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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mood Feb 10. 2021

아무일 없는 지루한 하루가 제일 좋아요.

재밌는 지옥 vs 지루한 천국



우연한 일이다.

아니 우연이라기 보단 운명인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유럽여행의 남은 1주일, 마지막 나의 20대 플렉스를 즐기고 있던 와중

우연인 듯 운명처럼 만난 구 남친, 현 남편.


만난 지 3일째 되던 날, 이 낯선 한국 남자는 출장으로 방문한 이 곳을 떠나 내일 자기가 살고 있는 코펜하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정적이 흐르고 곧 그가 말을 꺼냈다.

"나랑 같이 코펜하겐 갈래요?"

이 한마디가 내 인생의 방향을 이렇게 바뀌게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당장은 백수니까 회사에 밀린 일을 하러 가야 되는 것도 아니고,

20대 유럽은 마지막이니 후회 없이 다니다 오자.

한국 가면 어차피 이제 일개미로 다시 카드값 갚으며 살아야 되는데 아끼지 말자.

라는 생각과 함께 이 남자랑 여기서 이렇게 헤어지면 이제 진짜 만날 일 없는 사람인데..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너무 아쉬웠다.

빠르게 5초 정도 생각 정리를 마치고,

"가도 돼요?"


그렇게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뒤도 안 돌아보고 급하게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떠났다.


코펜하겐 공항



12월 북유럽 코펜하겐의 공기는 차가웠다.

북유럽이 이런 건가.

정말 사람들이 거인 같았다.

피부는 아픈 사람들처럼 핏기 없이 창백하게 하얗고 머리도 노랗다기보다는 하얗게 빛나는 금발이었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덴마크는 엘프족들의 나라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크리스마스 마켓들이 열려있었고 축제의 분위기였지만 날씨가 추운 탓인지.. 내가 아는 축제의 그 하이텐션 느낌은 아니었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누구 하나도 튀지 않는 그런 나라.


그렇게 첫 방문 이후 한국과 덴마크, 장거리 연애로 2번의 코펜하겐을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덴마크로 가는 비행기 직항이 없다. 경유를 해야 되는데 잘 못 걸리면 며칠을 걸리는 거리였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며 고통스러운 장거리 연애를 하는 와중

코로나가 터지면서 이 상태로는 정말 기약이 없는 기다림이 되겠다 생각하여

우리는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렇게 우린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한국에서 막연하게 직장 생활하며 주변 선배들이며 지인들의 결혼식을 다니며 느꼈다. 아 난 결혼 못하겠다.

고가의 일회성 이벤트를 난 할 자신이 없었고 그럴 돈이면 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나 뿐이 아니라 많은 20대 청춘남녀들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만 그런가?)

여하튼 그런 내가 결혼식을 했다. 물론 코로나 시국이라 양가 부모님도 모시지 못했고 내 친구들은 물론이며, 겨우 남편의 가까운 지인 몇몇만 초대하여 진행했다. 코로나가 정말 지긋지긋하고 싫지만 덕분에? 큰 시간 낭비 없이 결정된 일들이 많아 고마운 부분도 있다. 나는 어머님을 한번 뵌 게 다였고 더 대박인 것은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내 남편을 직접 본 적이 없으시다.

이럴 수가 있나 싶지만 이렇게 결혼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님들을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워낙에 자식들을 믿어주시는 부모님들이셨고, 코로나 시국으로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 코로나 덕분에? 초고속 결혼을 진행했고 한국이었으면 식장 알아보러 다니고 웨딩드레스 보러 다니고 내 앞길이 훤했을 텐데.. 덴마크는 정말 심플했다.

덴마크 정부 결혼 관련 기관으로 우리가 결혼을 할 예정이라고 신청서를 넣으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날짜와 장소를 정해준다. 보기가 2개 정도 있지만 뭐 시청 아니면 미술관 이 정도?. 주례사와 진행자는 나라에서 인증한 전문인이 배정된다. 따라서 내가 결혼식을 위해 준비할 것은 없다.

웨딩드레스부터 반지도 다 선택이며 프리 하게 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나는 정말 기본인 흰색 원피스 단정해 보이는 것으로 하나 준비하고, 흰색 구두와 면사포 딱 이렇게 준비했다. 남편은 무난한 네이비색 정장과 안엔 얇은 니트 정도.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었다. 내가 알던 결혼 준비와 너무 달라서.

우리는 코펜하겐 미술관에서 결혼식을 했고 놀랍게도 식은 10분이었다. 10분. 정말 심플 그 자체였다. 우리가 결혼을 한다라는 그 사실에만 집중하기에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시간이었다. 덴마크 정부에 신고하는 신고서 작성하는 순서를 시작으로 주례, 반지(선물) 교환, 결혼 공표, 끝. 해야 될 건 다 했다.

그렇게 끝나고 친구들과 파티를 하는 순서였지만 코로나 덕분에? 파티는 하지 못했다. 대신 전날 초대한 친구들을 위해 홈메이드 피클을 만들어서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잊지 못할 나의 덴마크에서의 결혼식은 끝났다.

다 하고 보니 정말 결혼식은 큰돈을 들이면서 내가 스트레스받을 일이 아니었다. 이 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혼식을 올린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말을 곱씹어봤다. 내가 이 곳에 살면서 느끼는 건 나와 남이 별다르지 않다는 작지만 무시 못하는 그 사실 하나인 것 같다.

한국은 걱정할 것이,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다. 물론 너무 잘살고 너무 재밌는 것도 어마 무시하게 많은 나라라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남이 끊임없이 비교될 수밖에 없으며, 쫓기며 살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한국 사회 안에 있으면 그런 다짐이 오래가지 못한다. 한국도 한국사회 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 덴마크는 지루한 천국이라면 한국은 재밌는 지옥. 그 재밌는 지옥에 한번 맛을 보면 나오기 정말 힘들다. 과거의 나는 그 맛에 더 빠졌었다면 지금 30대가 된 나는 그런 사회와 분위기가 이젠 조금 무섭다. 자신이 없다. 남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그 분위기가 이젠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 곳이 왜 행복하다는지 더 잘 알 것 같다.

 

덴마크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만 찾아봐도 엄청난 복지 국가라는 사실과 다양한 장점들이 잘 알려져 있다. 아주 많지만 대표적으로 내가 참 신선한 충격을 받은 한 가지를 나누고 싶다.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일단 덴마크는 초등학교 입학하면 처음 정해지는 그 반과 그 선생님이 쭉, 나의 학창 시절 내내 함께 간다. 덴마크 사회는 넓고 얇은 인간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소수이지만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한다. 그 정신에 완벽하게 맞는 학교 시스템인 것 이다. 물론 단점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한 선생님이 한 학생의 학창 시절을 함께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 학생을 잘 알 수 있고 깊이 있는 조언을 할 수 있으며 지도할 수 있다. 말 뿐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곳의 아이들은 16세까지 시험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우리나라처럼 어린 나이부터 평가를 하여 점수를 매기고 비교하고 이런 문화가 아니었다.

나와 내 옆집 사람이 똑같은 의료 혜택을 받고 있으며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시스템에서 살고 다 같이 높은 세금을 내고 있다. 그래서 이 나라가 막연히 행복하다라기 보단 내가 사회적으로 신경 쓸 일이 더 적기 때문에,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 스스로가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한편으론  너무 씁쓸하다. 나는 한국이 좋다. 한국 사람이라 어쩔  없다. 한국이  맛은 확실히 난다. 너무  맛이 나서 문제인가..?  근데  곳에서의 여유, 삶의 질은 한국에서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내가 은 걸 포기하고 내려놔야 하지 않는 이상..






재밌는 지옥(한국) 있다 지루한 천국(덴마크)  한국인으로서  곳에서 사는 것도 역시나 쉽지 않다. 다른 외국인보다 한국인은 특히 더더욱이 힘든  같다. 기술 발전부터 서비스가 세계 최고인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 그래야 나도  곳에서 조금씩 행복을 느낄  있다.

워낙 다이나믹했던 서울 생활은 하루하루가 긴장되고 시간에 쫒기며 바쁜 나날들이었다.

놀 것도 많고 할 것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고.

그에 비해   북유럽, 코펜하겐은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 재미없는 지루한 천국이라며 남편에게 불평아닌 불평과 원망을 했었던 때가 있었다. 한창 바쁘게 혹독하게 살아도 모자를  젊은 나이에   이렇게 지루하고 반복되고 똑같은 일상일까 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 조차 어마어마한 축복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곳의 지루한 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이 또한 지나가니 현재에 더욱 감사하며 살아야지.

지루한 천국에서의 나의 30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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