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랩으로 유명한 god의 '어머님께(1999)'라는 노래가 있다.
그룹 리더 박준형이 어느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의 내용이 실제 자신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미국 이민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 어머니가 일터에서 남겨 온 한국 음식을 학교 도시락으로 싸갔다고 한다. 낯선 이국의 음식을 놀리던 아이들, 서러웠을 그 이야기를 그는 담담히 꺼내놓고 있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저학년, 둘째가 채 네 살이 되기 전 미국에 온 나는 아이들 점심 도시락을 싸곤 했다. 대부분 학교 급식에 의존했지만, 한 번씩 아이들이 학교식당 음식에 질려할 땐 도시락을 싸줬다.
이곳 학교식당 메뉴는 치킨너겟, 매쉬드 포테이토, 부리토, 샌드위치, 피자 등이다. 맛도 영양가도 없을뿐더러, 신선하지 않은 채소나 과일도 가끔 발견돼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곳 문화에 익숙하지 않던 처음, 아이들 도시락을 어떻게 싸줘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집에서 먹는 대로 우리 음식을 싸주면 잘 모르는 음식 냄새를 혹시 아이 친구들이 싫어할까 걱정이 됐다. 우리가 도시락으로 흔히 먹는 김밥의 단무지와 김, 참기름 냄새도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겐 생소하다고 한다.
먹고 싶은 거 먹는 게 죄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같이 먹는 자리에서는 남을 배려해야 하기에, 그리고 아이들이 이곳 음식에 익숙해져 학교 생활을 편하게 했으면 하는 마음에, 점심 한 끼는 여기 식단으로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주로 챙긴 도시락 메뉴는 샌드위치와 과일, 그리고 작은 팩에 담긴 주스였다. 대신, 밥반찬을 바꿔주듯 샌드위치 속재료를 자주 바꿔줬다.
첫째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이른 스쿨버스 시간 때문에 매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야 했다.
컴컴한 새벽에 눈도 못 뜨고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무섭다며 그냥 더 자라고 첫째가 말했다.
"그럼 도시락은?" 내 말에 첫째의 대답, 전날 먹고 남은 음식을 가져오거나 땅콩버터와 딸기잼을 식빵에 쓱쓱 발라 아이들이 직접 도시락을 싼다고 한다. "내 친구들 다 그래. 엄마도 그냥 자."
내가 아무리 날라리 엄마라 한들 그럴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식당이나 밖에서 점심을 사 먹을 때를 빼곤, 허접한 샌드위치라도 꼭 내 손으로 챙겨 스쿨버스 타러 가는 아이 뒷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곤 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땐 급식이 보편화되기 전이었다.
초등학교 땐 도시락 반찬이 뭘까 궁금한 것도 학교 다니는 재미 중 하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계란이나 소시지 반찬이 없는 날은 괜히 풀이 죽기도 했다. 예쁜 도시락통이나 물통을 갖게 되면 빨리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먹고 싶어 전날 잠을 설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땐 도시락을 같이 먹는 친구들이 곧 제일 친한 친구들이었다.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점심 난장판에 초대하면 그만이었다. 싸 온 도시락을 그대로 곱게 먹은 적이 별로 없는 우리들의 점심 난장판 ⎯ 모두의 밥과 반찬을 한 데 비벼 나누거나 비 오는 날엔 물에 밥을 말아먹기도 하고 쌈밥까지 등장하는 등 무궁무진했다. 이렇듯 매일 신메뉴 개발에 몰두하다 집에 와 먹는 밥은 밋밋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갖고 다니며 학교로 독서실로 전전긍긍하던 고 3 때도 생각난다. 함께 도시락을 나눠먹던 친구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을까.
회사에 다니던 시절, 도시락을 갖고 다니진 않았어도 동료들과의 점심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매일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게 귀찮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점심밥이 맛없던 적은 없었다.
이곳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교사마다 각자 점심시간이 다른 게 처음엔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잠깐씩 교대를 하며 자기 차 안이나 라운지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조용하고 여유롭게 쉴 수 있어 좋았지만, 가끔은 밥을 먹으며 나누는 동료들과의 잡담이 그리웠다.
5월이 되니 봄소풍 때마다 싸가던 김밥 도시락이 많이 생각난다. 집집마다 맛도 모양도 가지각색이라 친구들과 하나씩 바꿔먹던 김밥. 세대가 달라져도 우리의 김밥 사랑은 그대로다.
그러나 내겐 세상 그 무엇보다 맛있던 도시락이 있다.
고등학교 때 둘째 시간 끝나고 친구들과 까먹던 도시락, 선생님께 혼이 나면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도시락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시절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뭘 해도 늘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