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뜨는 별 Autumnstar 3
어릴 때 엄마와 함께한 기억이 시연에게는 별로 없었다. 엄마 품에 안겨본 기억도, 엄마와 재미있는 시간을 같이 보낸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연은 엄마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드물지만 좋은 기억만큼 세상에서 소중한 건 없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사준 야구공 모양의 지갑을 아끼느라 한 번도 쓰지 못하고 대학 때까지 간직하기도 했었다.
엄마와 연결된 좋은 기억 하나는 <인어공주> 이야기였다.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밤마다 엄마가 읽어준 동화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였다. 다른 동화와 달리 <인어공주>는 왠지 시연의 마음을 흔들었다. 시연이 잠들지 않고 오히려 더 말똥말똥해지자 엄마는 <인어공주>를 끝으로 더 이상 책을 읽어주지 않았지만, 시연에게는 그 며칠의 기억이 보물 같았다.
<인어공주>의 무엇이 어린 시연의 가슴을 그토록 아리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를 시연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슬픔이 고스란히 시연에게 옮겨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마의 목소리로 들은 이야기이기에, 슬픔이 엄마를 통해 전해졌기에 그랬을 거라고 시연은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지 못한 인어공주의 슬픔이, 어떻게 해도 엄마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자신의 슬픔과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시연은 아픈 데가 많은 아이였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거나 마음이 불편해지면 이내 머리나 배가 아팠다. 통증은 목이나 다리, 허리로 번져갔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따라 아픈 것 같았다.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배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아파서 학교에 못 가겠다고 말하다 엄마한테 한바탕 혼나고는 먹기 싫은 아침밥을 꾸역꾸역 먹다가 토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엄마는 시연이 아프다고 하면 짜증부터 냈다. "뭐, 또! 어디가 아픈데. 너 괜히 그러는 거 아냐?" 그래서 시연은 몸이 아플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엄마, 미안해. 그런데 나 진짜 아파." 언젠가부터 시연은 불편하고 아픈 것에 대해 위로받기를 포기했다. 자신이 아픈 것보다 엄마가 속상한 게 더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시연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느 날 밤이었다. 아빠 품에서 잠들었던 시연은 한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몸을 떨며 헛소리까지 했다고 한다. 시연이 며칠 입원해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동안 아빠와 외할머니가 시연의 옆을 지켰다. 시연은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엄마는 한 번도 시연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
작은 몸과 마음이 불안에 잠식 당해 힘들 때마다 시연은 늘 생각했다, 엄마가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시연은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후에도 마음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정착할 곳을 찾아 둥둥 떠다닐 때 괜찮다고 말해주는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아서, 시연은 마음으로 자신을 안아주며 "괜찮아" 중얼거리곤 했다.
엄마는 시연과 있을 때는 다정하지 않았지만, 밖에 나가면 시연을 자랑하곤 했다. 노래를 잘한다, 똑똑하다, 심지어 시연이 읽어보지 않은 책들도 읽었다고 거짓말 섞인 자랑을 늘어놓을 때면 시연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시연은 엄마의 허풍에 대해 따지지 않았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칭찬을 할 때면 인정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때아닌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다.
시연이 다닌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가을이 되면 음악 콩쿠르가 열렸다. 악기를 다룰 줄 알거나 노래를 잘하는 아이들의 꿈의 무대였다. 어릴 때부터 동네 가수였던 시연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당연히 콩쿠르에 나가는 것으로 돼 있었고, 엄마는 시연이 다니던 피아노 학원 선생님에게 노래 연습을 도와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주위 사람들 모두 엄마의 자신만만한 기세에 콩쿠르 대상은 시연이 따놓은 당상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시연은 그저 그랬다. 콩쿠르에 나가기가 왠지 망설여졌다. 주위의 부추김에 걸맞게 자신감 뿜뿜도 아니었고, 상이 별로 욕심나지도 않았다. 동네 어른이나 친척들 말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도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콩쿠르에 못 나가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엄마를 실망시키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관심을 잃을까 봐 두렵기도 했다.
등 떠밀려 나가는 콩쿠르였으니 연습이 하고 싶을 리가 없었다. 왜 그렇게 귀찮은 마음이 들었던지 시연은 대충대충 시간만 때우고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연습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릴 때는 더 하기 싫었다. 그리고 콩쿠르 날, 시연은 보기 좋게 가사를 틀리고 말았다. 뒷 소절의 가사를 앞 소절에서 불러버린 것이다. 이미 불러버린 가사를 다시 부를 수도 없어서 그만 노래를 멈춰버린 시연을 보고 심사위원들과 반주를 해주던 음악 선생님, 그리고 지켜보던 학부모들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시연은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있던 엄마의 표정에 시연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어찌어찌 다시 노래를 부르고 나오긴 했지만, 결과는 동상이었다. 가사 실수를 한 것도 동상을 탄 것도 시연은 다 괜찮았다. 끝나고 나니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엄마는 시연 때문에 망신을 당했다며 집에 돌아오자마자 시연을 심하게 다그치고 비난했다.
시연은 그날 이후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명절에 어른들이 노래를 시켜도 앞에 나서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게 예전만큼 신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음악 콩쿠르의 기억 때문에 괴로웠다. 그 후 시연이 그 뜻을 정확히 알게 될 때까지 '실수'라는 단어는 세상 가장 나쁜 것,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오랫동안 시연의 머릿속에 새겨졌었다.
상처받은 아이는 착하지 않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어른들 앞에 무기력해져 있을 뿐이다. 상처받은 아이는 마음속 어두운 구석을 너무 일찍 알아버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