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1,000원만 더 빼주시면..."
"아, 안 돼요, 이제 진짜 안 돼, 남는 게 없다니까."
딸아이 신발을 두고 나랑 한참 흥정을 벌이던 사장님은 이 말을 남기고 가게 뒤편으로 도망치신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3대 거짓말 중 하나가 밑지고 판다는 상인의 말이라고 했던가.
신발을 담아줄 봉지를 가지러 간 사장님이 사모님에게 하시는 볼멘소리가 가게 뒤편에서 크게 들려온다. "아, 뭐 이걸 이렇게까지 깎아, 참 내." 이거 나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말씀하시는 거 나 다 안다.
잠시 후 나오신 사장님, 내게 신발 봉지를 쑥 내민다.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명랑하게 인사를 마치고 마음 좋으신 사장님 가게가 대박 나길 바라며 나왔다.
서울에 가면 꼭 들르는 남대문 시장 ⎯ 내게 추억의 전당이자 최고의 쇼핑 장소다.
옛날에 엄마와 같이 가면 어묵 국물에 길거리 떡볶이를 사 먹었다. 떡이 유난히 찰지고 색깔 고운 빨강이었던 떡볶이는 왠지 동네 떡볶이랑 달라 보였다. 시장 가는 게 귀찮을 때도 떡볶이 먹을 생각에 따라나서곤 했다.
신입사원 OJT 때 남편이 주로 누비고 다니던 곳도 남대문 시장이다. 우리는 신혼 때 자주 시장에 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남대문 시장을 다니던 남편은 골목골목이 훤해서 길눈 어두운 나를 여기저기 잘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 어릴 때 자주 가던 아동복 상가도 생각난다. "네 새끼 몇 살이야?" 하시며 산같이 쌓인 옷들 사이로 사이즈를 척척 찾아 감 좋고 예쁜 아이들 내복을 엄마들 앞에 던져 주시던 사장님도 계셨다. 사촌동생을 데리고 갔더니 사장님의 거친 말투에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여기서만 통하는 우리의 언어야" 하며 웃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한 동네 사는 아이 친구 엄마들이랑 함께 다녔던 곳도 남대문 시장이다. 큰 형님 같던 대장 엄마를 따라가 본 국수 골목은 신세계였다. 국수 하나를 주문하면 보리밥과 또 다른 국수 한 그릇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 사 먹는다기 보다 얻어먹는 느낌이 드는 따뜻한 곳이다.
내가 머물던 숙소에서 걸어 나오면 서울로7017이 금방이었다. 산책하듯 천천히 걷다 보면 남대문이 또 금방이었다.
중간에 옆길로 새 나와 서울역 하늘정원에서 잠깐 쉬어도 좋다. 하늘 정원답게 아름다운 하늘이 돋보이고 환경보호를 위해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 예쁜 카페도 있는 곳이다.
아이들을 위해 카페 한쪽에 둔 장난감 상자로 아장아장 걸어간 아기가 조그만 손으로 상자 맨 밑바닥에서 힘들게 꺼낸 인형에 우리 모두는 손뼉을 쳐주었다. 아기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인형을 들어 보였다. 햇빛 머금은 아가 얼굴은 그대로 행복이다.
남대문 시장 갈치 골목에 자리한 한 갈치조림 집에 들어갔다. 아래층이 꽉 찼으니 2층으로 올라가란다. 계단을 막 오르려는 내게 아주머니 한 분이 "이것 좀 가져가요" 하시며 2리터 물병을 건넨다. 어른 한 사람이 서면 꽉 차는 좁은 계단을 엉겁결에 물통을 들고 굽이굽이 올라갔다. 2층 좁은 공간에 테이블이 다섯 개나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아주머니의 능력이었다. 뚝배기와 반찬을 가득 담은 쟁반을 들고 수시로 그 계단을 오르내리시는 거다. 우리가 감탄할 때마다 아주머니는 깔깔 웃으시며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챙겨주셨다.
강릉에 가서도 전통시장 가는 걸 빼놓지 않았다. 강릉 중앙시장에서 크로켓을 사 먹고 사장님께 추천받은 칼국수 집에 갔다. 하나 남은 테이블에 운 좋게 자리를 잡고 보니 칼국수 한 그릇이 3,000원이었다. 이건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작은 기적이다. 꼭 집에서 만든 것 같은 칼국수를 꿈꾸듯 먹었다.
나는 전통시장을 사랑한다. 어릴 때 살던 집 가까이 시장이 있었기 때문인지 차가운 느낌의 마트나 백화점보다 따뜻한 시장이 좋다.
시장에서 닭 잡는 걸 보고 한동안 치킨을 못 먹던 일이나 그 자리에서 튀겨 팔던 시장 어묵, 당면 가득한 시장 순대도 그립다. 온갖 재료로 고급스럽게 만든 순대보다 당면만 들어간 순대를 즐겨 먹는 것도 추억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 가면 투박하지만 인정 넘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계시다.
시장에서는 누구나 목소리가 커진다. 그리고 누구와도 금방 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