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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an 03. 2023

겨울의 공원

크리스마스 무렵 꽁꽁 얼어붙었던 땅과 공기가 새해 들어 살짝 부드러워진 듯하다.

새해 첫날, 차로 15분 거리의 파크를 찾았다. 영상과 영하를 왔다 갔다 하는 겨울의 늦은 오후, 얼굴에서 삐져나온 코끝과 귀가 얼얼했다.

야구장과 실내 수영장이 있는 옆동네 꽤 큰 공원이다.

공원 둘레를 혼자 뛰고 있는 고독한 러너와,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 두세 명이 다인 고즈넉함이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해피 뉴이어!" 새해 인사와 눈웃음을 나눴다.


흐린 겨울날, 구름이 야구장 벤치를 마주 바라보며 미소 짓는 틈새로 하얀 이가 드러난 듯한 저녁 햇빛이 사랑스럽다.


공원 입구에 서있는 고풍스러운 시계탑을 보며 해가 바뀌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젖어있는 땅. 오랜만의 포근한 날씨에 녹은 눈이 다시 포근하게 땅을 적셔주고 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꽉 찼던 놀이터. 회색빛 배경에 잘 어울리는 예쁜 기차가 보인다. 기차를 타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줬었다.

봄이 오면 이곳은 다시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부모들의 이야기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두꺼운 구름을 이고 있는 겨울나무들. 나무는 언제나 변함없음을, 한결같은 마음을 선물한다.

자칫 놓치기 쉬운 변화와 따라잡고 싶은 숨 가쁨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무는 긴 호흡과 조용한 열정을 속삭인다.


얼어있는 조그만 연못. 얼음판 아래 생명을 담고 있을 물결이 보고 싶다.

따뜻해지면 다시 만나자고, 얼음 밑 네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해 주었다.


겨울엔 잔디를 태운다.

병충해를 예방하고 잡초들의 씨앗을 제거해 잔디가 다시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다. 검게 탄 재가 영양분이 돼주어 잔디가 골고루 자라게 돕는다.

촛불이 자신의 몸을 태워 빛을 주듯, 식물도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긴 의자가 매달린 그네를 보니 친구가 그립다.

빈 의자를 볼 때마다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친구랑 저 의자에 앉아 발을 구르며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다. 똑같은 높이를 함께 올라갔다 함께 내려올 수 있어 더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여름 내내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워터파크. 쉴 새 없이 뿜어 나오던 분수 물이 잠잠한 것처럼, 깊은 겨울 속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다.

조금은 쓸쓸해 보이지만, 따뜻해지면 다시 만나자고 윙크하는 것 같다.


어느새 파크 위로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해 질 녘 공기에서, 어릴 때 놀이터에서 어둑할 때까지 놀다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갈 때 맡던 냄새가 났다.

손아귀 가득 흙장난하느라 쥐었던 흙을 아쉽게 털어내고 집으로 향하는 그때 나던,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구수한 냄새 - 밥 냄새 같기도, 마른 낙엽 냄새 같기도 하던 향기가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멀디 먼 이곳에서 난다.


자연은 언제나 봄의 생명과 여름의 울창함, 가을의 다채로운 빛깔과 겨울의 비어있음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들과 함께함은 더없는 행복이다.

겨울의 풍경은 쓸쓸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봄을 향한 약속이 있다.

그래서 겨울은 희망의 계절이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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