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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Mar 07. 2023

혼자일 때

Solitude

혼자 있을 때, 모든 게 분명해진다.

혼자 있을 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다.

혼자 있을 때 나 자신과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고, 혼자 있을 때 비로소 깊은 사색이 가능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쯤인지,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혼자 있으면 잘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혼자 있으면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혼자 있는 시간 ⎯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옆에 사람들이 없으면 불안한 때가 있었다.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려 했고, 약속이 없으면 조바심이 났다. 외톨이가 된 기분, 세상이란 거대한 배에 올라타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버스 밖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기보다, 버스를 타고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옆에 있는가가 곧 얼마나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쪼개고 나눴다.

그러다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 내 친구가 될 순 없구나 느끼기 시작했다.

끝내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 나와 다른 곳을 보는 사람들, 오해와 실망, 갈등과 좌절 속에서 깨달았다 ⎯ 여기서 자유로워지려면 나 자신을 만나야 하는구나.

나 자신을 오롯이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떠났다.


속해 있던 단 한 곳을 떠났을 뿐인데 SNS 친구가 세 명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무렵 잠수가 잦아진 나를 보고 그 세 친구 중 하나가 "사람들 왕따 시키니까 좋냐? 대체 왜 그래?" 하며 원망이 잔뜩 묻은 눈빛을 던졌다.

갑자기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절교를 선언하고 돌아다닌 건 아니다. 하던 일을 계속했고, 빈도만 줄었을 뿐 사람도 만났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다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최대한 내 마음을 보살피려 했다. 모두가 짜장을 외칠 때 "난 짬뽕"을 외쳐 보기도 하고, 모두가 "맞아 맞아" 할 때도 "그건 아니지" 해 보기도 했다.

가만히 묻어 다니던 내가 이상한 짓을 한다고 느꼈는지 가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들이 왠지 재미있었다.


'그건 아니지'의 이유를 더 정확히 알려면 공부를 해야 했고, '난 짬뽕' 하려면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야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생각이 많아졌다. 마음의 평화는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게 아니었다.

혼자 있으면 내 못난 구석, 못된 성질머리, 옛날 아팠던 일들이 모두 마음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나를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자 바닥이 만져졌다.

이렇게 바닥 친 자존감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싶었을 때, 마음 한 구석에 작은 빛이 보였다.

그 빛은 아주 작았지만 매우 밝아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낯이 익었다.

어린 시절 엄마한테 혼나고 책상 밑에 숨어 혼자 눈물을 훔칠 때,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아무도 나를 위로해 주지 않을 때,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던 빛이었다.

그 빛은 내가 바라보기 시작하자 점점 커졌다.


시간은 치유를 가져다준다.

요동치던 시기를 지나, 나 자신과 대면하기 힘들던 순간들을 넘어, 단 몇 분이라도 혼자 있지 않으면 하루를 온전히 다 산 것 같지 않은 오늘에 이르렀다.

내 마음의 온도는 따뜻하게, 사람들과의 온도는 시원하게 유지하며 살고 싶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이를 만들어 가고 싶다.

쓸쓸한 내 뒷모습도 언젠가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유명 광고 문구처럼, 나는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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