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뜨는 별 Autumnstar 12
드넓은 공원이었다.
푸르게 우거진 나무들, 햇빛이 보석처럼 내려앉은 연못이 눈부셨다.
시연은 엄마와 함께였다. 행여나 놓칠세라, 시연은 어릴 때처럼 엄마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시연과 엄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바람에 잠깐 엄마 손을 놓은 채 나무를 지나치고 나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마치 나무가 빨아들인 듯 엄마는 사라지고 없었다.
막막하고 서러워 시연은 어찌할 줄 몰랐다.
어디선가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어린 소녀가 시연 앞에 나타났다. 무척 낯이 익은 그 아이는 시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동그란 눈과 곱슬머리, 작고 마른 그 아이는 사진첩 속에서 보았던 시연의 어릴 적 모습 그대로였다.
"울지 마." 아이가 말했다. 시연도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없어서 그래? 내가 손 잡아줄까?" 아이는 작은 손을 내밀었다. 시연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
"나도 엄마 없을 때 무서웠는데. 근데 지금은 안 무서워." 아이가 뽐내듯 말했다.
"지금은 왜 안 무서워?" 시연이 물었다.
"내가 무서울 때 네가 토닥토닥해 줬잖아." 아이가 말했다.
시연을 바라보던 아이가 다시 말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아이가 웃었다. 하얀 햇살 한 줄기가 아이의 얼굴에 담겼다. 점점 더 환해지는 빛의 따스함이 시연의 온몸을 감쌌다.
눈을 떴다. 아직 비행기 안이었다. 몸에 드는 한기를 다독이려 담요를 덮고 있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았다.
시연은 눈을 뜬 채로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꿈속에서의 기분이 사라질까 봐서였다. 환하고 따뜻한 느낌, 혼자가 아닌 느낌이었다. 엄마를 잃어버리는 꿈을 꾸어도 이제 더 이상 서럽지 않을 것 같았다. '나 많이 컸네' 생각이 들자 시연은 빙그레 미소가 났다.
"몇 시간 남았어?" 시연은 물었다. "세 시간쯤? 더 자. 며칠 동안 푹 못 잤잖아." 담요를 목까지 여며주며 동준이 말했다.
세 시간 후면 내가 사는 곳이겠구나, 시연은 다시 창문덮개를 올려보았다. 하얀 구름들. 꿈속에서 본 것과 똑같은 밝음 속에 다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시연은 마음속 아이, 시연 자신에게 말했다. '너를 만나서 좋아. 고마워.'
아이를 낳고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아이에게 주인공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했을 엄마. 아이의 존재와 그 아이를 향한 엄마로서의 마음이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엄마는 믿을 수 없었을까.
그녀도 한 사람이었을 뿐, 엄마라는 멍에를 씌워 그녀를 내 마음속에서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자고, 시연은 다짐했다. 아무도,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던 그녀. 그녀도 외로웠으리라, 사랑받고 싶었으리라.
그녀가 이제 좀 편해지길, 시연은 진심으로 바랐다. 그녀와의 마지막, 고요한 이별이었다.
★ 그동안 읽어 주시고 댓글 주신 분들께 뭐라 말씀을 드려도 제 마음을 다 전하기에 충분치 않겠지만, 힘을 내어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고맙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이 소설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늘 건강과 사랑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