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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mood Apr 06. 2021

빨강과 노랑 사이

이케아 전구색, 북유럽에서는 일상인 주황색 빛 가득한 도시.



빨강은 너무 부담스럽고

노랑은 너무 가벼워.

빨간색이 가진 뜨거움, 노란색이 가진 따스함 그 사이. 주황색이 있다.

주황색만이 가지고 있는 따듯함과 아늑함.



주황색을 좋아하세요?

내 주변에는 나를 포함하여 주황색을 좋아하는 사람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사실 나는 엄청 싫어한다. 주황색은 물론이고 주황색과는 세트인 오렌지맛도 싫어한다.

어릴 적 물약 감기약이 주황색에 오렌지 맛이었다. 다시 생각만 해도 싫다.



덴마크에 처음 와서 적응이 안됬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전구색이었다.

겨울엔 특히 해가 3시면 지고 깜깜해진다. 그럼 불을 켜야 하는데 백색을 사용하던 한국과는 다르게 주황색인 조명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침침하고 처음엔 도대체 집에서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는데 난 분명 노란색을 집어 칠했는데 밝은 데서 보니 황토색이었다. 이렇게 색연필 색이 구별이 안될 정도로 조명 하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둑어둑하니 무기력하고 계속 졸리는 것도 문제였다.

마트에도 주황색 전구만 다양한 와트로 구할 수 있었고 백색 찾기도 쉽지 않았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덴마크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왜? 주황색을 쓰냐고.

"집 밖에서 이미 충분히 눈이 피로했을 텐데 집 안에서만큼은 눈도 쉬어야지. 집에서는 쉬는 거야."


이런 대답을 들을 줄 상상도 못 했다.

눈도 집에선 쉬어야 하니까 주황색 조명을 쓰는 거다....

정말 휘게 문화의 나라답다.

한국이면 씨알도 안 먹혔을 텐데,,, 집에서 할게 얼마나 많은데............



내 생각과 고집을 포기하고 나니 맘도 편하고 중요한 건 눈이 편해졌다.

눈이 시린 것도 많이 사라지고 눈의 피로가 확실히 줄었다.


또 좋은 점은 집안의 먼지도 잘 안 보인다.

차린 게 별거 없어도 음식이 맛있어 보인다.

집 분위기도, 도시도 따듯해 보인다.

잠도 빨리 온다.



한국은 너무 밝게 산다. 사람들도 건물들도.

너무 밝게 살아도 피곤하다.


난 주황색 빛으로 적당히 침침하게 살고 싶다.

어둡지만 따듯하게.

주어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며 애쓰게 밝게 살기보다 주황색 빛으로 포장해서 어둡고 부족한 부분도 따듯하게 안고 살고 싶다.



주황색이 좋아졌다.

주변을 보니 주황색이 가득했다.

햇빛도, 노을도, 도시도, 꽃도, 와인도.





주황색 조명은 계속 쓸 것 같다. 이 곳 코펜하겐이 아니더라도.

눈도 쉬고 나도 쉬어야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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