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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Oct 03. 2022

운명

빈 의자 2

C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 드는 당신에 대한 생각은 단 하나, "왜?"였어.

"왜?"에서 갈려 나오는 질문들은 여러 가지였지.

사랑한다면서 왜 나한테 친절하지 않을까? 사랑한다면서 왜 나를 귀찮아할까? 당신은 나쁜 남자 스타일일까?

마치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처럼 나는 늘 당신 옆이 불안했어.

그래도 당신 곁을 떠날 수가 없었어. 당신 없이 난 살 수가 없었으니까.

당신을 혹시 꿈에서라도 놓칠까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 당신의 체온을 느끼며 잠들어야 그나마 안심이 됐고, 당신이 잠든 방 문을 열고 또 열어 당신이 거기 있음을 확인해야 했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땐 당신은 나한테 친절했고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듯 보여 나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어.

그러다 다시 둘이 되면 나는 여전히 당신 발목에 매달린 납덩이같은 존재였지. 아무 소용없는 무겁기만 한 존재, 그게 정말 당신에게 나였을까.

여럿이 함께 있을 땐 모르던 소외감을 당신과 둘이 있을 땐 느꼈지. 그게 당신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못 견디게 창피했어.

당신은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까? 나는 당신이 내 말에 언제나 고개 끄덕여 주고 내 편이 돼 주는 상상을 했어. 그러면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질까, 그러면 얼마나 힘이 날까 하고 말이야.

당신은 왜 당신의 이야기를 내게 하지 않을까? 당신이 하는 많은 말속에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걸 깨달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당신의 기분은 어떤지 알고 싶은데 당신의 이야기는 언제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주변을 맴돌 뿐이야. 

당신은 왜 나는 왜 서로 사랑하면서 같이 있으면 불안할까?

당신의 사랑이 거짓일까? 아니면 내 것이 사랑을 빙자한 집착일까?


C가 나에게

나는 언제나 그렇듯 네게 최선을 다했어.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네가 귀찮아서도 아니야.

아무리 너를 사랑해도 나 자신보다 더 너를 사랑할 수 없을 뿐이야. 나 자신을 잊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은 없어.

네가 이런 내 마음을 좀 알아주었으면 했어.

불안함에 마음이 녹아내릴 때 나는 그걸 분노로밖에 표현할 줄 몰랐어.

꿈을 꾸었어.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에 너와 내가 빠져 있었지. 구명선이 와서 나를 먼저 건져 올렸어. 그런데 배 위엔 사람을 더 태울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어. 곧 다른 배가 올 거라고 했지만, 멀어져 가는 네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그 배를 네게 양보하지 않았어. 너무 살고 싶었거든. 잠에서 깨면서 나는 죄의식을 느꼈어.

그게 나였어. 이기적이고 감정마저 메마른 끔찍한 괴물이었지.

너를 사랑해. 하지만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순 없어. 네가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온갖 생각들로 꽉 차 바쁘기만 한 내 마음속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자리가 없었어.

나보다 어리게만 느껴졌던 네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까 망설였어.

그동안 우린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네가 내 품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순 없을까.

힘들었던 순간보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해봐. 지금의 네 마음이 네 기억조차 비틀고 있는지도 몰라.

네가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필요해.

다른 것들 말고 나만 바라봐. 앞으로도 우린 행복할 수 있어.


다시 C에게

그게 당신의 사랑이구나, 당신 자신을 넘을 수 없는 사랑.

다른 사탕이 대신 쥐어지기 전에는 당신이 가진 사탕을 절대 내어줄 수 없는 것. 사탕을 빼앗기면 분노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

언제나 당신 자신, 당신의 것이 먼저인 그게 당신의 사랑이구나.

하나밖에 없는 사탕을 내어줄 줄도 나누어 먹을 줄도 모르는 당신에게 나는 부담일 수밖에 없겠지.

우리는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그러나 나는 그 검은 절망 속에서 당신을 건져주고 싶어.

당신의 손을 이끌어 당신만의 세상에서 그만 나오게 해주고 싶어.

세상에 눈을 뜨고도 당신을 떠날 수 없는 게 나의 운명일까. 서로가 서로를 떠날 수 없는 게 우리의 운명일까.

혼자 외로웠던 순간들, 당신에게서 옮았던 불안, 그리고 당신이 그리워 소리 죽여 울던 시간들을 쉽게 잊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어른 같기만 했던 당신 안의 아이를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도록 할게.

내가 보듬어 볼게. 


내가 나에게

사랑받지 못한 설움에 주저앉고 싶던 순간도 있었지.

하지만 끝내려던 너의 문장은 쉼표로 다시 이어졌어. 마침표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몇 번의 쉼표를 더 찍어야 할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말자.

너는 용기 있는 사람이야. 좋은 생각도 많이 하잖아.

너는 너임에 진심이지. 그러니 너 자신임을 두려워하지 마.

너는 어느 누구의 기대치도 아니야. 너는 너로서 충분히 중요해.

가끔은 울어도 괜찮아.

내가 너라서 언제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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