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뜨는 별 Autumnstar 1
눈을 떴다. 캄캄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여기가 어디더라, 시연은 잠깐 생각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비로소 시연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난 늘 발이 땅에 닿아 있어야 해. 그래야 안 불안해. 그래서 배도 비행기도 별로거든. 흐흐.' '나도야. 흐흐.' 오래전 아빠와 주고받은 이야기가 시연의 몽롱한 머릿속에 떠올랐다. 별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뜬금없네, 시연은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둑한 비행기 안. 사람들은 대부분 잠들어 있었다.
시연은 창문덮개를 반쯤 열고 밖을 엿보았다. 새하얀 구름들. 갑작스러운 밝음이 어둠에 익숙하던 시연의 눈을 찌르는 듯했다. 시연은 얼른 창문덮개를 내렸다. 갑자기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나 열 나?" 마침 잠에서 깬 옆자리 동준에게 시연이 물었다. 체온계로 재보기 전에는 도통 알 수 없는 시연과 달리, 남편은 이마만 짚어보아도 금세 열이 있는 걸 알아채곤 했다. 시연의 이마를 만져본 동준은 시연의 등에도 손을 대보더니 "안 추워?" 되물었다. 그러자 땀에 푹한 등으로부터 한기가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추워서 떨렸던 거구나, 시연은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이게 얼마만의 웃음일까, 아직 웃음이 나오긴 하는구나, 생각했다. '꿈을 꾸며 식은땀을 흘린 게 분명해.' 지난 며칠 시연은 계속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어릴 때 툭하면 꾸던 엄마 잃어버리는 꿈. 울면서 눈을 뜨면 베갯잇이 펑하니 젖어있고 흐느낌은 꿈 밖으로 이어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태로 엄마에게 달려가면 "얘가 왜 이래" 하며 밀어내기만 할 뿐 엄마는 한 번도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시연은 엄마를 잃어버리는 꿈을 꾸고 나면 곧바로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의 존재를 확인해야 비로소 온전히 꿈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 며칠 꿈속의 시연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어른이었는데도 엄마를 잃어버리고 흐느껴 울다 깨어나곤 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비행기를 타면서도, 조문객들을 맞이하면서도 시연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맑음 같기도 했다. 눈물로 얼룩진 시훈의 얼굴에도, 목놓은 큰 이모의 울음에도 시연은 별로 슬프지가 않았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잠깐씩 눈을 붙일 때마다 엄마를 잃어버리는 꿈을 꿨다. 어릴 때 꾸던 꿈이랑 똑같은 꿈. 엄마 손을 붙잡고 길을 가다가 어느 순간 엄마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꿈. 황당하고 두려운 순간이 꿈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서러움이 끅끅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나오지 않던 울음이 꿈속에서 북받쳤다. 꿈속에서, 마침내 엄마의 부재를 실감했다. 엄마의 죽음과 상관없는 익숙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