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New York 10
읽기도 쓰기도 잘 안 될 때가 있다.
쓰지 못하면 읽기라도 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럴 땐 무작정 집 밖을 나서 걷는다.
뉴욕으로 이사와 피부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반려견들이다. 뉴욕을 묘사한 그림이나 포스터에는 강아지 줄을 잡고 센트럴 파크를 산책하는 뉴요커의 모습이 흔하게 등장한다. 실제로, 산책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절반쯤은 반려견과 함께다. 뉴욕시 경제개발공사(New York City Economic Development Corporation; NYCEDC)의 2022년 발표에 의하면, 뉴욕에는 110만 반려동물이 살고 있고 그중 반려견은 60만(뉴욕 가구의 약 27%), 반려묘는 50만(뉴욕 가구의 약 21%)이라고 한다.
강아지 산책을 전문적으로 맡아주는 도그워커(dog walker)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바쁜 직장인 보호자를 대신해 반려견을 산책시켜 주는 이들 도그워커는, 간식과 배변처리 용품이 든 작은 가방을 허리에 차고 두 마리, 많게는 대여섯 마리의 강아지들을 데리고 다닌다. 강아지들은 서로 방해하지 않고 도그워커를 따라 열심히 산책을 한다.
동네마다 강아지들이 목줄 없이 뛰어놀 수 있는 도그파크(dog park)가 보이는데, 우리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도 조그만 도그파크가 있다. 나는 산책을 하다 강아지들이 같이 노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 일부러 그곳을 지나간다. 보호자와 함께 입장한 강아지들은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마음껏 뛰어놀기도 한다. 관리인이 따로 없고 보호자들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므로, 자신의 반려견이 다른 강아지에게 공격성을 보이거나 짖으면 보호자가 바로 데리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그곳이 몹시 익숙한 듯 다른 강아지나 보호자들과도 잘 어울린다.
이렇듯, 어디서나 반려견들과 마주칠 수 있으므로 반려견 보호자를 비롯해 모두가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기 마련이다.
반려견과 산책을 할 때 목줄은 필수다. 뒷다리에 보호대를 끼고 보호자 옆에서 줄 없이 천천히 걷는 강아지를 본 적이 있다. 불편한 다리로 줄에 이끌려 걷기가 힘들까 봐 보호자가 배려해 준 듯했다. 그때 말고는 목줄을 하지 않고 산책하는 강아지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좁은 길에서 강아지와 마주치게 될 때, 거의 모든 보호자가 줄을 짧게 잡고 강아지를 자신의 옆에 바짝 붙이는 것을 본다. 어떤 보호자들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자신의 반려견 사이에 선 다음 상대방이 먼저 지나가도록 잠시 기다려 주기도 한다.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며, 이러한 보호자의 태도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한 번은,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달려온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내 가슴께까지 뛰어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너 나 좋아하는구나. 나도 너 좋아" 하고 웃어주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다행히 놀라거나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딱 보기에도 천방지축 어린 강아지 같았다. 목줄을 손에 쥔 채 달려온 보호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는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아마도 무슨 사정이 있어 잠시 목줄을 푼 사이 꼬맹이가 내게 달려왔던 것 같다.
지나던 행인도 모르는 사람의 반려견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게 예의라고 한다. 제일 좋은 건 모른 척 지나가 주는 것이고, 강아지를 만지고 싶을 땐 반드시 보호자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다른 반려견과 보호자를 만나면 인사를 나누고 서로 의사를 확인한 뒤에 강아지들끼리 인사시키는 게 좋다고 한다. 다른 강아지에게 마구 짖거나 으르렁대는 강아지의 모습을 옆에서 보기만 해도 무섭고 걱정스럽다. 보호자가 늘 조심하고 잘 교육시켜야 함은 물론이다. 아무리 내가 키우는 강아지라도 말 못 하는 그의 속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반려견 보호자들과 이웃이 서로 예의를 지키며 친하게 지내면 사람도 동물도 모두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물과의 마음의 교류는 우리에게 안정감과 위로를 줄 뿐 아니라,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아무 계산 없는 동물들의 순수함에 깊이 감동받게 되는 순간을 누릴 수 있다.
뉴욕은 반려동물들에게 매우 친화적인 곳이다. 길을 걷다 보면 가게 앞이나 길가 벤치 옆에 작은 물그릇이 놓여있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모두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먹이기 위한 것이다. 어디나 반려동물을 반겨주고, 그들로 인해 이야기꽃이 피기도 한다.
길 위 다양한 반려견과 보호자들의 모습이 잔상을 남길 때도 있다. 헤드폰을 끼고 가벼운 걸음으로 강아지와 산책하는 젊은 보호자, 강아지가 충분히 냄새 맡고 배변활동도 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보호자, 매일 일정한 시각 꼬박꼬박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보호자... 그중 극강의 귀여움을 발산하는 주인공은 바로, 유아차에 탄 아기와 그 옆을 걸어가는 강아지다.
우리 집 앞을 매일 지나가는 할머니와 노견의 모습에 가슴 뭉클한 적도 있었다. 서로를 의지해 걷는 그들의 모습은 그 어느 산책의 풍경보다도 아름다웠다.
한 번의 만남이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져야 하기에, 나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맞을 준비를 아직 다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를 필요로 하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알게 된다면 그땐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의 선택을 위해 공부하며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