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과 오븐> 곁에서

by 김리온

책을 좋아하다 하다, 어쩌다 책을 말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SBS 팟캐스트 <이럴 거면 서점을 살 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하나는 CPBC 가톨릭평화방송 <오수진의 행복을 여는 아침>에서 ‘이리온 서재’라는 이름의 코너에서 책을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두 프로그램의 분위기는 꽤 다릅니다.

SBS 팟캐스트는 우리가 하고 싶은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편안한 수다 형식이고,

cpbc 라디오는 청취자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감상을 나누는, 조금 더 정돈된 방송이에요.


그런데 그 두 곳에서 동일한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형수 작가님의 <목발과 오븐>입니다.




이 책은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작가는 어릴 때 소아마비로 목발을 짚게 되었고,

그 장애를 안고 살아온 이야기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솔직하게 풀어냅니다.
장애에 대해 무겁고 아프게만 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정체성 중 하나로 받아들이며 사람들과 살아온 시간을 단단하게 써 내려간다는 점이 좋았어요.

특히 자신에게 감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지를 이야기 한 점이 저에게도 감동이었습니다.

이 책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던 책입니다.


방송을 하고도 마음이 다 가라앉지 않아서, 인스타그램에 조용히 이벤트를 하나 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께 제가 직접 사서 보내드릴게요.”
좋은 책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이벤트에 김형수 작가님이 직접 연락을 주셨습니다.

우린 일면식도 없었고, 저는 그냥 조용히 책을 좋아하는 독자였는데,
그분의 책을 좋아한다는 마음이 연결고리가 되어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사무실로 초대하고 싶다. 한 끼 대접하고 싶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저 멀리서 응원하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실제로 작가님을 뵐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그런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스르륵 올라와 덥석 초대를 수락했습니다.

다만, 식사까지는 부담스러워 “차 한잔만 나눠도 충분하다”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책 속에서 작가님은 “오븐을 덥히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라고 하셨지만,
대접받는 것이 죄송스러워 “해주시면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이 도무지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데도 작가님은 정말 오븐을 데우셨고, 정성 가득한 식사를 차려주셨습니다.

사실은 아마도 가스레인지를 켜셨을 거예요. 부산식 국수를 삶아주셨거든요.




그날, 저는 한뼘책방이라는 이름의 1인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편집자이자 대표님과 함께, 김형수 작가님의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팬으로서의 첫 만남이니만큼 설레었고, 궁금한 점도 여쭤보고,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팟캐스트 하면서 SBS 피디가 말했던 “오븐 이야기가 너무 짧아요”라는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도 전하고 나름의 해석도 나누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의도적으로 목발의 이야기, 즉 과거의 시간을 중심에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여쭈어보니 “딱히 큰 의도는 없었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독자는 의미를 찾고 해석하고 상징을 짜 맞추지만 정작 작가는 그냥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것일 때도 있지요.
저는 웃었고, 그 거리감이 책 읽기의 묘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팬으로서 '오븐 덕분에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다음 책으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저는 신발 디자이너이자 대표로 브랜드를 20여 년 가까이해왔습니다.
일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의뢰를 받고,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응대하는 일에 익숙해졌어요.

그런데 책을 통해 이렇게 제가 먼저 누군가의 이야기를 찾아가고, 작가를 만나고, 식사를 함께 나누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목발과 오븐>은 그저 재미있고, 따뜻하고, 의미 있는 책이었는데, 그 책 덕분에 이렇게 연결되고 감동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책을 소개한다고 해서 늘 이런 일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작가님이 직접 연락을 주시고, 출판사 대표님이 자리를 만들어주시고, 책 속 장면처럼 식사를 나누는 경험이 찾아오다니—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닿을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작가도, 출판사도, 책이 어디까지 닿고 있는지 다 알 수는 없겠지요.
저 역시 책을 진심으로 소개하지만, 그 마음이 어떻게 전해지는지는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요.

그래도 저는, 계속해서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좋은 책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고, 그 책을 만들어낸 작가와 출판사를 응원하고 싶어요.
그게 어떤 반응을 낳든, 어떤 만남으로 이어지든 상관없이요.

가끔 이렇게 책이 만들어주는 뜻밖의 기쁨이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니까요.


이 글을 통해 『목발과 오븐』이라는 책이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따뜻하게, 다른 독자에게도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오븐이 덥혀질 곳은 당신의 책상일지도 모르니까요. 작은 한 끼의 따뜻함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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