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장소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헬싱키 부둣가의 마켓광장


# 세 번째 그곳

아카데미아 서점(Academic Bookstore)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서점이며, 핀란드 문화와 역사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한다.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했다. 알토는 핀란드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카데미아 서점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서점 내부는 높은 천장과 자연 채광으로 밝고 넓다. 마치 온실에 들어온듯한 느낌으로 천장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창문이 특이하다. 이런 자연채광은 알바 알토가 설계하는 건축물의 특징이라고 한다.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는 장소로 활기차다.

아카데미아 서점 2층에는 카페 알토가 있다. 이 카페에서 영화 속의 미도리가 책을 읽고 있었다. 영화 초반이다. 카모메식당의 첫 손님 토미가 일본의 애니메이션 '갓챠맨'의 주제가 가사를 알려달라고 한 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리듬 한 소절만 중얼거리며 답답해하던 사치에가 이 서점에서 일본책을 읽고 있는 미도리를 만난다. 갓챠맨 가사를 아느냐고 물어보게 되고 여행을 와서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없는 미도리를 본인 집에 묵게 한다. 미도리는 식당일을 돕겠다고 나서고... 그렇게 카모메 식당은 한 발 한발 천천히 사치에의 소울 푸드를 염두에 두고 흘러간다.




내가 방문한 이 세 곳은 모두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본 장소이다. 헬싱키 마켓광장을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작은 식당부터 재래시장과 제일 큰 서점까지 모두 하루에 돌아볼 수 있었다.

열 번도 넘게 본 영화, 그 속의 동네를 이렇게 들어와 보니 누군가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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