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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l 26. 2024

엄지 척

Thumbs up!

둘째가 알바하는 카페에 들렀다. 둘째는 디자인 스튜디오에 나가지 않는 날은 집 가까운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해온 베이커리와 카페 알바로 갈고닦은 솜씨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집에서 5분 거리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10분쯤 가서 내린 후 다시 10분을 걸으면 드디어 둘째가 일하는 카페가 나온다. 커피숍에서는 커피나 차만 팔지만, 카페는 커피를 비롯한 음료와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둘째가 일하는 카페는 단골손님이 많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단골손님을 기억한다고 한다. 진정한 로컬 카페, 동네 아지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카페에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둘째. 우리는 바리스타 아나와도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주문했다. 남편은 헤이즐넛 시럽을 넣은 '아아'를, 나는 자색고구마 라테를 마셨다. 홀 안 테이블은 식사를 앞에 둔 채 랩탑을 펼쳐놓고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고소한 커피 향과 맑은 통유리창이 잠시 더위를 잊게 해 주었다.


아직 일할 시간이 남아있는 둘째와 헤어져 근처 인도 식당에 갔다. 누구나 이 동네 맛집으로 꼽는 소문 좋은 집이다. 15달러(약 2만원)면 애피타이저와 메인 요리를 다 먹을 수 있는 점심 콤보메뉴가 인기다.

남편은 야채 사모사(삼각뿔 모양의 튀김만두)와 치킨 요리를, 나는 렌틸콩이 들어간 멀리가토니 수프와 야채 카레를 주문했다. 강한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입에 못 대는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인도 음식을 피해 다녔었다. 그런데 이 식당 음식은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맛이 깔끔하고 자연스러우면서 간도 잘 맞고, 무엇보다 적당히 배어있는 향신료 냄새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내 수프가 탁월한 선택이라 말하며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겨주고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물어오는 웨이터에게, 나는 웃으며 엄지 척을 해 보였다.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야채 사모사
멀리가토니 수프


버스를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공사구간이 있었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도로 옆 횡단보도 앞 쪽으로 포장한 지 얼마 안 된 듯한 아스팔트가 한여름 햇빛에 반짝거렸다. 주의 표지판이나 안내문이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그곳을 밟지 않으려 한쪽 틈새로 비켜서서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한 발 뒤에 오던 남편과 그 뒤에 오던 아주머니가 새로 포장된 곳을 밟자, 공사장 근처 도로를 안내하던 직원이 다가와 그들에게 옆으로 비켜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내게 엄지 척을 해주었다.

나는 마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기분이 되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까 내가 엄지 척을 해줬을 때 웨이터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면 할수록 나도 상대도 기분 좋아지는 게 칭찬의 표현, 고맙다는 표현이다.


엄지 척을 주고받은 날, 누군가 신호등 뒷면에 그려놓은 미니언즈의 얼굴이 미술관 명화 못지않았다.

기분 탓이다.

© Anna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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