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강가 공원에서 카오산로드 쪽으로 걸어가니 야시장이 나왔다.
꼬치 몇 개 주워 먹고 카오산로드 위 골목으로 들어섰다.
기타 선율을 따라가니 BAR가 나왔다.
‘기타 치면서 인디음악하는 싱어송라이터’의 전형같은 연주자의 모습에 홀리듯 착석했다.
형형색색의 전구들이 까만 밤 거리를 수놓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갖가지 언어들이 뒤섞여, 시끌벅적 활기 넘치는 길거리에 앉아,
칵테일을 홀짝이며 감미로운 음색을 듣고 있자니 분위기에 취했다.
노래가 끝났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이 분위기를 이어가야해!!
다른 술집을 찾아 나섰는데 웬걸,
옆 술집도, 옆옆 술집도, 줄줄이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다.
태국 최고ㅠㅠ!!!!!!
어젯밤 정찰할 때 봤던 술집이 보였다.
저 집 가보고 싶었는데!
테이블에 앉아 칵테일을 시켰다.
노래보다는 악기연주를 많이 하는 곳이었다.
한참 음악에 취해 어깨춤을 추다가, 잠시 쉬어 가는 타임이 왔다.
일행끼리 담소를 나누고,
나는 칵테일 홀짝이면서 사람 구경하고,
흥이 올라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혼자 왔어?
같이 앉아도 될까?”
‘오늘 무슨 날인가? 왜 이렇게 말을 시켜…’
무심코 돌아봤는데,
지금 있는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체가 나타났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직장인같은 느낌이랄까.
너무 멀쩡해서 이 왁자지껄 제멋대로 흐트러진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말 거는 사람들은 보통 능구렁이 같은 느낌?ㅋㅋ이 있는데,
엄청 조심스러워하는 게,
그렇고 그런 의도를 가진 남자겠거니 생각하고 뒤돌아본 게 미안해질 정도로 머쓱해 했다.
‘왜 자기가 말 걸어놓고 자기가 당황해하는 거지?ㅋㅋ’
날이 선 긴장감이 나한테까지 전해져 왔다.
‘나쁜 사람 같지 않아.
그리고 일단 지금 내가 무척 기분이 좋아.ㅋㅋㅋㅋㅋ’
“Sure!” 하고 앞 자리에 놓은 가방을 치워주었다.
앉아서 “hum………”하더니 한참 동공지진이 나셨다.
꺼낼 말을 열심히 고르는 듯 보였다.
고심 끝에 꺼낸 첫 마디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what’s your hobby?"
교과서에서 보던 스크립트를 태국 술집에서 들을 줄이야.
과하게 친절한 억양까지, 완벽하게 기초회화 챕터1의 제임스 목소리였다.
이런 곳에서 이런 첫 마디로 대화를 거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좋은 사람이네'
느낌이 왔다.
“취미가 뭐냐고?ㅋㅋㅋㅋ
내 취미는 음… 산책하고 책읽고 글쓰고 아트갤러리가고 음악 듣는 거?
특히 이런 라이브 공연 보는 거 좋아해.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지금처럼!”
말하면서 안 하고 산지 너무 오래 됐구나, 새삼 깨달았다.
“나도 라이브 음악 듣는 거 좋아해.
그래서 퇴근하면 밤에 여기 들려서 공연보고 집 가곤 해.
지금처럼! ㅋㅋ”
“오~ 여기 사는 구나!”
“응 3년 정도 됐어. 엄마 있는 필리핀에서 살다가 최근에 태국으로 왔어. 아빠가 태국에서 사업을 하시거든.”
“아 그럼 아빠 회사에서 일하는 거야?”
“아니 혼자 뚫었지. 이력서 넣어가면서…”
“그럼 아빠랑 같이 살아?”
“아니 혼자 살아.”
“와 대단하다! 외국에서 혼자 취직하고 집도 얻은 거잖아?! 무슨 일하는데?”
“나는 유니폼 제작이랑 숙박업하는 회사에서 마케팅을 맡고 있어.”
“오~ 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어떻게 영어로 설명해야할지 버퍼링남)
...음.. 사회적기업이라고 알아?
좋은 일 하면서 돈도 버는 회사야.”
“비영리단체(Non-profit organization)같은 건가?”
“비영리단체처럼 좋은 일을 하면서,
회사처럼 돈도 버는 거지.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팔아서 환경운동하는 식으로.
돈버는 건데 환경운동도 되고,
환경운동할 때 쓸 돈도 직접 벌고,
그럼 후원금, 지원 떨어져도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있잖아.
장애인의 경우엔 고용을 하는 거야.
돈 주는 건 한 번 주면 땡이잖아.
근데 고용을 하면 자긍심(self-respect, pride)도 줄 수 있잖아.
스스로 살아갈 힘을 주는 거지.
회사동료나 도와줄 지역사람들, 커뮤니티도 얻을 수 있고.
더 지속가능(sustainable)해지는 거지.”
“똑똑하다!”
“응 근데 그래서 어려워.
좋은 일 하는 게 뒷전이 되기도 하고..
돈 버는 게 힘들어지기도 하고..”
“그럼 너는 환경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거야? 장애인관련 기업에서 일하는거야?”
“환경, 장애인,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회사들이 가입(join)해서 협업하는 유니온에서 일해.”
“와 멋지다. 그럼 지금 휴가 나온 거야? 얼마동안 여행해?”
“한달.”
"회사가 허락해줘?”
“안 그럼 그만두겠다고 했거든”
“너 대단하다. 그만큼 네가 가치있다는 이야기야.”
“그럴 수밖에 없어. 직원이 나 밖에 없거든.”
“아ㅋㅋㅋㅋ 힘들겠다. 유니온이면 규모가 꽤 클 거 같은데. 할 일도 많을 것 같고”
“응 그래서 초과근무를 많이 했어. 그래서 휴가를 왕창 쓸 수 있었던 거야.
네가 취미 물어봤잖아.
이것저것 대답했지만…사실 전부 옛날 취미야.
솔직히 언제 미술관에 갔는지 기억도 안나.
이런 공연 본지도 너무 오래 됐고.
취미 없이 산지 너무 오래됐어.
너무 지쳤어.
그래서 무작정 떠나온 거야.”
“나도 필리핀에서 쭉 살다가 좋지 않은 일들이 여러 개 겹쳤어.
…(좋지 않은 일 간략 설명. 프라이버시를 위해 생략하겠음)…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태국에 온 거야.”
“완전 맨땅에 헤딩이었을 것 같은데… 엄청 힘들었겠다.”
“처음엔 진짜 힘들었어.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월급은 쥐꼬리만 하고…
지금은 이직해서 집도 좋은 데 얻고, 어느정도 안정이 됐어.
그래서 슬금슬금 나와본 거야.
나도 그 전까지는 이런데 올 정신이 없었어.
여기서 사귄 친구도 별로 없고..
근데 혼자서 너무 잘 웃고 잘 놀고 있길래 말을 걸어 보고 싶었어.
진짜로 원래 여자한테 말 걸고 그런 성격이 아니야.
이렇게 말 걸어 본 거 진짜 처음이야.”
“응. 너 하는 거 보니까 그런 거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무슨 뜻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잘 생각해봐”
“이름이 뭐야?”
“아, 내가 이름도 안물어봤구나?ㅋㅋㅋ 하.....
나는 리버야. 엄청 긴 진짜 이름있는데 그냥 리버라고 불러.”
“오 뭔가 너랑 잘 어울려!
나는 anna야 한국이름은 아름.”
“아름! 한국이름이 더 좋은 거 같아.”
“영어로 뷰티풀이라는 뜻이야.”
“오 너랑 잘 어울리는데?ㅋㅋㅋㅋㅋㅋ”
“그치?ㅋㅋㅋㅋㅋㅋ”
“그럼 한달 간 방콕에 있는 거야?”
“아니 모레 치앙마이로 가.”
“모레? 모레 언제?”
“모레 밤에.”
“흠… 혹시 같이 다니는 친구 있어?”
“아니? 보면 모르겠니??ㅋㅋㅋ”
“어디 갈지 계획 같은 건 있어?”
“있어보이니?ㅋㅋㅋ”
“그럼 모레 만날래? 내가 방콕 구경 시켜줄게.”
“오~~ 너무 좋아!”
“가보고 싶은데 있어?”
“음…네가 방콕 살면서 제일 좋았던 데가 어디야?”
“나 자주 가는 공원이 있는데…”
“너~무 좋아. 벌써 좋아. 거기 가자.”
“그래ㅋㅋㅋ 뭐 먹고 싶은 건 있어?”
“음…네가 방콕 살면서 제일 맛있게 먹은 게 뭐야?”
“아 그렇게 나온다고~ㅋㅋ 흠… 너 고기국수 먹어봤어?”
“아니.”
“다른 진~짜 맛있는 집 있는데 거긴 너무 멀고…
적당히 맛있는 집 데려가줄게ㅋㅋ”
“너무 좋아. 벌써 좋아. 최고야. Good”
“연락처 알려줄래? 번호 있어?”
“여기는 앱 뭐 써? 카카오톡 안 쓰지?ㅋㅋ”
“들어는 봤어ㅋㅋ 라인있어?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몇년 만에 죽어있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되살렸다.
또 보러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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